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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4] 세 아이의 《대리어머니》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03.18일 14:30

어린 마숭의 가슴에는 붉은 넥타이가, 김영자할머니의 가슴에는 붉은 저고리 고름이 나붓긴다.

—김영자(82)할머니의 인생추구

장춘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에 가면 세 아이의 《대리어머니》로 불리우고있는 김영자할머니가 있다. 올해 82세인 그는 제1자동차공장의 리직간부이다.

호기심으로 가득찬 기자는 취재를 떠나기전에 김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문사에서 221선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건설은행이 있는데 그 옆 층집이 바로 우리 집이요.》 연변말투였다. 고령과는 달리 그의 말소리는 각별히 똑똑하고 챙챙하였다.

약속한 시간대로 김할머니네 집어구에 당도해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전자풍금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김할머니네 집 초인종을 누루자 조금뒤 커다란 두눈, 덩실한 코마루에 안경을 낀 김할머니가 문을 열고 뜨겁게 반겨준다.

방에 들어가니 전자풍금과 그 우에 놓인 악보가 보인다. 《할머닌 전자풍금도 치시네요?》기자의 물음에 김영자할머니는 《양, 하하하~ 》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할머니는 매일 오전 30-40분씩 전자풍금을 친단다. 리직후 로인대학에 가서 배웠단다. 할머니는 풍금을 어루만지며 《이 2400원짜리 풍금은 우리 집의 제일 비싼 보물이요.》라고 말한다.

그의 집은 고작 76평방메터, 거실 하나에 방 두개 달린 구조이다. 20년전 원 단위인 자동차공장종업원총병원에서 분배한것이다. 가구와 장식품은 전부 구식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할머니는 군인출신이였다. 15살에 참군하고 항미원조전쟁에 나가 방역대 패장으로 활약했었다.

9년간 한 아이의 《대리어머니》가 되여

장춘시회족소학교는 장춘시의 유일한 회족학교이다. 2007년 3월, 장춘시민족사무위원회의 호소하에 장춘조선족녀성협회는 이 학교의 불우한 학생 4명을 상대로 《대리어머니》활동을 벌리기로 하였다.

그중 유독 3학년 학생 마숭(가명, 남)만이 외부모자녀였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중풍에 걸려 시름시름 집에서 앓고있는 어머니와 함께 구차한 생활에 쪼들리고있었다.

《아버지 없는 이 애를 내가 맡겠소.》 김영자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마숭이의《대리어머니》로 자진해나섰다.

《차세대사업은 단순하게 조학금만 나눠주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청소년들에게 사랑을 전달하고 그들을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정확하게 양성하는것이 주요목적이다.》고 김영자할머니는 말한다.

김영자할머니는 마숭이를 자식처럼 키웠다. 지난 9년간 할머니는 마숭이를 집에서, 학교에서, 공원에서 수십번이나 만났다. 만날 때마다 그는 마숭에게 삶의 도리를 깨우쳐주었다.

무더운 한여름의 어느날, 마숭이가 어머니와 함께 김할머니네 집에 놀러왔다. 마숭이는 덥다며 자기에게 부채질을 미처 못해주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부렸다.

할머니는 조용히 마숭이를 서재로 불러냈다. 《마숭아, 네가 더우면 어머니는 덥지 않겠니? 바꿔서 네가 어머니에게 부채질을 해드리는것도 큰 보답이야.》라고 설득했다.

또 집에서, 혹은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밥상을 같이 차리는것도 어머니에 대한 효도다. 어른들이 수저를 먼저 든후 따라 드는것이 례의이다. 채를 집어드리는것도 어머니에 대한 배려이다.》고 일깨웠다.

서로 만나지 못할 때는 전화로 마숭이의 근황을 료해하고 고민을 풀어주었다. 할머니의 관심과 가르침속에서 마숭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숙되여갔다.

해빛이 잘 비쳐드는 할머니의 서재이다. 김할머니는 마숭이가 쓴 일기책을 기자에게 꺼내보인다. 일기는 이렇게 썼다.《나의 조선족 〈대리어머니〉는 자상하고 친절한 할머니이신데 선생님같기도 하다. 나한테 필기책과 필을 자주 사준다. 며칠전 6.1절에 할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남호공원에 가 여러가지 유희를 함께 놀아주고 식당에 데리고 가 고기도 사먹여주었다. 갈라질 때 할머니는 나에게 돈 100원을 쥐여주었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할머니는 〈네가 공부를 잘해서 나중에 나라의 유용한 인재가 되기만 하면 된다.〉고 당부했다. 나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집에 돌아와 숙제도 잘하고 공부에도 열중했다…》

《나는 〈대리어머니〉와 〈대리할머니〉들의 사랑과 뜨거운 정을 마음에 품고 어디를 가든 남을 관심하고 락관적으로 곤난을 이겨내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나라와 사회에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 또 조선족어머니와 할머니들처럼 사심이 없는,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이 되겠다…》

일기를 읽어주는 김영자할머니의 얼굴엔 희색이 완연하다.

