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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부부생활, 안녕들 하십니까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4.03.09일 14:51
IT 코리아의 비극인가

2008년 열린 진화심리학회 학술회의에서 한 연구자가 유목민 부부의 생활을 심층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야외에서 자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사람이나 가축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 쉽게 깹니다. 이때 함께 눈을 뜬 부부는 무조건 섹스를 하지요. 자식을 많이, 빨리 낳는 것이 중요한 사회인 만큼 이왕 깬 김에 ‘일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섹스는 유목민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경제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섹스가 일이며 놀이였던 시절이 사라졌다. 오히려 섹스의 목적 자체가 모호해진 사회가 됐다.

최재천 원장은 “자녀 출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쾌락이 부부관계의 목적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섹스 이외에도 놀거리가 아주 많다는 점이 성관계의 필요성을 감소시킨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손꼽히는 한국 사회에선 게임, 채팅 등 스마트폰 또는 PC를 통해 할 수 있는 다양한 놀거리가 차고 넘친다. 이것 역시 ‘한국형 섹스리스’가 확산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여성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남편의 게임중독으로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글을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섹스리스 추세가 가장 빠르게 확산되는 30, 40대 연령층이 1990년대 PC통신에서 시작된 온라인 문화를 처음 접했던 세대라는 점을 지적한다.

게임의 경우 온라인 게임이나 콘솔 게임 등을 많이 하는 이른바 ‘다량 이용자(헤비 유저)’ 중 30, 40대가 가장 많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2년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다량 이용자의 연령대는 30대(27.9%)가 가장 많았고, 40대(26.6%)가 그 뒤를 이었다. 모두 20대(26.5%)보다 높은 수치다.

배정원 소장은 “게임이나 채팅, 동영상 등 온라인 콘텐츠가 넘치다 보니 섹스 외에도 즐길거리가 많아진 것”이라며 “부부관계에서는 의도적으로라도 아날로그적인 소통 방식을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부생활, 안녕들 하십니까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 ‘성인남녀 1000명의 性’ 설문조사



‘소가 닭 보듯’ 무심하게 등을 돌리고 잠이 드는 대한민국의 부부. 고단한 삶에 지친 부부는 꿈속에서라도 뜨거운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그 남자

어제도 ‘그녀’를 꿈에서만 만났다. 곱게 빗은 까만 단발머리, 복숭앗빛 뺨, 선홍색 입술, 희다 못해 투명한 목덜미, 그리고….

여신 같은 자태로 나타난 그녀와 나는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도 될 것처럼 뜨겁게 사랑했다.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견디다 못해 잠에서 깬 시각은 새벽 3시. 꿈은 깼지만 여신은 침대 위에 다소곳이 누워 있다. 내 꿈속 판타지의 대상은 바로 내 아내다.

아내는 나의 이상형이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몇 번의 이별과 재회 끝에 결혼해 15년째 한 이불을 덮고 살고 있다. 아내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지만 안타깝게도 몸으로 직접 사랑을 나눌 여유는 없다. 이제는 녹초가 돼 집에 돌아왔을 때 홀로 깨어나 온몸으로 반겨주는 강아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는 것도 힘에 부친다. 지금의 내게, 아내와의 잠자리는 또 다른 ‘노동’일 뿐이다. (K 씨·45세)

# 그 여자

초등학생 두 딸이 1박 2일 수련회를 떠났다. 남편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소파를 차지하고 있다. 냉장고 앞에 서서 마트에서 사온 식료품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그가 다가와 엉덩이를 슬쩍 꼬집고 지나간다. 남편의 소심한 신호다.

내 남자가 나를 원한다는데, 기분이 묘하다. 엄한 곳에서 성추행이라도 당한 듯 짜증도 난다. 평상시 학교로, 학원으로 아이들 매니저 노릇을 하느라 방전된 몸을 충전하기 위해 오늘은 10시간쯤 푹 자고 싶은데….

