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사회 > 사건/사고
  • 작게
  • 원본
  • 크게

“대기하라” 안내방송에 세월호 떠올린 승객들 “문 열자”

[기타] | 발행시간: 2014.05.04일 08:34
[서울 지하철 추돌 사고/상황 재구성]

뒤차 “역 진입” 방송하고도 질주… 꽝 하는 순간 불 꺼지고 아수라장

서로 부딪히고 깔린 승객들… 직접 비상문 열고 선로로 뛰어내려

시민 채성진 씨는 2일 오후 3시 30분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개찰구에 들어서다 열차의 위치가 표시된 전광판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전동차는 앞차와 뒤차가 2, 3개 역 정도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데 전광판 화면 속에는 열차 모양 아이콘 2개가 거의 나란히 붙어 있었다. 승강장으로 내린 채 씨는 놀라온 광경을 목격했다. 전동차(2260호)가 돌진하듯 역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열차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들어왔어요. 여기가 역인데….”

당시 선로에는 이미 다른 전동차(2258호)가 들어와 있었고 이제 막 왕십리역을 향해 출발한 참이었다. 이 열차 맨 뒤칸에 타고 있던 박모 씨(52)는 문 앞에 서서 휴대전화로 윷놀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목적지인 성수역까지 네 정거장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박 씨가 탄 칸의 좌석은 빈자리가 없었고 그 앞에 사람들이 빽빽이 서 있었다. 전동차는 평소보다 역에 오래 머물며 전동차 출입문과 스크린도어를 여러 차례 여닫았다. 일부 승객은 “왜 출발을 안 하느냐”고 항의하듯 소리쳤다.

승강장에 들어서던 전동차(2260호) 맨 앞칸에 탄 대학생 배모 씨(20)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상왕십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열차가 속력을 줄이지 않는 것이었다. 배 씨가 차창 너머로 바깥 상황을 살피려던 순간 덜컹하는 진동과 함께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쾅!’

배 씨는 앞쪽으로 구르면서 어딘가에 강하게 부딪히는 충격을 받았다. 서 있던 승객들도 대부분 중심을 잃고 앞쪽으로 튕겨 나가며 서로 부딪히고 깔렸다. 잡고 있던 안전 손잡이를 계속 잡고 있던 한 중년 여성은 허리가 확 휘었다. ‘악’ 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열차 칸 앞쪽은 앞으로 휩쓸려온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며 생긴 상처 때문에 바닥 군데군데에 핏자국이 뱄다. 몇 초 뒤 열차 내 전등이 모두 꺼졌다. 열차 앞쪽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승객이 “이러다 폭발하는 거 아니야” 하고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승강장에 서 있었던 채 씨는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뒤차가 앞차의 꽁무니를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뒤차는 3량이 아예 선로에서 벗어나 있었다. 전동차 간 이음매 부분은 구겨지고 부서져 있었다. 뒤차 앞쪽 칸 유리창도 산산이 깨졌다.

앞차 맨 뒤칸에 서 있었던 박 씨는 추돌 충격으로 의자 옆 난간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혔다. 순간 얼굴이 화끈하며 정신을 잃었다. 앞차도 충돌 직후 전기가 나가 객실이 어두워졌다. 일부 승객이 휴대전화 손전등 기능을 작동시켜 안을 밝히자 몇 명이 비상구 옆에 있는 수동 개폐 장치를 통해 문을 열었다.

박 씨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20대로 보이는 남성 3명이 자신을 부축해 열차 밖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박 씨의 점퍼 가슴팍은 코에서 흘러내린 피로 붉게 얼룩져 있었다. 박 씨는 정신이 혼미한 채로 지하철 계단 쪽에 걸터앉았다. 승객들은 다리를 절뚝이며 어두운 선로를 통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역무원이나 제복을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선로 주변에선 “엄마!” “○○야!” 하며 서로를 다급히 찾는 외침이 간간이 들렸다.

사고 후 얼마나 지났을까. 뒤차에서는 “밖으로 나오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어둠 속에서 “대기하자”는 의견과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한 남성이 “세월호 때도 시킨 대로 가만히 있다가 다 죽었어”라고 소리치자 ‘빨리 문을 열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승객이 전동차 문을 열었고 승객들은 밖으로 빠져나가 선로를 따라 상왕십리역 승강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젊은 여성들은 두려움에 질린 듯 흐느꼈다. 승객들은 곧 “침착하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남자 승객 서너 명은 차 비상문을 열려고 손가락을 문틈에 넣고 끙끙댔다. 한 승객이 벽 쪽을 더듬더니 비상레버를 찾아 당겼다. 문이 열렸다.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머리가 희끗한 노인을 부축했다.

승강장에서 사고를 처음부터 목격한 채 씨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열차 안에서 힘들게 몸을 이끌고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머리가 새하얀 지팡이 든 할머니, 만삭의 임신부, 교복 입은 학생들도 있었다. 잠시 후 뒤차 맨 앞쪽 문이 열렸다. 기관사가 어깨와 팔 부위에 피를 흘리며 문을 열고 나왔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기관사실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부상자들은 밖에 대기하던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승강장에는 “기관 고장으로 열차 운행이 불가능하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멘트가 나왔다. 다행히 다친 곳이 없는 승객들은 지상으로 올라가자마자 황급히 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진 지 17일째인 2일 전동차 승객 1000여 명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25%
10대 0%
20대 0%
30대 25%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75%
10대 0%
20대 50%
30대 25%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길림에서 만나 책의 향기를 함께 누리자’를 주제로 한 제1회 동북도서교역박람회가 5월 17일부터 19일까지 장춘국제컨벤션쎈터에서 개최된다고 4월 23일 동북도서교역박람회 조직위원회에서 전했다. 이번 박람회는 책을 매개로 산업발전의 성과를 보여주고 산업교류플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제게 너무 큰 위로” 작곡가 유재환 결혼, 예비신부 누구?

“제게 너무 큰 위로” 작곡가 유재환 결혼, 예비신부 누구?

작곡가겸 작사가 유재환(34) 인기리에 종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린 작곡가겸 작사가 유재환(34)이 결혼을 발표하면서 예비신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앞서 유재환은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결혼 일정 나왔어요” 조세호, 여자친구와 10월 결혼

“결혼 일정 나왔어요” 조세호, 여자친구와 10월 결혼

코미디언겸 방송인 조세호(41) 코미디언겸 방송인 조세호(41)가 결혼 일정을 발표했다. 오는 10월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앞서 조세호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녹화 현장에서 결혼 일정을 발표했다. 조세호의 결혼식은 약 6개월 후

흑룡강성 기업 발명 특허 산업화률 전국보다 13.9%포인트 높아

흑룡강성 기업 발명 특허 산업화률 전국보다 13.9%포인트 높아

4월 22일, 제24회 '4·26 세계 지적재산권의 날'을 앞두고 흑룡강성 지적재산권국, 성위 선전부, 성 고급인민법원, 성 공안청, 성 시장감독국은 공동으로 '2023년 흑룡강성 지적재산권 보호 현황' 뉴스 발표회를 개최했다. 발표회 현장 흑룡강성 지적재산권국 당조서기,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