마숭이는 지금 장춘시 모 중점고중 2학년을 다니고있다. 지난 3월 8일, 장춘시조선족녀성협회의 《3.8》경축행사장에 김영자할머니도 오고 마숭이도 어머니와 함께 왔다. 이날은 협회에서 마숭에게 조학금을 전달하는 날이다. 회원인 김영자할머니는 해마다 마숭에게 1000원씩, 9년사이에 이미 9000원을 지원했다.

마숭의 엄마는 가냘픈 몸을 겨우 지탱하면서 행사장에 와서 김영자할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김할머니와 마숭이는 서로가 그토록 익숙하고 친근하다.

《공부는 잘 하느냐?》 하는 할머니의 다정한 물음에 마숭이가 《학년에서 원래 40몇등이였는데 지금은 십몇등안에 든다.》고 대답하자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난다.

《너무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할머니께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공부를 견지할수 없었을것입니다. 할머니, 부디 몸건강하세요.》 마숭이의 말에 이어 할머니는 《근심말거라, 아직 괜찮으니까,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는 문제없이 밀어줄게…》라고 하면서 뜨거운 두손으로 마숭의 찬손을 어루만져주었다.

키꼴이 훤칠한 마숭이를 보며 할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키가 내 어깨에 와 안아주기까지 했는데…》마숭이에 대한 김영자할머니의 진정과 사랑이 차넘치는 말이다.



지난 9년간, 김영자할머니의 알뜰한 배려와 관심속에서 마숭은 어느덧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두 초중생의 《대리어머니》가 되여

마숭외에도 김영자할머니는 제1자동차공장제1중학교의 초중 1학년 학생 장정(가명, 녀, 한족)과 2학년 학생 왕지(가명, 남, 한족)의 《대리어머니》이다. 김영자할머니는 그들에게 3년사이에 이미 조학금을 3600원 전달했다.

《양로금으로 불우학생도 도와주고 자식도 보살피고 형제도 방조하고나면 나의 생활은 간고할수밖에 없다. 나는 검소한 생활에 습관되여있다. 나절로는 절대 200원이상짜리 옷이나 신을 넘보지 않는다. 아껴쓴 돈으로 불행한 아이들을 공부시키면 얼마나 보람이 있겠는가?》

마숭이를 키우듯이 김영자할머니는 두 아이도 역시 똑같이 대했다. 해마다 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의 통일적인 배치에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문예공연에도 참가하고 식사자리도 만들었다. 때론 학교에 찾아가 위문할 때도 있었다. 짦은 만남과 전화상담을 통하여 김영자할머니는 옳바른 가르침으로 애들의 고민을 풀어주고 그들에게 사랑을 몰부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남을 관심해줄수 있을가요?》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렇게 물을 때면 김영자할머니는 작은 배려부터 시작하라고 차근차근 깨우쳐주군했다.

《관심이란 별게 아니다. 친구가 원주필이 없을 때 빌려주고 밥을 배불리 못먹었을 때 네것을 좀 떠주고 비오는 날 우산이 없는 친구에게 우산을 같이 쓰자며 베푸는것, 이런것들이 다 관심이야.》

《불우학생을 도와주면 본인도 대학꿈을 이루고 사업성취할수 있고 따라서 그 가정의 운명을 바꿀수도 있다. 도와주지 않으면 국가적으로 아까운 인재를 잃게 되는셈이다.》 이는 김영자할머니가 늘 입으로 되뇌이는 습관적인 말이다. 또한 차세대사업의 취지와 맞물리는 말이다.

김영자할머니는 이어 실토정을 하였다.《나는 구차하기 짝이 없는 화룡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나 소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당이 나를 주치의사로 키웠다. 내가 지금 이 정도로 살수 있는것만으로도 당에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한 일은 다 보잘것 없다. 로군인으로서, 로당원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다. 차세대가 무슨 민족이든간에 그들을 관심하는 사업은 나의 직책이다.》

그의 신앙은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것

리직이래 김영자할머니는 장춘지구 7개 중소학교의 64명 불우학생들과 사회의 낯설은 사람들에게 총 10만 6000원을 기부하였다.

올해에 중국제1자동차그룹에서는 그에게 설위문금 4000원을 드렸다.

김영자할머니는 멀리 해남에 출장나가 있는 딸과 토론하여 그 위문금 4000원을 몽땅 자동차공장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에 기부하였다.

그는 자식으로는 딸과 외손자밖에 없다. 그는 딸에게 《내가 너에게 물려줄것은 없다. 내가 죽은 후에 내 수첩에 적혀있는 불우학생들에게 조학금을 보내주는 일을 절대 잊지 말아다우.》고 신신당부했다.

김영자할머니는 기업가가 아니며 다만 양로금으로 여생을 살아가는 리직간부일뿐이다. 지난해 11월 26일, 그는 중공중앙 조직부로부터 《전국 리퇴직간부 선진개인》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못살아도 깨끗이 살라고 교육했다. 당은 나에게 입당하는 그 시각부터 받으려는 생각은 버리고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신앙을 심어주었다. 신앙이 없으면 존엄이 없고 존엄이 없으면 사업을 성취할수 없다. 일단 신앙을 결정했으면 과감히 담당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이것이 곧 그의 인생좌우명이다.

김영자할머니야말로 진정 애국, 애민, 무료봉사의 정신을 몸으로 실천해온 이 시대의 전범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편집/기자: [ 박명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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