그렇다고 남편에게 대놓고 짜증을 낼 순 없다. 곧바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노처녀 친구에게 ‘번개’를 제안한다. 다행히 시간이 있단다. 남편에게 밥을 차려준 뒤 “약속이 있다”며 부리나케 현관문을 나선다. 차라리 같이 손잡고 누워 TV나 보자고 했으면 기쁘게 받아들였을 텐데…. 엄마로만 살기에도 벅찬 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갈 여유가 없다. (L 씨·39세)

40%가 섹스리스?

K 씨와 L 씨는 신체기능에 문제가 없는 건강한 남녀다. 외도 상대도 없다. 그런데도 벌써 두 달째 각자의 배우자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 다시 말해 ‘섹스리스(sexless·성관계를 하지 않는 부부나 연인)’다.

이 두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불 속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은 이불 안에서만은 초라한 모습이다. 한국 성인들의 주당 성관계 횟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2011년 제약사 한국릴리가 세계 13개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한국인들의 주당 성관계 횟수는 1.04회로 꼴찌였다. 1위 포르투갈(2.05회)의 절반 수준이다.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가족(아내)과는 손만 잡고 자는 것’이란 농담이 있다. 대문 밖에서 발 빠르게 성 개방이 이뤄지는 것과 반대로 안방에서는 육체적 접촉이 점차 ‘희귀한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왜 인간의 최대 본능 중 하나인 성욕이 사그라지는 걸까.   

▼ 한국 성인남녀 38% “파트너와 잠자리 월 1회 이하” ▼

한국 週평균 성관계 횟수 1.04… 포르투갈 2.05회의 절반 수준

56%가 “주 1,2회 바람직” 답했지만… 그대로 실천하는 성인은 33%뿐

13%는 2개월간 성관계 전혀 안해… “애정 식은탓” 응답은 男 9%-女 14%



동아일보 취재팀과 한국성과학연구소, 리서치전문회사 마크로밀엠브레인은 한국인의 섹스리스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최근 전국의 20∼50대 성인 남녀 1000명(남성 509명·여성 491명, 미혼남녀는 이성교제 중인 사람)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했다. 또 성인 남녀 30명을 직접 만나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사 결과는 흥미로웠다. 응답자 10명 중 약 4명(37.9%)은 ‘최근 2개월간 배우자 또는 연인과의 성관계 횟수가 월 1회 이하’라고 답했다. 이 가운데 ‘성관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람도 12.8%나 됐다.

섹스리스의 정의는 연구마다 다르지만, 통상 건강한 부부가 한 달에 한 번 이하의 성관계를 6개월 이상 지속했을 때를 가리킨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성인남녀 10명 중 4명이 섹스리스가 될, 또는 이미 섹스리스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이 성생활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1000명의 설문 응답자들은 바람직한 성관계 횟수로 주 1, 2회(56.2%)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러나 실제로 1주에 1, 2회 성관계를 가진다는 사람은 전체의 32.8%에 불과했다. ‘주 3, 4회 이상’을 희망하는 이들은 9.5%였으나, 이 역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절반 남짓(5.0%)에 불과했다.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 소장(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원장)은 “머리로는 성생활을 활발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실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섹스리스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현대인의 성 본능이 퇴화한다는 증거”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런 해석에는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섹스리스 현상은 너무 단기간 동안 가속화된 일이라 진화 관점에서 논하기에 적절치 않다”며 “인간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석했다. 이른바 ‘사회적 거세론’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본능을 포기한 여성들



얼마 전 또래 친구들과 만난 여성 기업인 A 씨(42)는 잠자리 문제가 자기만의 고민이 아님을 알고 안도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정보기술(IT) 업체 임원, 대기업 연구원 등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맞벌이 커리어우먼들이다.

