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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제명 논란, ‘죽은 시인’에겐 의미없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2.17일 17:31
한국작가회의가 꽤나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지난 16일 오후 열린 작가회의 총회는 한 회원의 발언, "우리 회원 중에 회원의 소양을 갖추지 못한 분을 어떻게 할지, 총회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란 말이 발단이 됐다.

바로 김지하를 '제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회원들의 찬반 표명이 이어졌고 이시영 이사장은 "다음 이사회에서 적절한 수준의 결정을 내리겠다"고 마무리지었다.


김지하에 대한 제명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군사정권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한 '오적'의 시인은 그러나 1991년 조선일보에 실은 기고문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로 이미 한 차례 제명된 바 있다. 하지만 그 결정은 흐지부지됐고 김지하는 현재 작가회의의 고문을 맡고 있다.


1991년은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에 맞아 숨지자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진 암울한 시기였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군사정권을 종식시켰지만 민주 진영이 분열되고 전두환 군사정권의 핵심인물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주진보 진영의 좌절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런 찰나에 강경대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자 대학생들은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김지하는 운동권이 죽음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박홍 서강대 총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지하가 제공한 '운동권은 부도덕한 세력'이란 프레임은 적절하게 먹혀들어갔다. 민주진보진영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김지하는 '변절자'라는 호칭을 이때 얻었다.


하지만 한동안 잊혀졌던 김지하가 다시 부활한 건 최근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다. 단숨에 우파 진영의 원로로 떠올랐다.


그가 더욱 주목받은 건 '말' 때문이다. 그는 안철수 후보를 '깡통'으로 표현했고,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형편없다"고 일축했다. 여권에서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에 대해서는 되레 "윤창중 인사는 최대로 잘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에 대해서는 "쥐새끼 같는 X, 죽여야지"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공개적으로 쏟아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대해서는 "빨갱이 방송"이라고 몰아붙였다.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민주진보진영에 대해 증오와 경멸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처음엔 "김지하가 어떻게…"라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김지하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시인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다'고 한탄했고 또 분노했다. 또 누군가는 '시인이 죽었다'라고도 했다.

▲ 김지하


헌데 보수진영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는 김지하를 두고 "그의 말문이 열릴 때마다 세간의 반응은 폭발적"이라며 "하지만 그런 재미에 빠질수록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부채 의식과 경외심, 시인다운 시인에 대한 기억은 사라질 것"이라고 냉소를 보내기도 했다. 시인과 시인의 언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치를 김지하가 한꺼번에 흔들어놓았기 때문일까.


김지하의 안하무인식 발언과 세간의 반응은 결국 동료들의 마음도 등돌리게 했다. 젊은 문인들은 제명에 적극적이지만 원로문인들의 유보적이라고 한다. 하여튼 작가회의는 거의 22년만에 다시 한 시인의 제명을 논의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회의의 제명 논의는 이미 의미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가진 제1의 재산이 '언어'이고, 그 언어가 인간과 인간이 발 딛고 서있는 사회에 대한 통찰의 결과물이라면, 김지하의 언어는 이미 생명력을 잃었다. 김지하의 언어는 더 이상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지 못하며 어느 진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김지하의 언어는 사람들에게 피로감만 줄 뿐이다.


정의할 수 없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시인'의 상을 김지하는 스스로 걷어찾고 그 작위는 사회적으로도 이미 거세됐다. 그래서 이미 '죽은 시인'에게 제명이란 김지하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부질없는 절차인 셈이다.


미디어오늘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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