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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워라, 손자의 목소리/리삼민

[기타] | 발행시간: 2012.03.02일 09:37
(흑룡강신문=하얼빈)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지난밤 위병이 도져 온밤 병마와 시름질하던 나는 동녁하늘이 희붐이 밝아올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굶주린 창자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대충이라도 요기하려고 주방에 들어섰다. 예나 다름없는 썰렁한 주방, 안해가 있었으면 지지고 볶고 생일반찬을 준비하느라고 땀벌창이 되였으련만 손자를 키우느라고 대련으로 간지도 3년째, 신경질환으로 앓고 있는 큰 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쌀을 전기밥솥에 앉히려고 하니 젠장 수도물이 오지 않는다. 랭장고를 열어보니 땅땅 언 두부 두쪽이 썰렁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있다. 아,이렇게 살아 뭘한단 말인가!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커피라도 한잔 마시려고 서두르는데 따르릉~하고 전화벨이 울렸다. 0411…대련에서 온 전화다. "할, 할아버니…생, 생일을 즐겁게 세…세세요…”이제 세살밖에 안되는 손자의 목소리, 곁에서 조선말을 하나씩 배워주는 안해와 딸애의 목소리…훈훈한 봄바람마냥 나의 얼어든 가슴을 녹여준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커피잔에 떨어졌다…

  1970년 겨울, 나는 안해와 결혼식을 올렸다. 만세소리 그칠새없던 세월이기에 지금처럼 호화스러운 승용차도 못타고 거름 나르는 마차를 썼고 결혼식 이튿날에 이불짐을 싸들고 남의 집 헛간에 세간을 났었다. 아침을 먹으면 저녁때거리 걱정이던 세월이였어도 우리들의 신혼생활은 그처럼 달콤하여 나는 중학교에 출근하고 안해는 생산대로동에 참가하는 한편 가마니도 짜고 돼지치기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던것이 1986년 한떨기 생화처럼 싱싱하게 자라던 큰 딸애가 중등전업학교입시에서 1점 차이로 락방하는 바람에 그만 자극을 받고 병석에 들어누웠다. 청천벽력같은 타격에 빚더미는 갈수록 높아졌고 온 가정은 수심에 잠겨 처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1992년 3월 딸애를 구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나는 결연히 단위에 사직서를 내고 러시아장사길에 올랐다.

  철물장사, 식품거래, 과일도매… 시베리야 찬바람속에서 장장 13년 언 헬레브쪼각으로 굶주린 창자 달래던 나날 그 얼마였고 차디찬 감방에서 옥고를 치르던 나날 그 얼마였던가! 허지만 나와 안해는 몸은 비록 수천리 떨어져있어도 내 '둥지'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신념하나만은 잊지 않았다.

  나는 우쑤리스크, 나호드카, 울라지보스도크를 전전하며 장사의 끈을 놓치지 않았고 안해는 고혈압을 이겨내면서 과일과 남새공급을 이어대여 끝내 두 어깨를 지지누르던 20여만원의 빚더미를 털어버렸다. 그사이 작은 딸애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련에 취직하였으며 시내에 아파트도 사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다.

  "할아버지, 술, 술을 적게 마시세요…” 안해보다, 딸애보다 더 정답게 들려오는 손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바다가의 조약돌도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에 씻기우고 으깨지고 부서지면서 비로소 부드럽고 온화하고 동그란 모습으로 변화되는데 만물의 령장으로 불리우는 우리 인간들이 남과 남이 만나 수십년을 같이 사느라면 어찌 마찰이 없고 걸림돌없이 순탄하게만 살아가겠는가? 어느 한 명인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내 살점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대방의 아픈 상처를 지워주고 내 머리칼이 허옇게 되더라도 참고 기다리고 리해하고 용서함이 내 가정을 일떠세우는 밑거름이 될것이고 눈물 많고 한숨 많은 이 풍진세월의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극복한다면 내 가족, 내 '둥지'도 어차피 포근해지지 않을가! 아침해가 살며시 얼굴을 쳐들었다. 나는 품속에 넣었던 귀여운 손자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술잔을 들었다.

  /리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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