회사, 자녀교육, 드라마 등 장르를 불문하고 진행되던 그녀들의 대화는 친구 B 씨가 꺼낸 이야기를 계기로 순식간에 ‘19금 버전’으로 옮겨갔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친구가 있는데, 글쎄 남편이 ‘당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섹시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잠자리를 갖는대.”(B 씨)

“미친 거 아냐? 변태 같아.”(A 씨)

“분명히 둘 중 하나는 바람을 피울 거야. 죄의식에 그러는 거지.”(C 씨)

네 살, 다섯 살 연년생 자녀를 둔 B 씨는 ‘이쯤은 돼야 정상’이라는 듯 속사정을 털어놨다.

“우리 부부 모두 잠자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생애주기를 고려해 관계를 잠시 유보하기로 합의했어. 내가 결혼이 늦어서 애들을 서둘러 낳았잖아. 늦은 나이에 연년생을 키운다는 게 육체적으로 엄청 힘들더라고. 일 끝나기 무섭게 어린이집에 가서 애들 찾아오고, 밥 해 먹이고, 칼퇴근하느라 회사에서 들고 온 일까지 집에서 하다 보면 로맨틱한 세포가 말라비틀어지는 기분이야. 남편도 요즘 회사 일이 많아서 그냥 서로 석 달에 한 번씩 ‘분기제’로 하기로 했어.”

연하 남편을 둔 기업체 임원 D 씨도 ‘고해성사’를 이어갔다.

“나는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외부 모임도 늘어 가는데 남편은 사업 구상차 잠시 일을 쉬고 있거든. 그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고, 남편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다 보니 부부관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어.”

C 씨는 “오르가슴이 뭔지도 모르겠고, 성관계 자체에도 관심이 없다”고 토로했다.

“부부관계 빈도수가 너무 적으니 내가 남편에게 너무하나 싶더라고. 작년 말에 처음으로 한 번 내가 먼저 들이댔는데 그날 남편이 피곤했는지 완곡하게 거부를 했어. 그러면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더라. 나름 ‘속궁합’이 잘 맞는구나 싶어서….”

이들의 사례는 결코 특이한 게 아니다. 설문조사에서 ‘배우자와 성관계를 자주 갖지 않는 섹스리스 커플의 기준’에 대해 여성 중 34.6%가 ‘1년에 1번 미만’이란 답을 내놓았다. ‘3개월에 1번 미만’도 26.1%나 됐다. 이 두 가지 응답을 한 여성을 합하면 60.7%나 된다. 최근 2개월간 파트너와의 성관계를 한 번이라도 피한 이유에 대해 여성 응답자의 32.8%가 ‘성관계를 하는 게 귀찮거나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같은 응답을 내놓은 남성은 18.6%였다. 인터뷰에서는 “남편이 잠자리를 하자는 눈치를 보이기에 일부러 싸움을 걸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설문에서는 성관계에 대한 남녀 간의 인식 및 태도 차이가 상당히 두드러졌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상당히 ‘플라토닉’하고 수동적인 경향이 강했다. ‘대개 내가 배우자나 연인에게 성관계를 먼저 시도하거나 요구한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같은 질문에 대한 남성의 응답률은 절반 가까이(45.1%)나 됐다. 대체로 남성은 성관계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랑이 깊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여성은 성관계 횟수와 사랑의 상관관계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

여성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주요 원인은 출산과 육아, 직장 일에 따른 스트레스로 분석된다. 특히 취재팀이 심층면접을 통해 만난 기혼 여성 상당수는 배우자와의 성관계에 대해 관심을 잃게 되는 시점으로 출산 이후 집중 육아기를 꼽았다. 한국의 직장문화에는 야근이 일상화돼 있고, 맞벌이라도 상대적으로 퇴근이 늦은 남편 때문에 육아 노동의 상당 부분이 여성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만혼(晩婚) 추세로 출산이 늦어진 여성들이 육아에 대한 피로도를 더 크게 느끼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 일에 치인 男… 육아에 지친 女… “각방 생활 더 편해” ▼

성관계 피했던 이유는… 여성 33% “귀찮거나 싫어서”

