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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50년]《쾅!》 대포알 슈팅… 세상을 들썽했던 공격수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08.13일 16:40

연변팀 전국우승 50돌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4)

-중국조선족축구원로 지청룡선생


길림성축구팀의 창단 멤버이자 1960년대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던 중국조선족축구원로 지청룡선생, 지난 20세기 5~60년대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여난 개인기로 국내 정상급 수준을 대변했던 그는 당시 중국조선족축구의 대변인중의 한명으로 맹활약을 펼쳤던 인물이다.

《조선족축구가 중국에서 버티자면 자기 전통과 풍격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축구형식을 도입하는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굴할줄 모르고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력을 토대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키가 크고 기술도 좋은 다른 팀들과 이기자면 오직 그럴수밖에 없기때문이다. 남이 80%의 노력을 경주하면 우리는 100% 이상의 에네르기를 발산해야 한다.》

최근 사택으로 찾아간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며 이야기끈을 풀던 지청룡선생은 우리 조선족축구에 대한 자신의 일가견을 이렇게 함축했다.



1957년 한영혜녀사와 결혼기념사진을.

1935년 12월 26일, 화룡현 2구(지금의 룡성향)의 천수촌에서 남자 3형제중 막내로 태여난 지청룡은 어릴적부터 두 형의 영향을 받아 축구운동을 그토록 좋아했지만 가정살림이 넉넉지 못해 축구공이나 운동화같은것을 근본 살 엄두도 못냈다. 하지만 타고난 천성이라고나 할가? 어린 지청룡은 축구운동을 포기할수가 없어 새끼거나 헝겊같은 것으로 공을 만들어 뽈을 차군 했다.

그후 소학교를 졸업해 해방을 맞자 지청룡은 그래도 축구를 하면서 부지런히 뛰여다닌 덕분에 구정부의 눈에 들어 통신원으로 활약했고 또 1년후에는 구정부의 추천으로 돈화현 관지중학교에 가서 3년간 공부도 할수 있게 됐다.

학교축구팀의 주력선수로 두각을 내밀었던 지청룡은 중학교를 졸업하자 다시 화룡으로 돌아와 현림업국의 과외축구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1955년에 화룡으로 선수고찰을 내려온 길림성축구팀 제1임감독 마소화의 눈에 들어 전업축구선수생애를 시작했다. 그해 스무살이였던 그는 1959년 북경에서 진행된 제1회전국운동회에서 일약 4꼴을 기록하며 《최우수공격수》란 칭호로 중국축구대표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 해 구 쏘련에서 펼쳐진 6차의 출국방문경기에서도 련속 8꼴을 작렬하며 좌중을 경악시켰고 이듬해 조선에서 있었던 6차의 방문경기에서도 줄줄이 9꼴을 쏟아내며 조선축구계의 탄성을 자아냈다.



구쏘련 초청경기에 참가한 지청룡선생(왼쪽으로부터 세번째).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대포알 슈팅력이 그가 갖고 있는 특기중의 하나였는데 일단 프리킥을 주도한다고 하면 상대방에서 방패막이로 나서는 선수가 별로 없을 지경이였다고 한다. 이른바 그 매서운 《강타》에 한번 당해본 선수라면 마지못해 방패로 나섰다가도 그가 슛하기 무섭게 얼른 피해버리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때 길림성축구팀 선수들의 경력을 보면 모두가 전문훈련같은것을 거치지 못하고 입단했는바 대체적으로 지청룡의 경우와 비슷했다. 창단 초창기 길림성축구팀은 조선족축구의 특점이였던 공격형축구를 늘 구사했는데 이는 후에 팀의 풍격으로 고착했다. 그때 길림성팀의 진영을 보면 공격선에는 리광수, 손중천, 지청룡 등 3명의 선수가 포진해 삼각편대를 이루고있었는데 이들이 일단 시합에 투입돼 서로 패스해주며 공격한다 하면 모든 팀들이 주눅들기가 일쑤였고 두번의 공격에 한번은 기본상 꼴로 련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965년 전국추구갑급리그 우승을 한뒤(네번째줄 오른쪽으로부터 세번째 지청룡선생).

그무렵 평소의 훈련에 대해서는 《경기보다 몇갑절 더 힘들었다》며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친다는듯 도리머리를 한다. 그때 길림성축구팀은 늘 땡볕이 쨍쨍 내리쬐이는 한낮에 훈련했는데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모두가 체력소모를 극한으로 요구하는 고강도훈련이였고 내용의 70% 이상이 슈팅과 관련되여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단 경기에 뛰여들면 선수들 모두가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투지를 갖고 90분간의 스피드를 보장했으며 슈팅명중률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라있었다는 그의 회고다.

한편 당시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직책과 분공이 명확했다고 한다. 감독의 포치라면 선수들은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복종했다. 1965년 길림성축구팀이 전국갑급련맹전에서 우승을 따낼 때 박만복감독은 이제 갓 《삼십이립》의 나이에 들어선 젊은 축구인이였다. 당시 선수들 중에는 지청룡선생을 비롯해 박만복과 동갑이거나 이상인 선수들이 한두명이 아니였지만 선수들 모두가 반드시 감독의 지시를 따라주는것이 전반 길림성축구팀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됐다고 한다.



2000년 제19회 한국 회장기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대회에서 지청룡선생이 슛을 날리고 있다.

당시 길림성축구팀의 실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분석했다. 그때 중국국가대표팀이 모종의 원인으로 인해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은 경기에 참가하지 않다보니 그 수준여하를 가늠할수 없다. 하지만 길림성축구팀이 국제축구무대에 자주 진출했던 아시아의 축구강호 조선국가팀과 엇비슷한 실력으로 경기를 치렀으니 그때 중국의 축구수준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은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 론리로 추리해본다면 그후의 30여년 사이에 아시아의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축구는 많은 발전을 가져왔으나 중국축구는 제자리에서 맴돌아쳤거나 아주 굼뜨게 발전했다는 반증이 된다며 최근년간 축구에 대한 중앙정부의 중시에 대해 박수를 보냈다.

1957년에 한영혜녀사 결혼한 지청룡선생은 1년에 겨우 1주일 함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것도 경기가 없는 겨울철에만 가능했단다. 오죽했으면 딸애마저 1년에 겨우 한번씩 집으로 오는 아빠의 얼굴을 기억 못해 그가 기뻐서 안아줄라고 하면 마구 울음을 터뜨려 그를 당황케 했다고 한다.



2000년 제19회 한국 회장기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대회에 참가한 원로들(첫줄 왼쪽 두번째 지청룡선생).


한영혜녀사의 고생도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남편이 없는 가정을 이끌어 나가느라 그토록 사랑했던 직업마저 버려야 했고 겨울에 구들에 불길이 들지 않아 몇몇 선수의 안해들과 함께 서로 온돌을 고치며 역사를 하군 했다.

어려웠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축구를 평생직업으로 간주한 프로선수라면 반드시 그마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지청룡원로, 오늘날 연변장백산축구팀의 맹활약에 대해 박태하감독이 《합리한 전술과 쾌속 진공을 위주로 좋은 효과를 보고있다》면서 중국축구무대를 호령하던 전성기시절의 길림성축구팀을 보는것만 같아 흐믓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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