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겨울철 치고 포근한 날씨를 찾아 모아산 등산길에 올랐다.
그날 마침 일요일여서 등산코스는 사람들로 붐볐다. 가지마다 햇솜같이 하얀 눈송이들이 맺혀 수채화를 방불케 하는 소로길을 따라 가족끼리 친구끼리 떠들며 즐겁게 등산하는 모습들이 참 기분 좋게 보였다. 그짬에도 돈 버는 상인들은 먹거리랑 애들장난감 같은걸 파느라고 줄지어 오르는 등산객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목청을 돋군다.
내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한창 씨엉씨엉 올리막을 향해 걷는데 앞에서 문뜩 한 중년남성의 웅굴진 목청이 들려왔다. “자,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름 석자 잘 가지면 부자 됩니다...” 이름 석자로 팔자 고친다? 참 귀맛 당기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우르르 그 중년남성한테 몰려들었다. 남성은 두툼한 책을 펼쳐들고 손을 휘휘- 저으며 신나게 말하기 시작했다. “년월일시를 토대로 지어낸 이름 , 잘 지으면 천하를 얻고 못 지으면 천하를 잃습니다...”
횡설수설 침방울 튕기며 하는 연설에 어떤이는 귀가 솔깃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의식중 걸음을 멈추고 그 중년남성을 살펴보았다. 꾀죄죄한 옷차림에 얼굴은 평생 알콜에 절은듯 거무데데했고 이마의 인당자리에 깊게 패인 여러갈래 주름을 보아 가난에 찌들어 기를 못 펴본 형국임이 틀림없었다. 하긴 명색이 작명가라면 하늘아래 신선 버금으로 제일 좋은 이름을 가졌을텐데 제 설자리 하나 굳히지 못하고 남의 팔자 고쳐준다니 묘한 뉘앙스에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중년남성은 계속 흥을 돋구며 연설했지만 내 귀에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사람은 태여나면서 이름을 가진다. 그저 처음엔 너와 나를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것이지 생이 귀하고 천함을 가르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이름내역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성별과 신분 차이를 감안하여 남자한테는 금돌이요, 쇠돌이요 같은 거칠고 천한 이름이 지어졌고 녀자에게는 복녀요, 쌍가매요 같은 이름들이 차례졌다. 지금은 이름에 부과된 내역가치가 옛날보다 급등해 천자만홍이라 이름자체가 태여난 아이 생김새와 상관없다. 그 틈을 노려 저잣거리에는 “주역작명”이란 간판이 여기저기 버젓이 나붙었다. 키보드 둬번 두드리면 열댓개 이름이 나온다. 작명료는 어떤 이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에 자식들 앞날이 창창히 열리기를 기원하여 찾아든 손님들마다 거개 씀씀이가 헤퍼진다. 강태공 낚시질 내나름식이여서 작명료 받는 량반도 속 켕기는 일 없이 돈만 잘 챙긴다.
그들은 항상 사람이름이 모든 운명을 결정하는것처럼 외곡, 과장된 뜻풀이를 하며 지어 력사 명인, 위인마저 애초 이름이 잘 지어져 성공했다는 해석이다. 서사시마냥 찬란한 창조적노력으로 그 이름 청사에 남은것이지 단지 이름 좋아 거인이 되였다면 이 세상 “룡”자 띤 남자들은 죄다 하늘 높이 안개속에서 날으는 룡이 되였을것이고 꽃 “화”자 띤 녀자들 죄다 흠뻑 호드러지게 살았을것이다. 살펴보면 력사적으로 횡포한 급물살을 막아보려고 황하의 이름을 수없이 바꿔보았지만 여직껏 그 범람을 막지 못했다.
한비자는 평생 온전한 이름이 없었지만 력사상 처음 통치이데야를 남겨 유명했고 손기정은 이름마저 빼앗긴 식민지노예로 올림픽 그라운드를 달려 세상을 놀래웠다. 이름에 집착 말고 마음 수련에 집중하라! 아무리 휼륭한 이름을 가졌어도 나눔을 모르고 린색하면 화가 도래하고 역지사지 이심전심이면 나갔던 복도 되돌아와 행복하다. 몇년전 외국의 학자가 발견했다 .
지금 시대가 많이 변했다. 물질의 최소단위 원자에서 분리한 쿼크를 쪼개여 새로운 에너지개발을 주도하는 사회 , 컴퓨터를 뛰여넘어 휴대폰으로 지구촌 그 어느 곳까지 영상통화가 가능한 과학기술시대에 살면서 소위 작명가들이 사회 한 모퉁이에서 반만년도 지난 전설속의 복희씨가 그렸다는 팔괘도를 걸어놓고 천간, 지지 같은걸로 현시대 새 생명의 이름을 운운하려니 이 얼마나 가련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수수한 이름을 가졌어도 반짝이는 별처럼 사람들 가슴속에 영원히 지지 않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함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의 이름이 진짜 좋은 이름이 아닐가 생각한다.
편집/기자: [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