남성 36% “주변 상황 때문에”… 육아기 접어들며 性관심 급감

“부부관계 횟수 중요” 男 응답률… 30대 초반 54%… 50대 후반 71%



2012년 ‘섹스리스 커플의 증가와 부부 만족’ 리포트를 발간한 양정선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일과 육아를 함께 해야 하는 취업 여성들에게서 섹스리스 성향이 높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여성들은 몸이 힘들어 성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이것이 섹스리스와 저출산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녀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는 시점부터는 자녀 교육에 부부의 관심이 지나치게 쏠리는 것이 부부간 성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로 꼽혔다. 강동우성의학클리닉·연구소의 강동우 원장은 “자녀 위주로 가족 관계가 형성돼 부부의 시선이 서로가 아닌, 아이에게로만 향해지는 것이 섹스리스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녀 교육의 주 결정권자인 아내의 주도로 가족 관계가 아내와 자녀 중심으로 재편되고 남편은 소외되는 와중에서 부부간 ‘힘의 균형’이 깨져 섹스리스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 신장 추세가 아내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아내가 주도하는 섹스리스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색다른 주장도 나왔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은 “과거엔 남편이 요구하면 아내들이 원치 않아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아내들이 ‘나도 피곤하다’며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고개 숙인 3040 남성들

40대 초반 남성 E 씨는 최근 맡았던 프로젝트의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기발령을 받았다.

“성과가 지지부진하자 프로젝트 총책임자였던 부서장이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겨 버리더군요. 외부에서 새로 영입된 부서장은 옛 책임자의 ‘오른팔’이었던 나를 제거하지 못해 안달이었고요.”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분노와 원망이 겹치면서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었다. 그런데 직장에서의 좌절이 전부가 아니었다. E 씨는 집에서도 아내와의 성관계에 거듭 실패하면서 심한 좌절감을 맛보게 됐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30, 40대 남성이 섹스리스 성향을 띠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업무 스트레스로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최근 남편(남자친구)의 성관계 빈도수가 낮아진 이유’로 여성들이 가장 많이 꼽은 것이 바로 스트레스 등 업무적 요인(33.8%)이었다.

남성의 스트레스는 종종 발기부전으로 이어져 ‘비자발적 섹스리스’를 낳는다. 강동우 원장은 “스트레스와 우울, 좌절이 겹치면 ‘심리적 거세’가 된다”며 “경쟁이 심한 한국 사회에선 이 같은 심인성 발기부전이 일어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에 매몰돼 부부관계를 미루는 ‘자발적 섹스리스’ 남성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강 원장은 “정시 퇴근이 어렵고 술 문화가 지나치게 발달한 것이 남성들을 여전히 옥죄고 있다”며 “한국 특유의 고강도 노동 문화 탓에 밤늦도록 일하고, 일이 끝난 뒤에는 동료와의 술자리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관행 때문에 부부관계가 뒷전으로 밀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는 특히 부부관계가 가장 왕성해야 할 30, 40대 남성이 전체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심각한 ‘고개 숙인 남자’가 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성관계 횟수가 파트너와의 관계에 중요한가’를 물은 질문에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고 답한 남성 응답자 비율은 오히려 50대 후반(71.4%)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30대 초반의 긍정 답변 비율은 54.0%, 30대 후반은 63.6%에 불과했다. 40대 초반과 후반은 각각 66.0%, 58.3%였다.

이에 대한 이윤수 소장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성욕이 생체주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작동하게 된 겁니다. 은퇴 시기에 접어들어 여유가 생기는 50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부부관계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지요.”

