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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도 차이면 술을 찾는다

[기타] | 발행시간: 2014.02.15일 10:26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도 불사할 영원한 사랑을 한다면 매우 좋겠지만, 어떤 이들은 사랑을 하다 이별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별한 몸은 사랑의 대체재로 술을 찾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토요판]

몸 / 사랑에 빠진 몸

▶ 비루한 나의 인생에도 한때 생의 에너지를 채워주던 사랑이 있었습니다. 홀연히 그가 떠나간 자리, 눈물만이 남았네요. 시간이 지나고 또록또록 흐르는 눈물은 멎어가지만 황무지같이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 없네요.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술을 마십니다. 드라마에서 외계인인 김수현도 전지현을 잃고 울다가 술을 마시더니, 초파리도 사랑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을 술로 달랜다네요. 사랑을 잃고 알코올을 찾는 몸의 이야기입니다.

몬터규가(家)의 아들 로미오는 대대로 원수 사이였던 캐풀렛 집안의 딸 줄리엣에게 첫눈에 반하고,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담을 넘어 그녀를 찾아간다. 그러고는 말한다. “당신의 사랑 없이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검에 죽겠어요”라고. 첫사랑의 달콤함과 강렬함에 달떴던 어린 연인들은 결국 사랑 없는 세상 대신 그들 없는 세상을 남긴 채 죽음을 선택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던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이토록이나 오랜 힘을 가지고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죽음으로써 사랑을 끝맺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들의 사랑은 결코 변질되거나 퇴색되지 않고 영원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살아남아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십중팔구 그들의 사랑이 500년 동안이나 반짝거리진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은 안다. 처음에는 ‘너를 하루라도 안 보면 죽을 것 같아’가 ‘너랑 하루라도 더 같이 살면 죽을 거 같아’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사실을.

수컷을 원치 않는 암컷에게

12번이나 차인 A그룹 초파리는

짝짓기를 원하는 암컷과

행복한 시간 보낸 B그룹보다

알코올 섞인 먹이를 선호했다

‘술독’에 빠졌던 초파리는

고대하던 짝짓기 뒤에

알코올 섭취를 딱 끊었다

당신의 몸을 아낀다면

술 대신 사랑을 찾아라

상사병으로 정말 죽을 수 있다

실제로 동물들의 경우, 종종 ‘상대와 함께하는 것’ 혹은 ‘상대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몸에 영향을 미쳐 수명을 단축시키는 데 일조하곤 한다. 미국 미시간대 유전학과의 스콧 플레처 교수팀은 유전학의 단골 소재인 초파리를 이용해 흥미로운 실험을 한 바 있다. 그들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암컷의 페로몬을 분비하는 수컷 초파리, 즉 일종의 ‘여장 초파리’(she-males)를 만들어내 이들을 보통의 수컷 초파리 무리에 섞어 보았다. 그러자 암컷의 페로몬에 흥분한 수컷 초파리들은 짝짓기를 하려고 했지만, ‘여장 초파리’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수컷이었기 때문에 이들과는 교미를 할 수가 없었고, 이는 결국 수컷들의 수명 단축으로 이어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갈망’으로 인한 수명 단축은 수컷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마초녀’(macho-female, 수컷의 페로몬을 내뿜도록 유전자 변형이 된 암컷 초파리)와 함께 살게 하자 정상 암컷 초파리의 수명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들을 요절하게 했을까? 연구진은 죽은 초파리들을 분석한 결과, 체내 지방량이 감소했고 뉴로펩타이드 F(neuropeptide F)의 수치가 매우 상승한 것을 발견했다. 뉴로펩타이드 F는 원래 진화적으로 유리한 행동-짝짓기-에 성공한 경우에 분비되는 물질로, 유전자 확산에 성공했으니 자축하라는 의미에서 주어지는 일종의 달콤한 화학적 보상물이다. 그런데 이들은 실제 짝짓기에 성공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짝짓기를 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음에도 뉴로펩타이드 F의 수치는 매우 올라간 것이 관찰된 것이다. 결국 연구진은 이 현상을 두고 짝짓기에 대한 열망과 실망스러운 결과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욕구불만’(frustrated)으로 인해 초파리의 수명이 단축되었다고 결론내렸다. 결국 상대를 안고 싶고 짝짓기를 하고 싶은 신체적 욕구의 좌절이 호르몬 체계에 교란을 일으켰고, 이는 결국 몸의 균형마저도 깨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의 체내에도 초파리의 뉴로펩타이드 F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뉴로펩타이드 Y가 존재한다고 하니 황진이를 짝사랑하다 죽었다는 양반집 도령이나 나르키소스를 사랑하다가 목소리만 남은 에코의 슬픈 전설에는 생물학적 근원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충분한 짝짓기는 생명 연장의 디딤돌이 될 것인가? 물론 이에 대한 연구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유전학과의 앤 브루넷 교수팀은 선충(nematode)을 이용한 수명 연구에서 ‘수컷의 존재는 선충의 생명 유지에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선충의 경우 99%는 자웅동체로, 자연적으로 완전한 수컷은 1% 정도만 태어난다. 그런데 이 수컷 선충을 일반 선충-자웅동체-과 같이 배양하면 일반 선충들에게는 근육과 장기가 퇴화되는 ‘노화’ 현상이 일찍 나타나고 결국 빨리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수컷의 존재가 이들에게 조로증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수컷 없이도 알을 낳아 번식할 수 있는 자웅동체와는 달리 상대가 알을 낳아주어야만 번식할 수 있는 수컷 선충의 경우, 자신과 짝짓기한 상대가 내 유전자가 섞인 알이 아닌 다른 알을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대를 일찍 늙어 죽게 만드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겠다는 비뚤어진 소유 의식의 선충 버전인 셈이다.

