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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마을에서 안중근의사의 발자취를 더듬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3.31일 08:49

상우동 황씨댁 옛터를 찾아낸 리호천선생(왼쪽)과 김원범선생(오른쪽)/리광평 찍음.

  (흑룡강신문=하얼빈) 3월 28일, 중국 조선족dml 항일투쟁력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기사를 집필하고있는 김원범선생은 룡정3.13기념사업회 리광평회장과 50년대 룡정덕신진일대를 두발로 주름잡으며 우편배달업무를 충실히 완성하여 전국 로동모범으로 소문높았던 리호천선생(84세)을 모시고 민족영웅 안중근의사가 다녀간 장동마을을 찾았다.

  김선생은 연변문사자료에는 《1905년 늦가을 안중근은 해삼위로 가는 길에 장골에 들려 마을의 국민회 책임자 마병호를 만나 신학을 꾸려 항일을 고취할데 대해 담론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면서 《그날 땅거미가 질무렵에야 장골을 떠나 영동막치기 상우동(지금의 룡정시덕신향영동촌 12대이고 과거의 창동을 지금은 장동 혹은 장골이라고 부른다) 황씨댁에서 하루밤을 류숙하고 이튿날 새벽에 길을 떠났다》고 한다.

  문헌에는 또 《안중근이 떠나간 뒤 그의 민족교육주장을 접수한 창동농민들은 인츰 국민회 책임자 마병호의 인솔하에 안중근의 지향대로 망국노의 운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뜻을 품고 세곳의 서당을 합쳐 세채의 8간집 아래웃방과 사랑칸을 내여 신학을 꾸리고 개학식을 거행하였다.》고 기재되였다고 한다.

  이날 김선생일행은 장동마을에 이르러 마병호댁 원터를 확인하고 학교자리를 둘러보았으며 상우동 황씨댁 집터에도 친히 찾아가 확인하였다. 상우동은 리호천선생의 고향마을이였고 또 리선생이 어릴적부터 우편배달원으로 일하면서 마을마을을 손금보듯 환히 장악하고있어 황씨댁을 찾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일제놈들에 의해 세번 불타버린 장동학교력사를 이야기 하는 마을촌민 태철송/ 리광평 찍음.

  김선생은 안중근의 발자취를 찾아 확인하면서 당년 안중근의 건의로 학교를 세워 반일사상을 고취하고 수많은 애국지사와 항일투사들을 양성한 장동학교는 일제놈들에 의해 3번이나 불타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장동사람들은 그 불탄 페허우에 또 학교를 세우군 하면서 민족교육의 요람을 굳건히 지켜나갔다.

  이속에서 마병호는 물론 많은 진보적인 사생들과 반일투사들이 일본제국주의 총칼에 쓰러져갔다. 광복전까지 60세대 남짓한 장동마을에서 40여명이 일제경찰과 그 주구놈들에게 피살되였다.

  김선생은 연구를 거듭하는 와중에 항일의 봉화가 세차게 타오랐던 곳일수록 축구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였다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1935년 5월 룡정에서 진행된 간도성축구대회에서 창동축구팀이 용맹하게 우승을 따내자 일본총령사는 《장골사람들이 죽기두 많이 죽었겠건만 무슨 사람이 있어서 저렇게 뽈을 잘 찬단말인가?!》하고 개탄했다고 한다.

  김선생이 이곳까지 찾아오게 된데는 별다른 리유가 없었다. 그 역시 이 일대 덕신진 사람으로서 늘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관심을 쏟고있었기때문이다. 그는 워낙 독실한 축구팬으로서 축구라 하면 누구에게 뒤질세라 크고 작은 시비에 열을 올렸고 특히 고향의 축구력사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조선족축구력사에 대한 체계적인 론술에 들어서는 별로 내노라 하는 론거나 주장을 펼수 없었다. 하여 그는 고향마을의 축구명장을 중심으로 조선족축구력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다.



  민족력사현장에서 문헌자료와 촬영자료를 구사하고있는 답사팀일행.

  그는 장동학교는 중국조선족축구의 발원지라고 단정짓는다. 1905년 로선생이란분이 서울에서 축구뽈을 가져다 장동학교 학생들에게 보급하면서 조선족의 첫 축구경기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는 년대별로 명장들의 이름을 정리해내여 2006년 1월 《돌이켜보는 축구명장》이라는 기사를 길림신문에 실었다.

  2007년 7월에는 또 청년생활잡지사로부터 《옛날 덕신은 〈뽈개지》 천하였다》는 문장으로 청년생활 제5회화신문학상 금상을 수상한다. 그는 이렇게 조선족문단에서 축구제재로 문학상 금상을 탄 첫수상자로 되기도 하였다.

  력사인물들을 추적하면서 문헌을 떠날수 없었던만큼 3년전부터 력사문헌을 번지던 그는 또 안중근의 조카 안원생이 중국축구계의 명장으로 활약하게 됨을 발견하게 되며 안원생의 축구인생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국의 안중근기념관을 참관하였고 또 관련 문헌을 읽으면서 안중근이 여기 자신의 고향 덕신진 장동마을을 다녀간 사실도 알게 된다. 하여 그는 이를 단서로 장동마을에 대한 답사를 시작한것이다.

  김선생은 최근년간 력사인물과 력사사실을 쓰면서 많은것을 배우게 되였다며 남의것을 베껴쓰거나 허구를 하거나 떠도는 소리를 곧이 받아들여 력사적진실과 멀어지는 현상은 절대 삼가해야 한다고, 집필에서 꼭 출처와 주해를 밝혀쓰는 기본자세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이번 답사는 현재 필묵을 들여 집필하고있는 《애국지사 안중근의사가 다녀간 장동학교》라는 글이 더욱 력사적진실에 접근하는데 큰 의미가 있을것이라고 확신하고있었다. 이에 이어 그는 또 우리 나라 첫 조선인장군 김복에 대한 집필도 시작할것이라며 민족력사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였다.

출처: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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