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세계 유수 영화제 8관왕을 휩쓴 영화 ‘봄’이 국내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최근 국내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 속에 베일을 벗은 ‘봄’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따뜻한 정서, 박용우·김서형·이유영 세 배우의 호연이 어우러져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봄’의 개봉을 사흘 앞둔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용우를 만났다. 박용우는 60년대 말, 한국 최고의 조각가였으나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불치병으로 삶의 희망을 놓은 ‘준구’를 연기했다. 준구는 헌신적인 아내 정숙(김서형 분)과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민경(이유영 분)을 통해 죽음의 문턱에서 ‘삶이 곧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우친다.
‘봄’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당시, 박용우는 많이 지쳐 있었다고 털어놨다. 예술적 성취 만을 탐닉했던 준구가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으며 인생의 ‘봄’을 맞은 것처럼, 지금은 박용우도 봄처럼 밝고 따뜻한 기운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예전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생각보다 성과가 없는 것 같고… 그런 생각들이 봇물 터지 듯 들었죠. 그 때 받아본 시나리오가 ‘봄’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심심할 수도 있고 뻔한 것 같기도 한데 몰입이 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덮었을 때는 내 억울한 감정이 이 작품을 하면서 해소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덕분인지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덕분인지 ‘나락으로 떨어졌’던 박용우는 최근 다시 활력을 찾았다. 한없이 우울하고 무력감에 빠졌던 이유를 스스로 진단했을 때 “연기자로서 나름의 욕심과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는데 안 그런 척, 초연한 척 하며 살다보니 마음 한 구석에서 폭발한 것”이었다. 취미가 있더라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과시하는 정도에 그쳤다.
박용우는 “행동하는 게 정답인 것 같다”며 “지금은 원하는 게 있으면 즐겁게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로 사적인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그는 2년 전부터 시작한 드럼 연주도 즐기고 있고, 맛있는 것을 찾으러 다닐 때도 행복을 느낀다. 일년 반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또한 즐기고 있다. 얼마 전 SBS ‘식사하셨어요’에서 보여준 이두박근은 실제의 5분의 1도 안 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렇다면 박용우 인생의 ‘봄’은 지금일까. 그는 “내 인생에 봄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소소한 봄이 있고 커다란 목표의 봄이 있다고 봐요. 사소한 부분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정도의 ‘봄’이라면 요즘엔 제법 자주 만나고 있어요. 그보다 더 큰 ‘봄’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내 인생에선 없었으면 좋겠어요. ‘봄’이라는 희망을 안고 계속 살고 싶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소소한 것들을 이뤄가다가 죽을 때쯤 ‘합쳐보니 많은 것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눈 감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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