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뉴시스】 = 2014년 3월 17일 뉴욕의 성 페트릭데이 축제의 성소수자 행진에 참가해 자신이 만든 무지개 깃발을 두르고 차별에 항의하는 길버트 베이커. 지금은 성소수자 운동의 상징이 된 이 깃발을 창시했던 그는 3월 31일 뉴욕에서 사망한 것으로 검시관에게 보고되었다.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 = AP/뉴시스】차의영 기자 = 세계적으로 동성애자 권리의 상징이 된 무지개 색 깃발을 창조해 낸 게이 베이커(65)가 뉴욕에서 숨진 것으로 3월31일에 한 검시관 사무실에 보고되었다.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캔사스주 출생의 베이커는 1970~1972년 미군에 복무하면서 동성애 권리 운동의 초기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냈고 나중에 제대한 뒤에도 그 곳에서 계속 살았다.
그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베이커는 독학으로 바느질을 배워서 동성애자와 반전 시위대 행진에 쓸 깃발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1978년에는 유명한 무지개색 깃발을 창안해 만들었다.
베이커는 2008년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 깃발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거기에 반응하는 것을 보고 즉각적으로 "뭔지 모르지만 대단한 것이 될 것 같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활발한 동성애자 운동 그룹에 속해서 1978년에 암살당한 시의원이자 인권운동가인 하베이 밀크, 1980년대에 네임스 프로젝트(Names Project AIDS )를 창설해서 에이즈 퀼트를 만든 클리브 존스와 함께 이 지역의 전설적 성소수자 운동가로 손꼽혔다.
존스는 그의 죽음이 알려진 뒤 4월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78년 게이 프라이드 행진 때 무지개 깃발이 처음 등장했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그 날 수천명의 군중이 마켓 스트리트에서 센프란시스코 시민센터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을 때 그 거대한 무지개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올려다보며 모두가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지만, 모두들 이것이 우리들의 깃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깃발은 처음엔 8색으로 만들어졌다가 천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나중에 6색으로 줄였다. 사람들이 무지개 깃발의 디자인을 특허 등록하라고 권했지만 베이커는 이를 거절하고 그것으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존스는 말했다.
베이커는 현 샌프란시스코 출신 연방 상원의원인 다이앤 페인스타인이 시장으로 취임했을 때 취임식 깃발 등 공식 행사의 깃발들도 디자인했고 1994년에는 1969년 동성애자들의 스톤월 봉기 25주년 기념행사로 뉴욕에서 열리는 게이 프라이드 행진에 쓸 1.25마일(2.011km) 길이의 무지개 깃발을 제작하기도 했다.
【AP/뉴시스】 = 2003년 6월 15일 대서양 해안인 플로리다주 키 웨스트에서 행진에 사용된 길이 2km의 무지개 깃발. 성적소수자 운동의 상징이 된 이 깃발을 처음 디자인했던 동성애자 권리운동가 길버트 베이커가 3월 31일 사망한 것으로 신고되었다.
현 샌프란시스코 시장 에드윈 리는 베이커의 죽음에 대해 "무지개 깃발은그것을 올려다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과 사랑,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베이커는 성적 소수자 운동의 개척자, 강렬한 예술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친구였다"며 애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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