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숙
(흑룡강신문=하얼빈) 살래살래 부는 바람이 실어오는 파도는 해변으로 환성을 지르며 달려왔다가는 백사장과 바위를 쪽 빨고는 아쉬운듯 돌아서간다.
포효하는 바람이 냅다던지는 파도는 백사장의 정취를 망가뜨리고 바위를 날카로운 이발로 물어뜯고는 흘기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부드러운 파도가 칼날이 될수 있을가?
천태만상의 대자연은 촌보앞도 모르게 신비로운 마술을 부리는 고로 그런 경우가 아주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으나 파도 대신 언어로 환언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드러운 언어는 충분히 칼날이 되고도 남는 까닭이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리호원의 3수의 시들은 일제히 거침없이 뿜겨져나오는 분수를 련상시키면서 그 부드러운 물줄기에 얻어맞는 얼얼함을 맛보게 해준다. 하나씩 보자.
시 '밤파도'는 사뭇 리듬적인 시어들로 시적완성을 꾀하면서 거침없는 분출의 시작을 알린다. '별', '나비', '포말', '레시피' 등 이미지들은 전혀 이색적이고 이질적인 이미지지만 이 시에서만큼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본래 그런 조합이듯이 잘 녹아흐른다. 속사포적인 시적흐름이 그대로 독자들의 시망막을 강타하고있다.
시 '날 강도라고 부르지마!'에서는 강타의 레시벨이 한결 높다. '위용이 죽고 시가 죽으면/나의 강도탄생을 선포하자'는 시작은 그대로 선전포고나 진배없다. 그리고 시는 그 리듬을 타고 '별이 꺼지고 언어도 말살되면/나의 강도재생을 축하하지'라고 뇌까린다. 이만저만한 용기가 아니다. 선들선들한 칼날이 목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3련에 와서는 아예 시인 스스로 자신의 이름자를 등장시켜 시의 참여도와 독자와의 호흡에 올리브유를 친다. '달이 죽고 호원이 죽으면/어두운 밤 우리는 무엇을 자축해야 되나' 현대를 살아가는 지성인들의 방황, 고민 내지 고독에 대해 서슬푸른 칼날을 든 시인의 모습이 얼비치고있다. 그리고 그 칼날은 바로 문학을 향하고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문학에 대한 처절한 사랑과 문학을 경외시하는 인간들에 대한 질시와 호소를 담고있다. 역시 거침없는 글발이요 시줄이다.
시 '술병 따기'는 단 3행에서 상기의 기분을 느껴볼수 있다. '가냘픈 너의 신음이 함락이라고 내뱉을 때/…/별이 무너지는동안 나는 너의 속살을 침략했다/…/나도 톱이 아닌 병따개로 젖은 력사를 증명했다' 리유를 밝혀둘 필요조차 거세해버리는 시흐름이 장쾌하다. 그리고 마지막 '함락된 너의 몸값을 치를 나의 지갑은 분명 비여있었다'라는 행은 여지없이 박살난 자존과 지존을 두루 상징하고있다.
리호원은 많지 않은 작품량임에도 불구하고 호소력 강한 시적흐름과 사유의 무작위스런 비약과 현란한 시어들의 조합으로 시사상을 구축하는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거의 1년에 한번꼴로 스스로를 부정하고 새로운 작시비약을 하고있는데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