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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서 반바지 입고…

[기타] | 발행시간: 2012.05.26일 08:08
이근후·이동원 박사 부부의 신 대가족 실험 10년

4남매 가족과 공동주택 동거 … “나, 할아버지 집으로 가출할래”

토요일 오전. 3대가 모여 사는 서울 구기동 이근후·이동원 박사 집에는 조손 세대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소소한 일상을 할아버지·할머니와 의논하며 해결하는 사이, 바쁜 부모 세대는 걱정 없이 일하러 나갔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동원 박사, 손녀 하늬(13)와 선재(11), 외손자 최솔(20), 이근후 박사. [박종근 기자]‘우리들은 각 가정이 고유한 가치관과 종교관을 갖고 간섭 없이 살아가기를 원한다. 서로 같음은 나누면서 다름은 인정하고 존중한다…’.

이근후(77·이화여대 의대 명예교수)·이동원(75·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박사 부부 가정의 ‘가족 헌장’이다. 이들 부부는 2남2녀 가족들과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다. 2002년 서울 구기동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각각 독립해 살고 있던 자녀들을 모두 모았다. 그 후로 꼭 10년. 이 박사 부부를 만나 이들의 ‘신 대가족 실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박사 부부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신원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들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도, 사진이 찍히는 것도 거절했다. 이들 가족에게 ‘거절’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모가 강요하지 않는 일을 기자가 강요할 수는 없었다. 쉽게 거절하고, 그 거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이들이 10년 동안 대가족 생활을 원만하게 꾸려온 첫째 비결인 듯했다.)

큰며느리가 ‘동거’ 제안

집 앞마당에 선 이근후(왼쪽)·이동원 박사 부부. “서로 간섭만 안한다면 대가족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제도”라고 말한다.처음 ‘동거’를 제안한 사람은 큰아들 부부였다. 치과의사인 큰며느리가 앞장섰다.

“독립시키고 10년 넘게 지났을 때였어요. 하루는 오더니 전부 다 모여 살면 좋겠다는 거예요. 전 반대했죠. 제가 시어머니를 30년 모시고 살아봐서 알아요. 시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딴 방에 있어도 편히 못 눕겠더라고요. 안 된다고 했더니 큰며느리가 그래요.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거나 편찮으시면 어차피 자기네가 모셔야 할 텐데, 자녀들이 모두 같이 살면 그 부담을 혼자 지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참 솔직한 이유였죠.”(이동원)

그때가 2000년이었다. 마침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여서 싼값에 매물로 나온 땅들이 제법 있었다. 북한산 자락 풍치지구에 660여㎡(200여 평) 땅을 샀다. 땅값은 이근후 박사의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집은 자녀들이 각자의 가정형편에 따라 돈을 내 지었다. 낸 돈 액수에 맞춰 각자 집 크기가 결정됐다. 미국 유학에서 갓 돌아와 돈이 없었던 막내아들은 은행에서 한도까지 대출을 받아 돈을 댔다. 2002년 12월 18일. 이 박사 부부의 결혼 41주년 기념일에 준공식을 했고, 다섯 가구가 모여 살기 시작했다.

집은 4층짜리 다세대주택처럼 생겼다. 대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가면 층마다 각 세대의 현관문이 따로 있다. 각 가족의 공간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 집 등기도 각자 했다. 독립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다.

“자식 집이라고 연락 없이 불쑥 찾아가진 않아요. 언제라도 맘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집은 우리집뿐이지.”(이근후)

이 박사 부부는 1층 자신의 집에 최신 컴퓨터 두 대를 설치했다. ‘컴퓨터 게임은 할아버지 집에서만 한다’는 원칙도 정했다. 손주 유인책이었다. 효과는 컸다. 초등학생 손자들이 매일 할머니·할아버지 집으로 게임을 하러 왔다.

“하루는 며느리가 ‘게임을 하루 한 시간씩만 하게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러겠다고 했는데, 막상 게임을 하는 걸 옆에서 보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더라고요.”(이동원)

인터넷 게임이란 게 한 시간쯤 해야 아이템도 모으고, 게임할 상대도 결정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겠더란 것이다. 그때 그만두란 건 게임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는 걸 이해한 할머니는 엄마 몰래 가끔씩 “실컷 하라”고 허락하는 ‘숨통’이 돼줬다.

게임이 심각한 가족 문제를 불러온 적도 있었다. 중학생이 된 손자가 게임에 점점 빠져들더니 급기야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부모는 게임을 그만두든지, 집을 나가든지 선택하라며 윽박질렀다. 위기 상황이었지만 대가족이란 울타리의 힘을 확인할 기회이기도 했다. 게임을 선택한 손자는 할머니·할아버지 집을 찾아와 “여기서 한 달만 자고 먹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래 좋다. 결심이 서면 와라”고 선선히 대답해 줬다.

실제 가출은 실행되지 않았다. 아래·위층을 오고 가는 사이 아이와 부모의 격한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은 것이다. 1주일 후쯤 “안 오느냐?”고 묻는 할머니에게 아이는 “아무래도 가출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어느 날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빠져나왔다. “조부모가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족학자 이동원 박사의 분석이다.

