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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없는 행복국가, 범죄율은 좀 살벌하네

[기타] | 발행시간: 2014.07.12일 13:15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코스타리카의 신화와 현실

▶ 우루과이, 이탈리아, 잉글랜드가 포진한 브라질 월드컵 D조는 ‘죽음의 조’로 불렸습니다. 코스타리카를 안중에 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팀이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D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그리스마저 승부차기에서 꺾고 8강전에서 네덜란드와 혈투를 벌였습니다. 이 팀을 보고 2002년 대한민국팀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덩달아 영구 중립국 코스타리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코스타리카는 과연 지상천국일까요? 신화와 진실을 알아봤습니다.

“푸라 비다!”(Pura Vida!)

흔히 주고받는 인사다. ‘순수한 삶’ 곧, “걱정 없는 편안한 인생” 정도의 뜻이다. 스페인어권에서 만나면 ‘올라’ ‘코모 에스타’, 헤어질 때는 ‘아스타 루에고’ ‘아디오스’ 가 일반적인데 다르다. 이 사회의 지향이 드러난다.

인구 475만명, 한국 절반 크기의 나라 중미의 코스타리카다. 브라질 월드컵 8강 진출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오래전부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세계의 화두는 안으로는 복지와 생태요, 밖으로는 평화가 아닐까? 코스타리카가 그 길로 향하고 있어서다.

알려진 대로,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다. 중남미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영세중립국이다. 그 돈은 복지에 쓴다. 분단에 짓눌린 한반도에서 꿈같은 얘기다. ‘중미의 스위스’라 불린다. 국토의 25%가 국립공원이다. 얼핏 낙원이자, 유토피아처럼 들린다.

코스타리카는 1821년 독립 이후에도 내전과 쿠데타 등으로 불안정했다. 1882~1938년 21번의 반란이 일어났다. 1948년 대선도 부정선거 논란 뒤, 군부와 야당을 지지한 대농장주 호세 피게레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6주간 1천~2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집권한 피게레스는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꾸자”며 1949년 군대를 폐지하고 군부의 정치개입을 막았다. 이 나라 평화헌법 12조는 이렇다. “영구적 기관으로서 군대는 폐지한다. 단속과 치안은 필요한 경찰력이 맡는다. 대륙적 협정과 국가방위를 위해서만 군사력을 조직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항상 문민권력에 종속되며,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성명 발표나 선언을 할 수 없다.”

중남미, 특히 주변 니카라과, 에콰도르, 과테말라 등은 쿠데타와 군사독재, 내전과 학살에 시달렸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의 군대 폐지는 이 나라를 중남미의 ‘예외국’으로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다. 니카라과와 2011년 국경분쟁 등 고비도 겪었지만 비무장 원칙은 지켜졌다.

산디니스타 혁명정부 전복 위해

미국이 기지 건설을 요구하자

영세중립국 선언 뒤 이를 거절

군대도 없고 사회복지 수준 최상

중미에서 평화 상징하는 나라

인구 10만명당 피살률 8.5명

중미 평균 26.5명보다 낮지만

세계 평균 6.2명보다 40% 높고

이 역시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

폭력강도·대인절도도 늘어

이라크전 지지 밝히자 대통령을 제소하다

반란 실패 뒤 혹독한 대가와 교훈, 대립과 분쟁을 피하려는 국민성도 민주주의가 안착한 배경으로 꼽힌다. 소외된 식민지였다는 역사도 중요하다. 코스타리카는 희귀 광물도 없었고 노동력으로 쓸 원주민도 많지 않아 매력적 식민지가 아니었다. 스페인 왕권의 관심 밖이라 식민지 지배 권력이 취약했다. 이 덕에 독립 이후 대토지 소유구조에 기반한 경제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의 결탁, 이에 따른 정치적 불안도 없었다. 경작지가 충분하고 노동력은 제한돼 커피 재배를 바탕으로 중소 자산계급이 성장했다. 1943년에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고 노동법이 제정됐다. 군대를 폐지한 1949년 새 헌법은 여성과 흑인에게 참정권을 주고 독립적 선관위도 창설했으며 모든 공직의 연임도 금지했다. 미국은 냉전시대 자유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전진기지로 지원했다. 유엔개발계획(UNDP)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 의회 의석의 38.6%가 여성이다. 한국보다 이른 2010년, 라우라 친치야가 첫 여성 대통령에 올랐다.

유엔평화대학 본부가 이 나라에 있다. 그만큼 중미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나라다. 그 토대가 된 영세중립국 선언도 역사적 배경과 함께 지정학적 상황에서 나왔다. 미국은 코스타리카 북쪽 니카라과에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정부가 수립되자,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콘트라’ 조직을 지원하면서 군사기지 건설을 요구했다. 코스타리카는 1983년 국제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해 미국의 압력을 거절했다. 2009년 호세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대통령이 쫓겨난 뒤 추방된 나라가 코스타리카다. 이런 중립정책은 한때 일본 평화운동가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불렀다.

