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개입 의혹 피소 이틀 만에
● 댓글녀 사건 국정조사도 앞둬
● 검찰, 정치적 부담감 고려한 듯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히는 원세훈(62)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원 전 원장은 통합진보당·참여연대·민주노총·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단체로부터 지난 21일 고소·고발을 당했다. 재임 중 국정원 내부전산망에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란 형식의 글을 올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도록 지시한 혐의(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등이다. 진선미(46)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국정원 내부 문건에는 “심리전단이 보고한 ‘젊은 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방안’은 내용 자체가 우리 원이 해야 할 일”이라거나 “종북 세력 척결과 관련,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 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 어렵다”는 등의 표현이 담겨 있다. 야당과 일부 단체는 대선 전 인터넷 여론조작을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모(29·일명 ‘국정원 댓글녀)씨의 활동도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원 전 원장은 21일 원장 퇴임 후 미국 스탠퍼드대 객원연구원으로 가기 위해 24일 출국할 예정이었다. 원 전 원장이 출국할 경우 고소·고발 사건 수사는 물론 ‘국정원 댓글녀’에 대한 국정조사도 차질을 빚을 상황이었다. 출국 계획이 알려지자 야당에선 즉각 ‘도피성 출국’이라며 검찰에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이정회)는 이례적으로 주말인 23일 오후 원 전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전 원장이 고소된 지 이틀 만이었다. 검찰은 “수사절차상 필요해 부득이 출금 조치했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야당에서 출국금지를 요청했는데도 원 전 원장이 그대로 출국할 경우 비난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외로 도피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원 전 원장이 출국금지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며 “국정원 수장으로서 당당히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낸 원 전 원장은 ‘MB의 오른팔’로 불린다. 원장 재임 중 MB정권에 비판적으로 분류된 박원순(57) 현 서울시장 등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박 시장을 상대로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가는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었다. 방송인 김미화(49)씨도 “국정원 직원이 두 번 찾아와 ‘VIP가 당신을 못마땅해 한다’고 했다”며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박근혜 현 대통령조차 세종시 문제로 정권과 갈등을 빚던 2009년 국정원에 의해 사찰당했다는 폭로가 국회에서 제기됐었다.
국정원법은 ‘원장·차장 등 직원은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권영해(76) 국가안전기획부장이 “김대중 후보가 김정일한테 돈을 받았다”는 등 허위 사실을 퍼뜨리도록 공작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