조부모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들어주는 통로이기도 했다. 손자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의 표정이 영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지 싶었다. 쉽사리 사연을 안 밝히는 아이를 달래 할머니가 이유를 알아냈다. 돈을 빼앗고 괴롭히는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할머니는 학교로 찾아갔다.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 친구를 만났다. “오늘만 용서한다. 우리 친척 중에 형사가 있는데, 한번만 더 괴롭히면 그 아저씨와 함께 오겠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바로 해결됐다.

“내가 평생 본 환자, 집에선 만들지 말아야지”

이 박사 부부가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킨 건 1996년이다. 자녀들을 결혼시키며 ‘결혼비용 500만원’이란 원칙을 고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평균 혼례비용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였다. 자녀들을 결혼시킨 뒤 6개월 동안 함께 데리고 산 것도 이들 가족의 이색 프로그램이다. 서로 알고 이해할 시간을 갖자는 의도였다. 새 식구인 며느리와 사위에게 가장 강조한 생활 원칙은 “싫으면 싫다고 바로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근후 박사의 소신은 단호했다.

“내가 평생 만난 사람들이 정신과 환자들이에요. 한결같이 ‘억압’의 괴로움을 호소했죠. ‘노’를 못하게 억압하면 결국 병이 나고 마는 거예요.”(이근후)

큰아들을 결혼시켰을 때다. 마침 집안일을 맡아줬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만뒀다. 시아버지·시어머니·아들·며느리가 하루씩 돌아가며 밥 당번을 하기로 정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밥을 할 때도 며느리가 나오고, 시어머니가 밥을 할 때도 며느리가 나오고…. 사회통념에서 벗어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제발 들어가라.” “이러면 아무 의미 없다.” 세뇌시키고 세뇌시킨 끝에 시아버지 앞에서도 반바지 입고 누워 있을 수 있는 며느리가 됐다.

‘간섭’도 이근후 박사가 경계하는 요소다.

“여름에 1층인 우리 집 현관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여요. 한 번은 며느리가 저녁에 외출을 하길래 무심결에 ‘어디 가니?’라고 물었죠. 며느리도 ‘○○ 가요’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나갔는데, 남편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부담스럽게 그런 걸 왜 묻느냐면서. 며느리 입장에선 간섭인 것처럼 느끼지 않겠느냐는 거예요.”(이동원)

이근후 박사는 “자녀들과 공유하는 부분이 10%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나머지 90% 영역까지 간섭하려고 해 10%도 공유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가족 예찬론자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전망하는 미래의 가족 형태는 대가족(extended family)”(이근후), “60년대 방한한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도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제도야말로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했다”(이동원)는 등 근거도 탄탄하다.

하지만 과거 농경시대의 대가족 제도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국민소득 50달러 시대의 모델을 2만 달러 시대에 되살리자고 하면 안 되죠. 요즘 젊은 세대에게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해봐요. 거부감 느끼고 다음 말은 들으려고도 안 할걸요. 대신 ‘인간관계가 좋아야 한다’로 말을 바꿔야죠. 대가족 제도도 그렇게 리모델링해서 적용시켜야 해요.”(이근후)

이 박사 가족의 대가족 시스템은 철저히 21세기형이다. 한 집이 6개월씩 당번을 맡아 아파트 관리사무소 역할을 한다. 공용공간의 수리와 청소를 책임지고, 명절과 생일 등 행사 계획을 짜는 일이다. 비용은 가정별로 내는 월회비를 모아 충당한다. 외식한 뒤 누가 돈을 낼까 눈치 볼 일도 없고, 부모님 생신 선물을 어떤 수준으로 맞춰야 하나 고민할 일도 없다. “우리는 손해죠. 선물을 딱 하나만 받으니까.”(웃음)

집안에서 이 박사 부부가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조부모 역할이다. 네 명의 손자·손녀와 함께 대화하고, 여행하고, 운동하고, 노는 일이다. 맞벌이 가정에서 부모가 미처 채우지 못하는 물리적·정서적 공간을 할머니·할아버지가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나 딸이 ‘오늘 저녁에 바쁘세요?’라고 물어오면 100% 애 좀 봐달라는 뜻이에요. 취소할 수 있는 약속은 모두 취소하고 우선적으로 애를 봐주죠.”(이동원)

이동원 박사로 말하자면 78∼79년 중학생·초등학생인 네 자녀를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맡겨둔 채 혼자 미국 하버드대학에 방문 교수(visiting scholar)로 떠났던 사람이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행보였고, “괜찮겠냐”며 수군대는 사람도 많았다.

“내 아이들은 제대로 못 봐줬지만, 손주들은 있는 힘껏 돌봐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소박한 바람은 ‘조부모의 부모 역할 (grand-parenting)’이란 이론 연구로 이어졌다. 이 박사 부부가 95년 발족한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의 주요 연구 주제가 된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부모에게도 사회적으로 가장 바쁜 시기예요. 부모 혼자 양육 부담을 지기는 너무 버겁죠. 조부모가 그 짐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도, 노인 소외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요.”(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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