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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린 속에 바치는 뜨끈한 위로 해장

[기타] | 발행시간: 2012.12.21일 16:36

[한겨레] 세밑새해 넘치는 술자리 후유증을 줄여주는 해장비법 대공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한때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에 음표를 단 노래가 허름한 대폿집에서 애잔하게 흘러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한 시대의 풍류객들은 한잔 술에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감성과 노래를 실었다. 이들이 긴 세월 술을 벗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만의 해장법이 있어서다. 천하무적이라 소문난 장안의 술꾼들도 저마다 해장 기술이 있다. 음주는 우리의 단골 후회 메뉴다. 쓰린 속, 울렁거리는 위장, 도끼로 찍은 것 같은 두통 등 과음 후 밀려오는 온갖 폐해는 자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뜨끈한 해장국 한 숟가락을 입속에 넣는 순간 ‘이제 살았구나’ 안도하면서 숙취의 괴로운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리고 다시 술집 문을 연다. 해장이 없었다면 술도 없다. esc가 우리 시대 대표 술꾼들의 해장법을 찾아 나섰다.

해장 하면 당연히 먹거리부터 생각한다. 맞다. 많은 술꾼들은 먹는 것으로 숙취를 해소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 법.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을 연출한 육상효(48) 감독은 우선 책을 든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필립 K. 딕), <가재걸음>(움베르토 에코) 같은 것들이다. 동네 허름한 목욕탕으로 간다. 탕에 들어가기 전에 플라스틱 바가지부터 찾는다. 그 안에 책을 담는다. 탕에 바가지를 띄운다. 돛단배처럼 떠다니는 바가지를 앞에 두고 책을 꺼내 읽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책을 10분 보면 땀이 나고 몸에 혈액순환이 되는 게 느껴집니다.” 책이 처절하게 쭈그러들든 말든 감독은 “뇌가 빠르게 활성화되고”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시나리오 쓸 때 도움 많이 받죠.” 소주 2병이 기본 주량인 육 감독은 새벽까지 촬영을 마치고 배우들과 해 뜰 때까지 마신다. “술은 배우들, 스태프들과의 소통에 큰 역할을 해요.” 목욕탕 책읽기 해장법을 마친 뒤에는 냉면을 먹는다. 마무리 해장이다. 냉면은 주재료가 메밀이다. 메밀에는 알코올을 해독하는 콜린이란 성분이 있어 숙취 해소에 좋다. 냉면 육수도 톡톡히 한몫을 한다. 알코올의 이뇨작용으로 부족해진 체내 수분을 보충해준다. 다사랑중앙병원 전용준 원장은 “술은 대사과정에서 수분 손실을 불러오기에 심한 사우나나 운동은 피하는 게 좋다”고 한다.

잠, 밥, 콩나물국, 곰치국, 족발, 육회. 화가 사석원(52)이 해장에 동원하는 것들이다. 잠을 빼면 마치 한식당 차림표와 같다. 이 중 으뜸은 잠이란다. 그는 명물주모가 있는 낡은 대폿집을 좋아한다. 2005년에 전국 대폿집 순례기를 담은 <바람아, 사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도 펴냈다. 그는 “경제논리로 대폿집이 사라져 가는 상황이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고 탄식하는 애주가다. 잠과 국, 고기류 섭취는 사씨의 음주 후 대책이다. 그런데 정작 진짜 해장법은 음주 습관에 있다. “아주 천천히 마시는 게 습관이에요.” 특히 첫 잔부터 셋째 잔까지는 거북이가 “선생님” 할 정도로 느리게 마신다. 그렇게 시작한 술자리가 이틀 이어진 적도 있다. “인생에서 풍류는 중요하고, 그 풍류에는 술이 꼭 필요하죠.”

“물러가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의 철학을 해장법으로 활용하는 이는 소설가 성석제(52)다. 그는 “숙취가 많지 않지만” 몇 년에 한 번씩 폭풍처럼 들이닥치면 그저 조용히 사라지길 기다린다. 기다림의 끝에는 먹거리가 있다. 냉면과 씹을수록 고소한 비빔밥이 해장의 끝을 장식한다. 비빔밥의 다양한 채소는 알코올로 손상된 영양분을 보충하기 딱 좋다.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이나 채소의 비타민C, 달걀의 시스테인(아미노산의 일종)은 알코올 해독에 도움이 된다.

