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고법 303호 법정. 재판장은 주문을 낭독했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160시간의 사회봉사활동.”
방청석에 앉아 있던 노부부는 “판사님,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며 허리 숙여 인사하고 또 인사했다. 아들은 특수강도미수 및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상태였다.
노부부의 아들 박모씨(24)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부업체로부터 1000만원을 빌린 뒤 중형 고급세단을 구입, 자가용영업에 나섰다. 생각보다 장사가 되지 않으면서 빚이 빚을 낳아 이자는 월 100만원으로 불어났다.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이 계속되면서 박씨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그는 지난 2월15일 후배와 후배의 지인들을 모아 “나 대신 1억원이 든 아버지의 통장을 훔쳐오면 1인당 1000만원의 수고비를 주겠다”고 꾀었다. 박씨로부터 집주소와 비밀번호를 건네받은 후배들은 다음날 새벽 집으로 숨어들었지만 이내 발각됐다.
경찰서에서 마주한 진실은 이 모든 범행의 주동자가 결혼 후 11년 만에 얻은 외동아들이란 것이었다. 부모는 경찰조사 때부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박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극악무도한 패륜범죄”라고 질책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3부(임성근 부장판사)는 박씨에게 기회를 줬다. 부모의 “내 탓이오”가 재판부를 움직였다. 부부는 “자식에게는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밤낮없이 일만 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자식을 잘못 기른 우리들을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자신들이 모은 돈으로 지어올린 건물사진도 제출했다. “아들과 함께 운영할 식당”이라고 했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박씨가 거의 매일 반성문을 제출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부모 역시 적극적으로 자식을 잘 돌보겠다고 탄원서를 내는 상황에서 법원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를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