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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과 허례의 옷을 벗어야/이규섭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4.27일 14:27

이규섭 한국시인

(흑룡강신문=하얼빈)훤칠한 용모에 낭만이 넘치는 거리의 사진가. 그와 맞선을 본 열 살 아래 처녀는 시집을 오겠다고 했다. 하루 한 끼 챙겨먹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 거리의 사진가는 처녀의 초가집 마당에서 냉수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하고도 데려올 집이 없어 한동안 떨어져 지냈다. 번듯하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 거리의 사진가는 자수성가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무료예식장을 열었다.

  소박한 예식장이지만 피아노와 조명시설 등을 고루 갖췄다. 예식장 대여는 물론 보석이 촘촘히 박힌 드레스와 티아라, 부케와 폐백음식, 신랑신부 화장까지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것이 무료다. 결혼식 사진 값 60만원(이하 한화)만 신랑신부가 부담하면 된다. 43년 동안 가난한 젊은 커플과 형편이 어려웠던 ‘지각 결혼 부부’ 등 1만 3천여 쌍이 무료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부터 사회, 사진사까지 1인 다역을 거뜬하게 소화하는 거리의 사진가는 여든 한 살이 됐고, 부케부터 폐백음식까지 꼼꼼하게 만들며 결혼식 뒷바라지하는 안주인도 일흔 한 살이다. 지난 주 방송된 KBS1TV 인간극장 5부작 ‘우리는 매일 결혼한다’의 노부부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길거리에 버려진 낡은 우산을 손질하여 비오는 날이면 거리에 나가 나눠주는 부지런한 할아버지는 한 조간신문의 결혼문화 캠페인 ‘눈물로 올리는 웨딩마치’ 기사 가운데 ‘올해 신혼부부 결혼비용 1억 넘는다’는 기사를 정성스럽게 스크랩하여 액자에 넣어 예식장에 건다. 기사 밑에 ‘평생 1억 모으기도 어려운 세상에 하루 결혼비용으로 1억을 쓴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댓글도 달았다.

  캠페인 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안에 결혼한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한 결과, 집 구하고 식 올리고 예물·예단·혼수·신혼여행을 해결하는 데 평균 2억808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결혼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자식들은 부모에게 기대고 부모는 노후대비를 포기하고 빚까지 지며 지원해줄 수밖에 없다. 가진 사람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바가지 비용을 감수하며 호텔에서 호화결혼식을 올리고, 중산층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꼴로 따라하다가 후회하기 일쑤다.

  체면치례 결혼문화를 고쳐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막상 당사자가 되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혼사가 진행 될 때는 “예단은 형편대로 하라”고 선심 쓰듯 말했다가도 막상 결혼식이 가까워 오면 “누구 네는 뭐 받았다고 하더라”며 은근히 부담을 준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부담은 신혼부부가 살 집 마련이다. 신랑 측은 집 마련, 신부 측은 혼수준비라는 등식을 이제는 공동부담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결혼식을 올린 노부부는 결혼식 무료봉사의 보람을 누린다. 다양한 협찬을 받아 호화결혼식을 올린 뒤 방송에 출연하여 닭살 돋는 부부애를 과시하던 연예인들의 이혼이 부쩍 늘어난 것도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이, 호화결혼식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체면과 허례의 옷을 벗어야 결혼문화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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