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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 맘속의 네비게이션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12.21일 13:31
오늘도 내 차에 설치된 네비게이션(导航)은 길안내를 확실하게 해준다. 목적지에 가려면 전방 몇메터에서 좌회전하고 몇백메터 구간까지 직진하다 어느 방향으로 돌라면서 아주 상냥하게 차근차근 일러준다. 그래서 길치인 내가 먼거리운전을 해도 근심걱정없이 곧추 목적지까지 잘 찾아간다.

네비게이션은 빠르고 쉽게 목적지에 갈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기에 요즘 자가용마다 거의다 네비게이션을 설치한다. 네비게이션 안내양의 말을 매일 듣지만 오늘따라 그 감회가 새로와지면서 내 인생의 길잡이였던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워난다.

아버지는 평생 평범한 소학교 교사로 계시다가 퇴직했다. 아버지는 사남매를 키우면서 우리가 인생행로에서 옳바른 길을 걷도록 리드를 해온분이다. 덕분에 우리 사남매는 지금 저마다 끌끌한 사회인으로 되여 자신의 한몫을 잘 감당하고있다. 특히 아버지는 나의 인생에서 네비게이션 같은 역할을 했다.

두메산골에서 태여난 나는 그때 읽을만한 책이라곤 별로 없었다. 그래서 책이라면 주어지는대로 닥치는대로 읽었다. 어른들의 책도 적었고 아동들의 책은 더구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텔레비죤도 없는 기나긴 밤을 책읽기로 패면서 책속의 내용에 푹 빠져 주인공과 함께 웃고 우는것이 그야말로 락이 아닐수가 없었다. 책은 보면 볼수록 재미났다. 아버지는 당시 《연변문예》와 《연변일보》를 주문했는데 나는 소학생이기에 《연변문예》만은 볼수 없었다. 아마 주로 성인들이 보는 잡지라 어린이한테는 적합하지 않았기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늘 《연변문예》를 교수안과 함께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읽으셨다. 그럴수록 나는 호기심이 동해 《연변문예》를 더 읽고싶었다. 대체 잡지에 무슨 내용이 실렸기에 읽지 말라고 할가. 나는 도무지 밤잠을 이룰수 없었다. 말똥말똥 천정을 쳐다보다가 아버지가 깊이 잠드신후 도적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일어나 아버지의 가방에서 잡지를 꺼낸 다음 할머니가 주무시는 방에 들어가 초불을 켜놓고 가만히 읽었다. 할머니가 잠에서 깰가봐 초불주위는 두꺼운 책으로 막아놓고말이다. 그때에 소설 《돈끼호떼》, 《서사의 아들딸》도 읽었는데 너무 오래되여 구체내용은 아리숭하나 제목만은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나는 중학교에 가서도 책을 즐겨 읽었다. 지어 수업시간에 가방에 넣고 간 두툼한 책을 책상서랍안에 펼쳐놓고 선생님의 눈치를 슬슬 피해가면서 가만가만 읽었다. 한번은 일어선생님에게 발각된적이 있었다. 일어선생님이 우리 집에 가정방문까지 왔다. 그때 일어선생님을 마주한 아버지의 얼굴은 무척 난처한 모습이였다. 아버지는 나를 대신해 일어선생님에게 사과했다. 일어선생님이 떠난후 아버지는 나에게 책읽기를 좋아하는건 나쁘지 않으나 수업시간에 읽는건 잘못했다고 타일렀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정신없이 책 읽는 버릇은 좀체로 고쳐지지 않았다.

한번은 《청춘의 노래》를 읽다가 책속에 푹 빠져들다나니 새벽 네시까지 계속 읽었다. 그때 큰오빠가 소변이 마려워 깨여났다가 눈이 토끼눈처럼 빨갛게 되여 책을 읽고있는 나를 보고 버럭 화를 내더니 다짜고짜로 내 손에서 책을 낚아채 옆에 놓인 책가방과 함께 부엌아궁이에 왈왈 밀어넣었다.

《야, 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소설책만 보다가 대학도 못 가면 어쩌자구 그러니? 공부를 못하면 커서 머저리가 된다. 계집애라는게.》

오빠는 당장 나를 잡아먹기라도 하듯 을러멨다. 나는 멍하니 오빠의 눈만 쳐다보았다. 오빠의 큰소리에 놀라 깨여난 아버지는 영문을 알고 부엌아궁이에 밀어넣은 책가방과 책을 손수 꺼내 재를 툭툭 털어 내 손에 쥐여주었다. 새벽이라 불이 다 꺼지고 재만 남았으니 망정이지 초저녁이였더라면 아마 책이고 책가방이고 다 재가루로 되였을것이다. 날을 새면서 소설을 읽었으니 그날 수업시간에 끄덕끄덕 졸거나 책상에 엎드려 잘건 불보듯 뻔한 일이였으니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그 어떤 벌이라도 받을 준비가 다되여있었다.

