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자금 마련위한 '新캥거루族' 재테크]
대졸취업 47%, 부모가 지원 "이렇게라도 모아야 결혼" 직장새내기 적금 크게 늘어
30대초반 은행서 VIP대접
일부 "취업후 의존은 문제"
올 초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김모(27)씨는 월급의 70% 이상이 자동이체로 넘어간다. 신입 사원 연수 중이라 정식 월급의 85%만 받고 있어 세금을 뗀 실수령액은 월 200만원 남짓 된다. 여기서 150만원은 은행 적금(100만원)과 펀드(25만원), 주택청약·종신보험(15만원), 증권사의 CMA(종합자산관리계좌·10만원) 등에 들어가고, 통장에는 달랑 50만원 정도만 남는다. 식비와 통신비 등 잡비를 충당하기에는 모자라기 일쑤다. 김씨는 그래서 아버지의 신용카드로 매달 10만~20만원을 긁는다. 그는 "저금리 시대라 수익률이 낮아져 이렇게 모아도 3년 뒤에 겨우 7000만~8000만원 정도를 모을 수 있다"면서 "장가갈 때까지는 부모님께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바늘귀보다 뚫기 어렵다는 대기업 입사에 성공하고, 월급의 70~80%를 저축하면서 부모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사회 초년생들이 늘고 있다. 부모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월급이 적고 불안정한 비정규직 등에 취업을 해 부모의 지원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캥거루족(族)'과는 다르다. 결혼 자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재테크에 올인하는 신입 사원들, '재테크 캥거루족'이 출현하고 있다.
◇직장 초년생 적금 2년 만에 21배 이상 늘어나
23일 신한은행에 따르면, 신입 사원들이 주로 가입한 '직장IN플러스 적금'(지난달 폐지 후, 신한주거래적금 신설됨) 잔액은 2012년 말 377억원(3만1538명)에서 작년 말 8423억원(44만4669명)으로 2년 만에 21배 넘게 늘었다. 비슷한 상품인 KB국민은행 '국민첫재테크 예·적금'은 2011년 출시 후 꾸준히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잔액(지난 20일 기준)이 2조5071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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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초년생들이 입사와 동시에 재테크에 눈을 뜨고, 종잣돈 마련을 위해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5대 대기업에 지난해 취업한 정모(28·여)씨는 월급에는 아예 손을 안 대고,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만 생활하고 있다.
정씨는 "부모님이 나중에 시집갈 때, 큰돈을 들여 도와주기는 힘들 것 같다고 하시면서 '매달 조금씩 보태줄 테니 월급은 안 쓰고 적금 등으로 모으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다"면서 "목돈을 마련할 때까지 부모님 도움을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처럼 생활비 부담이 없어 월급을 통째로 적금 등에 넣고 있는 직장 초년병들은 40~50대보다 더 많은 적금을 들기도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적금을 포함해 월급의 대부분을 각종 금융상품에 투자하기 위해 상담을 받는 입사 1~2년 차 대기업 직장인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직장인들이 40~50대보다 중요한 VIP인 지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캥거루족의 실태와 과제'에 따르면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졸 정규직 취업자의 비율은 47.6%에 달한다. 청년 취업자의 절반 정도가 부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입사해도 부모 지원 당연시
재테크 얼리버드들이 목돈 마련에 몰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신혼부부 1000명을 조사해 최근 발표한 '2015 결혼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결혼 비용은 6963만원이고, 서울·수도권 신혼집 마련 평균 비용은 1억8000만원이다. 신혼집을 포함해 총 결혼 비용 2억3798만원에서 남성은 1억5231만원(64%), 여성은 8567만원(36%)을 분담했다. 대기업에 입사한 남성의 경우 연봉이 5000만원이라고 할 때 부모의 지원이 없다면 한 푼도 안 쓰고 3년을 모아야 결혼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세종대 김대종 교수는 "아파트 전셋값이 치솟는 등 결혼 자금 마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잡고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젊은이들이 부모의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oasis@chosun.com] [김문교 인턴기자(연세대 신문방송학 4년)]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