전문가들은 자녀와 아내를 함께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나 세종시 등 지방 근무로 가족과 헤어져 살게 된 가장이 늘어난 것도 섹스리스 현상을 가중시킨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육아를 장모가 도맡아 하는 ‘신 모계(母系)’ 사회가 자리 잡으면서 처가와 밀접하게 생활하게 된 것도 30대 남성의 ‘비자발적 섹스리스’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육아 문제로 상경한 장모와 함께 사는 김모 씨(38·서울 강남구 개포동)는 “장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주무시긴 하지만 아무래도 부부관계에 신경이 쓰이고, 맞벌이인 아내도 종종 아이 방에서 자다 보니 아내와의 스킨십이 출산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양정선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가족친화적인 방향으로 수립돼야 부부관계도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건강한 부부관계는 노후 행복의 지름길”이라며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 자녀 양육 이후 부부만 남게 되는 시기도 길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친밀감과 화목함을 키워주는 부부간 성생활이 더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김현진 bright@donga.com·김범석·류원식 기자

섹스리스 실태 조사… 다른 나라 부부들은 어떻게 사나

日 부부관계 年45회 세계 최하위… 저출산 재앙 불러

일본의 중견기업 사원인 나카무라 유지(中村勇次·가명·45) 씨는 아내와 잠자리를 한 지 6개월이 넘었다. 그야말로 ‘섹스리스’다. 37세에 9세 연하인 부인과 결혼했는데 각자 편하다는 이유로 싱글 침대를 선택했다. 일본에서는 결혼 후 싱글 침대를 쓰는 부부 비율이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어린 아내와 다투고 난 뒤에는 아내 침대로 건너가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2009년 아이가 태어난 뒤부터는 별거 아닌 별거를 하게 됐다. 아이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치면 다음 날 회사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는 이유로 아내와 각방을 썼다. 그 후 생각이 나서 접근해도 아내 쪽에서 “피곤하다”며 거부하는 횟수가 늘었다. 자연스레 부부 관계는 ‘연례행사’가 돼 버렸다. 한국 근무 경험이 있는 나카무라 씨는 “한국처럼 결혼 후 무조건 더블 침대를 썼어야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섹스리스

일본에서도 부부간 섹스리스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 못지않은 일중독 분위기로 부부들이 지쳐 있는 데다 여성 인권이 신장되면서 아내들이 남편이 주도하는 ‘제멋대로’식 섹스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가족계획협회 가족계획연구센터가 2012년 내놓은 ‘남녀 생활과 의식에 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부부의 41.3%가 ‘최근 1개월간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2004년 첫 조사 때의 31.9%보다 10%포인트가량 늘었다. 연령별로는 35∼39세가 47%로 가장 높았고 30∼34세도 36%나 됐다. 섹스에 적극적인 자세가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남성은 ‘일에 지쳐서’(28%), 여성은 ‘귀찮아서’(24%)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출산 후 성관계를 끊었다’는 응답은 남성 18%, 여성 21%로 나왔다.

연구센터는 2008년 조사 때 섹스리스와 근로시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조사에서는 섹스리스 남성의 63%가 주 49시간 이상 일했다. 섹스리스가 아닌 남성이 주 49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은 49%였다.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는 “주 60시간 이상 노동이 ‘과로사 라인’이라면 주 49시간은 ‘섹스리스 라인’인 셈”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섹스리스는 저출산으로 이어지면서 잠재성장률 저하, 복지 확대로 인한 세(稅)부담 증가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2012년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41이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저히 낮은 수준이지만 일본 언론은 1996년 이후 16년 만에 1.4대를 회복했다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2012년 일본 신생아 수는 103만101명으로 전년보다 1만3705명 줄었다. 반면 고령화 등으로 인해 사망자 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125만6254명으로 신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인구가 6년 연속 줄었다. 섹스리스 부부들의 문제가 전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두드러지는 특이한 현상이다. 1년 평균 성관계 횟수를 물어보는 조사에서도 부부 사이의 섹스가 사라지는 것을 걱정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글로벌 콘돔 기업인 듀렉스가 2005년 세계 41개국의 섹스 빈도를 조사한 결과 일본은 연 45회로 최하위였다. 1위 그리스(138회), 2위 프랑스(120회), 3위 영국(118회) 등에 비해 3분의 1 정도에 머물렀다. 한국 남성의 섹스 횟수도 연평균 65회에 그쳐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섹스 기피를 신성모독처럼 여기는 프랑스

아시아권 국가는 부부간의 섹스리스에 대해 대체로 관대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섹스리스는 중요한 이혼 사유가 되기도 하며 아내들은 결혼생활 중에 ‘성실한 결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남편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한다.