어제는 음력으로는 정월 대보름인 동시에 크리스마스와 함께 커플들의 2대 명절 중 하나로 꼽히는 밸런타인데이였다. 거리마다 화려하게 치장한 초콜릿 바구니를 들고 짝지어 다니는 커플들이 홍수를 이뤘고, 극장이건 레스토랑이건 마치 원래 하나인 듯 꼭 붙어앉은 커플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당신이 솔로부대의 일원이었다면 이런 현상은 당신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마도 커플들이 달콤한 초콜릿을 나눠 먹는 동안, 쌉쌀한 알코올 음료와 함께 허전한 옆구리를 위로했겠지.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술로 달랬다고 해서 자기 비하를 할 필요는 없다. 사랑에 좌절한 이가 알코올을 원하는 것은 우리의 생물학적 몸이 보내는 자연스러운 신호이니까.

‘쾌락 대체재’인 술

미국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 연구진은 언제든 짝짓기를 할 준비를 마친 혈기왕성한 수컷 초파리를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은 이미 짝짓기를 끝내 더 이상 수컷을 원치 않는 암컷과 하루 3번 각각 1시간씩 4일간 맞선을 보게 했고, 반대로 B그룹은 짝짓기를 원하는 암컷 초파리들과 하루 6시간씩 4일간 대면하게 했다. B그룹의 수컷들이 꿈결같이 행복한 4일을 보내는 동안, A그룹의 수컷들은 1시간 내내 암컷의 꽁무니를 쫓아다녔지만 매몰차게 퇴짜 맞는 잔인한 경험을 무려 12번이나 반복해야만 했다. 아무리 초파리지만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이들에게 보통의 먹이와 알코올이 15% 함유된 먹이를 주어 보았다. 그랬더니 B그룹의 수컷들이 보통의 먹이를 찾아간 데 비해, A그룹의 수컷들은 알코올에 대해 확실한 선호 양상을 보였다. 심지어 ‘퇴짜 맞은 수컷’들은 자신의 몸무게에 2배에 이르는 알코올을 섭취하기도 할 정도로 알코올 의존성을 심하게 보였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가여운 수컷들에게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진짜로 짝짓기를 할 기회를 주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알코올 섭취를 뚝 끊었다는 것이다. 초파리의 이러한 행동은 마치 실연한 뒤에는 술독에 빠져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 괴로워하던 이들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술 대신 연인에게 빠져들어 자연스레 술잔을 기울이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때 초파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생화학적 기반에 의한 행동이었다. 초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진화적으로 유리한 특정 행동을 하게 되면 일종의 ‘쾌락 물질’이 분비되어 이를 보상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연달아 암컷에게 퇴짜 맞은 수컷의 경우, 이 물질의 농도가 매우 저하되어 있었고 그 반대급부로 인해 술을 찾게 된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술에 포함된 알코올은 뇌에 작용하여 우울해지고 씁쓸해진 기분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좌절한 경험을 한 초파리가 술에 탐닉하다가도 욕구가 충족되면 더는 알코올을 찾지 않는 이유 역시도 충분히 만족한 기분이 되면 일종의 ‘쾌락 보조제’였던 술은 존재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어제 하루 초콜릿이 아닌 술과 함께 보냈다면, 당신은 하루치의 위안을 술로 대체해 얻은 셈이다. 기억해 둬야 하는 것은 술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와 당신에게 유익한 행동이 주는 좋은 느낌이 상실되었을 때 일시적인 위로를 제공하는 대체재라는 사실이다. 술 대신 당신에게 행복감과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지속적이고 본질적인 대상을 찾는 것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몸을 진정으로 아끼고 위하는 길일 것이다.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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