티브이엔의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11번째 시즌이 지난 11월에 시작했다. 주인공 영애씨는 술꾼이다. ‘치맥’을 즐긴다. 실제 영애 역을 맡은 배우 김현숙(34)씨도 술꾼이다. 일주일에 3일은 술을 마신다. 대학 시절에는 만취해 쓰러진 남학생들을 집에 보내고도 말짱했다. 드라마와 달리 그는 안주로 치킨 대신 과메기나 굴 같은 제철 해산물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수록 반주가 좋네요.” 공연이 끝나고 마신 술이 제일 맛있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맑은 복국에 상큼한 식초 한두 방울 떨어뜨려 먹는 게 그의 해장법이다. 후끈한 기운이 쑥 위장에 퍼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술잔을 찾는다. “배우는 무엇이든 경험해야 합니다. 술도 그런 거죠.”

“7 대 3, 소맥을 좋아해요.” 검은 모자를 눌러쓴 만화가 윤태호(43)씨의 술 취향이다. 대학 강의, 밤샘 작업, 각종 인터뷰 등 그의 시간은 꽉 짠 그물 같다. “술자리는 꽉 찬 생활 중에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시간이자 의도된 공백이죠.” 그는 봉지커피로 해장한다. 설탕, 크리머, 커피가 섞인 달달한 커피다. 전용준 원장은 음주 후 우리 몸에서 쉽게 포도당으로 변하는 단 음식은 해장에 좋다고 한다. 설탕물이나 꿀물이 효과가 있는 이유다. 설탕 귀신처럼 단것을 먹는 동안 쓰린 후회가 사라진다. 하지만 봉지커피의 크리머 는 주성분이 우유가 아닌 기름이기에 소화기에 부담을 줄 수 있어 피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건축가이자 여행작가인 오기사(36·본명 오영욱)는 용감한 술꾼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본 술도 잘 마신다. 몽골 마유주(말젖으로 만든 술)도 즐겁게 마신 그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해장음식으로 손사래를 칠 두툼한 햄버거가 오래된 해장 친구다. “평소 잘 먹던 햄버거를 먹으면 마치 몸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에요.”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술을 마셨다. 모의고사 성적이 좋은 날만 자신에게 술과 노래방을 허락했단다. 술을 마시려면 성적이 좋아야 했다. “그래서 항상 잘 봤어요.”(웃음) 지금도 술은 그의 작업에 “좋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맨 김원효(31)의 단골술집은 “연예인을 정말 싫어하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다. 본인 소개도 했는데 본 척도 안 하더란다. 김씨는 소주 5병이 주량이다. 동료 개그맨들과 술자리에서 아이디어가 팡팡 터진다.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도 술자리 에서 튀어나온 코너다. 해장법은 30분~1시간 간격으로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먹는 것! 다 먹어치운 다음에는 종류가 다른 초콜릿을 또 찾아 헤맨다. 찾아낼 때마다 초콜릿은 산악인의 비상식량처럼 반갑다. 고향 부산에서는 밀면으로 해장을 했다. 그게 그리울 때면 냉면을 찾는다.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 겸 무용가인 제임스 전(54)은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하고 술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술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1996년 대전 공연 때다. 발레단을 후원하던 이들이 찾아와 폭탄주를 그에게 건넸다. 태어나 처음 마신, 엄청난 위력의 폭탄주였다. 요즘 그의 주량은 고무줄이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 마시거나 분위기가 흥겨우면 늘어난다. 그는 온종일 물로 해장한다. 물은 숙취 예방, 해소에 가장 좋다. 체내 알코올 흡수율을 떨어뜨리고, 빠른 해독을 돕는다.

미술평론가이자 학고재 주간인 손철주(59)씨도 “물 마시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해장법이 없는 이다. 우리 몸이 물로 출렁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신다. 5리터가 후딱 사라진다. 시원한 맹물이 식도를 타고 쭉 내려가면 장까지 고속도로가 뚫린 기분이 든다.

그는 열흘간 중국 여행길에서도 매일 56도 독주를 마셨을 만큼 애주가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거의 없었던” 20대 손철주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1988년 11월 한 선배에게서 “인간이 들어야 할 욕 중 가장 심한 욕을 듣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두 달을 구토로 지냈지만 이제 그는 “술과 관련된 풍류, 그 기쁨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전용준 원장은 맵고 짠 음식은 숙취 해소보다는 위장 장애를 일으키기에 피하는 게 좋다고 한다. 햄버거, 피자 같은 기름진 음식은 포만감을 줘 술 깨는 기분을 주지만, 실제 위의 운동속도를 지연시켜 소화를 방해한다. 차라리 음주 전 먹는 게 낫다. 알코올이 혈류를 통해 전해지는 속도를 늦춰 숙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콩나물국, 생태탕, 조개탕, 북엇국과, 곰치국, 과당이 함유된 차나 녹차가 알코올 분해와 숙취 해소에 좋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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