흥미로운 판결이 있다. 대통령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윤리적 지지’를 밝히자, 한 대학생이 그를 제소했고 7명의 판사가 전원 일치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80년대 들어 미국과 산디니스타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과테말라에서 내전으로 10만명이 희생되는 등 주변국 상황이 악화됐다. 오스카르 아리아스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1987년 ‘아리아스 평화플랜’을 성사시켜 중미 5개국 평화협정을 이끌고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국에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가 알려져 있다. 코스타리카도 빈곤지역 청소년을 위한 비슷한 음악 프로그램(SINEM)이 전국 60여곳에서 운영된다. 군대에 들어갈 예산을 사회복지에 쓸 수 있는 덕이다. 유엔개발계획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 중등교육 이상 교육을 받은 여성의 비율은 54.5%로, 중남미 평균(49.8%)보다 높다. 의료 서비스가 발달해 평균수명은 2012년 기준 79.2살로 지역 평균(74.7살)보다 훨씬 높다. 유엔 중남미경제위원회(ECLAC) 2013년 발표 자료를 보면, 15살 이상 급여생활자 가운데 86.9%가 의료보험에 가입돼, 중남미 평균(66.4%)을 크게 웃돈다.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연금 수령자는 63.6%로, 이 지역 평균(41.9%)보다 노후가 잘 보장돼 있다. 1인당 국민소득(GDP)은 1만2900달러(2013년, PPP)밖에 안 된다. 하지만 알려진 대로 영국 신경제재단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2009년과 2012년 1위에 올랐다. 143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탄소지수 등 정신적 행복과 물질적 풍요를 반영한 지수다.

코스타리카는 ‘풍요로운 해변’이란 뜻이다. 이름처럼 태평양과 대서양에 아름다운 바닷가를 가진 나라다. 수도 산호세는 해발고도 1180m로 1년 내내 기후가 쾌적한 고산도시에 열대우림이 어우러졌다. 영화 <쥬라기 공원> 촬영지다. 날씨가 좋으면 기분도 좋다. 그 속에서 공존의 길을 걷는다. 단위 면적당 생물 다양성이 세계 2위다.

코스타리카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는가? 도타 커피란 게 있다.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커피다. 생산과 운송, 판매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인 제품으로, 2010년 도타 커피가 최초로 인증받았다. 커피 재배 등 농업국가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이용한 생태관광과 녹색산업을 키우고 있다. 전력생산의 91%가 재생에너지(수력 73%, 지열 13%, 풍력 4%)다. 2004년 석유를 발견했지만 개발하지 않고 있다. 집을 지을 때, 집의 높이가 나무보다 높으면 안 되는 지역이 있다고 한다.

평화, 민주, 생태, 복지, 행복… 코스타리카는 낙원이자, 유토피아인가? 낙원과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답은 “그렇다”. 멕시코 콜리마대학교 림수진 교수(지리학)의 의견을 들어보자. 2001~2003년 코스타리카에서 살며 지역연구를 했고 이후로도 최근까지 수차례 방문했다. 림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낮은 임금은 살인적 물가를 따라잡지 못해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치안불안이 심각해 집집마다 철조망이 높이 쳐진 게 현실이다”며 “그나마 장학금 등 복지는 잘된 편이지만, 열악한 주변 중미 국가와 비교한 상대적인 행복이자, 과거 행복한 시절에 젖은 현실회피”라고 평가했다.

“이민자 차별 사례 수두룩…평화는 백인에 해당”

유엔 중남미경제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2000~2010년 물가 상승률이 10.1%로 중남미 평균(7.8%)보다 높다. 빈곤층은 17.8%에 이른다. 상위 20%가 소득의 49.3%를 가져가는 반면 하위 20%는 4.7%밖에 못 가져, 16.5배가 차이 난다.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0년 0.438에서 2012년 0.504로 나빠졌다.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지수로 보면 세계 62위다.

중남미에서 권총강도나 소매치기 등을 겪으면 질린다. 치안이 삶의 질에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유엔마약범죄사무국(UNODC) 2013년 보고서를 보면, 코스타리카는 2012년 인구 10만명당 피살률이 8.5명으로 중미(평균 26.5명)에서는 가장 낮지만, 2000년 6.4명에서 나빠졌다. 세계 평균(6.2명)보다는 40% 가까이 높다. 한국은 0.9명이다. 폭력강도와 대인절도가 2012~2013년 각각 22.9%와 37%가 늘었다. 코스타리카는 지난 3월 대선에서 60년간 지속된 양당 체제를 지켜온 우파가 무너졌다. 부패와 경제난, 사회불안이 깊어졌고, 중도좌파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대통령이 내건 게 교육과 의료 분야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따른 불평등 개선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을 ‘티코’(남자, tico), ‘티카’(여자, tica)라고 부른다. ‘작다’는 뜻의 애칭이다. 낙천적이며 따뜻한 국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니카라과 내전 등을 피해온 40만~100만명 넘는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곧 ‘니코포비아’에 대한 연구가 수두룩하다. 림 교수는 “카리브 출신 흑인과 동양인 등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지독한 것을 보면 평화나 ‘푸라 비다’의 가치를 실천하기보다는 자기 최면이다”며 “풍요롭고 평화로운 나라는 백인들에게 해당되고 그것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후반까지의 과거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1948년 이전에는 흑인 기관사가 모는 기차는 대서양 연안에서 오다가 중간에 백인으로 바꾼 뒤 수도가 위치한 산호세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나라 인구의 83.6%가 백인 및 백인계 혼혈이다.

코스타리카, 그곳은 낙원은 아니다. 그곳의 삶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래도 분단과 대립, 일본 등 주변국의 도발, 4개강 사업으로 파헤쳐진 국토… 낙원이 아닌 코스타리카조차 그 지향은 부럽다. 지속가능한 평화복지국가, 그 미래를 같이 꿈꾸자. 발상 전환의 즐거운 상상, 이런 게 진짜 국가 개조다.

산티아고/김순배 통신원 otromundo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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