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책 사례 보니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는 박근혜정부가 처음 시도하는 게 아니다. 이명박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3월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응해 내놨던 정책이다.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고용의 질이 좋지 않은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됐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28조4000억원 규모의 '수퍼 추경'을 내놨다. 일자리 나누기를 포함한 고용 대책도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4조9000억원의 고용 대책 재원 중 4762억원이 일자리 지키기와 나누기에 배정됐다. 정부는 기업이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교대제를 실시할 경우 줄어든 임금의 3분의 1을 지원키로 했다. 또 생산량 감소와 매출 축소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휴업이나 조업 단축 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3000억원이 넘는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이러면 모두 22만 개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셈법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부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공기관이 앞다퉈 청년 인턴을 채용했지만,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쪽에선 나이 든 직원들을 명퇴시켜야 했다. 어떤 곳에선 새로 입사하는 대졸 초임 직원의 임금을 줄여 청년 인턴을 고용했다. 숫자를 채우기 위해 업무와 무관한 일자리를 만드는 고육지책도 속출했다. 수자원공사는 저소득층 주부 사원 600명을 채용해 월급 60만원을 주고 1년간 장애인·치매노인 돌보기 등의 역할을 맡겼다. 주택공사는 사원 복리후생비를 줄인 예산 40억원으로 주공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 1000명에게 단순 일자리를 제공했다.
노조의 반발도 심했다. 노사 합의로 결정해야 할 임금 삭감을 노조의 동의 없이 밀어붙인다는 이유였다. 노동계는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되, 모든 근로자의 고용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들도 “일자리 나누기로 근로자가 증가하면 임금 외에 간접비용이 추가로 들고, 임금 감소에 따른 노동계의 반발도 예상된다”고 맞섰다.
양자의 힘겨루기 속에 일자리 나누기는 서서히 용두사미가 돼 갔다. 이명박정부 5년간 공공 및 민간 분야 양쪽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증가했다. 청년 취업난은 갈수록 악화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규용 노동통계연구실장은 “이명박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은 사실상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일자리 나누기에는 노동 시간 줄이기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 같은 노력 없이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했다”고 말했다.
세종=최준호 기자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