《얘야, 책을 보는것이 뭐가 큰 잘못이라고. 취미란건 키워주고 잘 밀어줘야 한단다. 책을 즐겨 읽는 초란이가 앞으로 글을 써서 밥벌이할수 있게 될지 누가 아니? 그러니 너무 책망하지 말거라.》

뜻밖에도 아버지는 날 두둔해나섰다. 너무나도 아버지가 고마웠다. 순간 아버지가 더 멋져보였다. 오빠한테 혼쌀이 난 나는 살짝 아버지의 몸뒤에 가 숨었다. 아버지의 옷자락을 꼭 부여잡고.

그후 아버지는 손수 내가 읽을 책을 얻어다주었다. 지어는 내가 책을 읽고난후면 밥상에 마주앉아 책의 내용을 물어보고 또 서로의 감수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밥상은 아버지와 나의 독후감 발표의 장이 되였다.

아버지는 책을 읽기 좋아했고 또 글도 잘 썼다. 마을청년들이 공연에 내놓을 소품과 랑송시를 부탁하면 아버지가 직접 쓰고 지도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동네에서 《재간둥이 박선생》으로 불리웠다.

미남들인 두 오빠와 동생에 비하면 나는 사남매중 제일 못생겼지만 아버지는 나를 무척 이뻐했다. 어릴 때 막내이모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우리를 번갈아보더니 롱담조로 《형부, 바꿀수 있는거라면 남자애들과 얘 머리를 떼여 바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걔가 어디 밉게 생겼니? 얼마나 복상스럽게 생겼다구. 내 눈엔 걔가 젤 이쁘다.》라고 대답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의 털이 함함하다 한다더니 아버지 눈에는 맨 아들만 줄줄 낳다가 어쩌다 얻은 이 외동딸이 그렇게도 이뻤나부다. 아버지는 다른 학교에 전근되여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나만은 꼭 곁에 달고 다니면서 공부를 시켰다. 혼자 밥을 해먹기에도 버거웠지만 나까지 챙길라니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가? 오빠들과 동생은 엄마와 할머니에게 맡기면서도 나만은 꼭 옆에 두고 애지중지 키워온 아버지였다. 그러했기에 나는 늘 자신심으로 차넘쳤고 성격은 밝고 활발했다. 그런 바탕이 항상 긍정적이고 락천적이며 생활을 사랑하는 나를 만들어준것 같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있게 되였다.

기자로, 작가로 성장된 나를 보면서 아버지는 늘 흐뭇한 웃음을 짓군 했다. 매번 내가 편집한 뉴스가 TV에 나올 때마다 자막에 내 이름이 나오는걸 보고서야 다른 채널을 돌렸다. 또 내가 쓴 글이 신문과 잡지에 실릴 때마다 첫 독자가 되여주었다. 아버지는 네 자식중에 내가 제일 자신을 닮았다면서 기뻐했다. 이런 아버지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며 아버지야말로 내 인생의 진정한 멘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행로에서 영원히 길잡이로 되리라 믿어마지 않았다.

그러던 아버지가 얼마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내가 한국에 려행을 떠난 사이에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아버지가 위독하다기에 나는 려행지에서 바로 돌아오는 비행기표 날자를 고쳐가지고 이튿날로 집에 돌아왔다. 내가 오열을 터뜨리며 중환자실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호흡기를 달고 가쁜숨을 몰아쉬고있었다.

《아버지, 웬 일이세요? 저랑 이제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들놀이 가자고 약속했잖아요? 백세까지 문제없다더니 이게 뭐예요? 흑흑…》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미약하게나마 혀를 움직이였다.(아버지가 깨여나길 너무 바라서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마치도 《네가 무사히 왔나? 얼마나 걱정하고 기다렸다구.》라고 하는것만 같았다.

그 이튿날 아버지는 조용히 우리곁을 떠났다. 나는 식어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만지면서 목놓아 울었다.

후에 엄마에게서 들을라니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며칠전부터 매일 시내뻐스종점에 나갔단다. 사고라도 날가봐 그토록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괜찮다면서 기어이 나갔단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가슴이 오리오리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50세가 넘은 이 딸이 아직도 어린애처럼 걱정되였던것 같다. 아니, 아버지는 영원히 나의 손을 잡아주고싶었을것이다.

이런 아버지가 내 손을 놓고 가다니?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평생 나의 손을 잡아준 그 손을 인젠 내가 잡아드리고 만년에 행복을 누리게 하려고 했었는데…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집 오는 길 모르시나요? 길 잃은건 아니세요? 왜 한번 가면 돌아올줄 모르세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못이겨 지금도 이렇게 속으로 웨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눈을 감아도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떠오르고 귀를 막아도 아버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아버지를 집으로, 우리 사형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할수 있는 네비게이션이 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오늘도 나는 아버지만을 위한 내 맘속의 네비게이션이 되여본다.

/(훈춘)박초란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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