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조리 도맡아오고 남편 사망 전 5년 동안 치매까지 간병했지만
남편 자녀 "나가 달라" 소송… 민법상 대응할 방법 없어
60대 여성 A씨는 남편 사별 후 홀로 지내다 소개로 만난 B씨의 구애를 받아들여 20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 왔다. 두 사람은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났지만 금슬이 좋았다. 그런데 지난해 80대 후반인 B씨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후 A씨는 B씨의 자녀들로부터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 달라"는 소장(訴狀)을 받았다. A씨가 살고 있는 집은 음식점에 살림집이 딸린 2층 건물로, B씨 명의로 돼 있었다.
A씨는 B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조리를 도맡아 왔다. B씨가 사망하기 5년 전 치매에 걸리자 간병도 해왔다. 하지만 A씨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다. 사실혼 배우자라서 상속권이 없고 B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재산분할도 청구할 수 없다. "내가 재산 형성에 많이 기여했기 때문에 건물의 일정 부분은 내 몫이다" "B씨와 동업 관계였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는 쫓겨날 처지에 있다가 최근에 겨우 법원에서 조정이 성립돼 현재 살고 있는 건물에서 2년간 살 수 있게 됐지만 그 이후에는 대책이 없다. A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치매에 걸렸을 때 관계를 정리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중이다.
사실혼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사망한 경우 다른 한쪽은 상속 관계에서 보호를 받을 수 없어 '두 번 우는'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다 재산을 사실혼 배우자 명의로 변경한 경우에도 재산은 고스란히 배우자의 상속인에게 돌아간다. 이는 민법 규정상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재산분할 청구는 사실혼이라도 가능하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망 후에는 재산분할 청구도 할 수 없다.
결국 A씨로서는 B씨가 살아 있을 때 증여를 받거나, 사실혼 관계를 끝내고 '내 몫 달라'고 요구해야 했다. 대법원은 그런 경우에는 재산분할 청구를 인정했다. 2007년 3월 C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사실혼 배우자 D씨가 한 달 후 사실혼 파기를 이유로 한 재산분할을 청구하고 한 달 뒤 C씨가 사망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C씨 생전에 D씨의 의사 표시로 사실혼이 종료됐기 때문에 D씨에겐 재산분할 청구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사람의 도리를 다한 경우에 법이 오히려 가혹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사실혼의 범주가 생각보다 넓다"고 말했다. 이혼한 부부가 재결합하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법적으로 이혼하고도 자녀 때문에 같이 사는 경우도 모두 사실혼으로 인정한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 황혼 이혼과 재혼이 늘어나면서 질병으로 인한 배우자의 사망은 예견된 일이라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사 전문 송명호 변호사는 "상속권이 없는 사실혼 배우자의 경우 사망으로 사실혼이 끝난 경우라도 재산분할 청구권을 허용하도록 민법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은경 법조전문기자 key@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