2011년 프랑스 니스에서는 모니크(47)라는 여인이 남편 장 루이(51)를 상대로 21년간 결혼생활에서 성생활을 자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 이에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법원은 1만 유로(약 1460만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남편에게 손해배상금 지불을 명령한 것은 프랑스 민법에 근거해서다. 프랑스 민법에 따르면 부부는 ‘평생의 반려관계’를 존중해 성관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식욕과 성욕을 지극히 ‘정상적인’ 본능으로 바라보는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혼외정사도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부부간에 섹스를 기피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처럼 받아들여진다.

“부부간 협상으로 적정 수준 찾아야”

2011년 프랑스 공영방송 ‘France2’에서는 섹스를 기피하는 일본 청년세대를 뜻하는 ‘초식남(草食男)’과 섹스리스 부부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4000억∼5000억 엔대로 성장한 성인비디오(AV) 시장, 교복을 입은 사춘기 소녀의 나체 등 낯뜨거운 사진으로 가득한 성인잡지 등 각종 에로틱 문화가 나날이 번창하는 일본에서 왜 섹스리스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는지 서구인의 눈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바로 이렇게 발달한 일본의 섹스산업이 섹스리스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간 AV에 노출된 젊은이들이 비디오나 잡지로 손쉽게 혼자서 해결하는 쪽을 선호하고 굳이 번거롭게 성행위에 탐닉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피에르 콜 감독은 “일본에서 섹스는 터부(금기)가 아니다. 사라지는 것은 성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부부간의 관계”라고 말했다. 부부 관계를 위기에 빠뜨린 측은 주로 남성인 것으로 지목됐다. 급속하게 변하는 사회와 가정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남성들이 부부간 섹스리스에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나 한국 등이 프랑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부부가 섹스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혼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결국 이 나라들은 2050년이 되면 인구의 절반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부 섹스리스 해결법은?

‘당신은 여전히 매력적’ 신호를 보내라

‘대저 결혼파탈의 원인이 성적으로 맞지 안는데 잇다는 것은 부정(否定)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다른 곤난으로 생기는 불화 알륵(알력)이 잇다 하더라도 만일 성적관게가 만족하면 용이하게 조화될 수가 잇다.’(동아일보 1939년 9월 4일자 ‘家庭讀本(가정독본) 三十(삼십) 가정화락의 법측 五(오) 조그만 친절을 하라’ 중에서)

섹스리스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적인 부부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성(性)을 매개로 한 배타적인 애정은 부부를 맺어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생리학적으로도 성관계는 부부의 친밀감을 강화하는 옥시토신 등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대개 부부의 결혼생활 만족도는 성생활 만족도와 비례한다.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잘 통한다’ 혹은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부부들에 대해 전문가 상당수는 “그런 사람들은 실제 보이지 않는 ‘불씨’를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부부 폭력 뒤에는 대체로 성적 불만이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다시 말해 장기간의 섹스리스 상태는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 소장은 “성관계 없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공언하는 부부 중에는 나중에 이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최근 이혼율 상승과 섹스리스 부부의 증가세는 적잖은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간 섹스는 욕구 충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당신을 이성으로서 매력적으로 여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부관계를 하나의 소통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섹스리스 부부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극복하는 첫 단계로 ‘대화’를 권한다. 김재영 퍼스트비뇨기과 원장은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부부끼리 대화를 하거나 취미활동을 같이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전문가들은 장기간 섹스리스 상태가 계속될 경우, 특히 남성에게 신체적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 볼 것을 권한다. 정서적 요인에 따라 성관계의 유무와 빈도가 결정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상대적으로 육체적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보통 부부가 3개월 이상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면 남편에게 호르몬 이상에 따른 발기부전 등 치료가 필요한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는 게 좋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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