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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1천조 폭탄', 수렁에 빠진 사람들

[기타] | 발행시간: 2012.06.17일 12:27
가계 부채가 사실상 1000조 원을 넘어섰다. 가계 부채는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폭탄'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에 '가계 부채 위험도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가계 빚을 본격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고금리 업체로 내몰리는 서민들을 위해 금융권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해 가계 대출 상환 능력을 높여야 한다 등 이런저런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각기 다른 이런 해법들에 공통점이 있다. 가계 부채 문제가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까지만 말한다는 것이다. 턱밑까지 차오른 위기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는 논리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한다고 해서 가계 부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계 부채가 '폭탄'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조정하는 작업을 소홀히 하면 문제는 언제든 재발할 수밖에 없다.

빚을 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최소 비용이 없어서 빚을 지는 이도 있고, 퇴직한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창업을 했다가 빚을 지는 사람도 있으며, 투기 목적으로 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못하고 빚더미에 앉는 이도 있다.

이 중 마지막 같은 사례, 즉 욕심을 부리다 화를 자초한 이들을 제외하면, 상당수는 소득과 지출의 불균형 때문에 가계 부채의 늪에 빠져든다. 들어오는 돈은 적은데 나가는 돈은 많은 기본 틀이 문제라는 말이다.

구조조정의 역설…가계 부채 '폭탄'의 형성

그런 틀이 만들어진 것은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와 관련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었다. 비정규직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에 대한 차별도 심해졌다.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대부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에 만들어진 비정규직 관련법은 비정규직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렸다. 이런 기조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어졌고, 비정규직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다.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문제도 심각하다. 주목할 것은 IMF 구제금융 위기를 계기로 일터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일상적으로 행해지면서 자영업자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 중 많은 이가 생계를 위해 창업을 택했기 때문이다. 박상규 강원대 경영학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노동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은 미국의 3.8배, 일본의 2.5배에 이른다.

그렇지만 생계형 창업자 중 성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조영철 박사(경제학)는 이를 "구조조정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IMF 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대기업의 효율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경제 전체의 효율성은 낮아졌다. (기업에서 밀려난 이들이 자영업자 등으로 바뀐 것은) 생산성이 높은 부문에서 생산성이 낮은 부문으로 노동력이 이동했다는 것을 뜻한다." (7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월례 세미나)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를 제외한 대다수 영세 자영업자들은 매우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반정호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저소득(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퍼센트 미만) 자영업자 비중(9퍼센트)은 1996년 저소득 임금노동자 비중(8.4퍼센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위기와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대란을 거친 후인 2008년 저소득 자영업자 비중(11.4퍼센트)은 저소득 임금노동자(5.4퍼센트)의 두 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적자 비중은 26.8퍼센트에 달한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자영업자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제 살 깎아먹기 식 경쟁이 이뤄진 것이다. 또한 상인들이 대형 유통업체에 상권을 뺏기고, 편의점을 비롯한 체인점 주인들이 본사의 횡포에 고통 받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더해 최저임금이 여전히 바닥 수준인 데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이들이 많은 현실도 생활에 필요한 돈을 안정적으로 벌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데 한몫했다.

이렇게 소득이 부족한 이가 늘어난 반면 지출해야 할 규모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몸 누일 집을 마련하고, 병을 치료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례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1년 발표에 따르면 아이 1명을 낳아서 대학을 졸업시킬 때까지 드는 양육비가 2억 6200만 원이 넘는다(2009년 기준). 가구당 평균 재산(2억 9765만 원, 2011년 3월 기준)을 감안하면, 아이 하나 키우려면 전 재산을 거의 쏟아 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대학 등록금과 사교육비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스펙' 경쟁은 심해졌고 그에 필요한 비용도 늘어만 갔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빚을 권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몇 년 전부터 주변에서 어렵잖게 들을 수 있게 된 "빚도 자산"이라는 말은 이런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산=부채+자본'이니, "빚도 자산"이라는 규정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매우 위험하게 쓰였다. '빚테크(빚을 내서 '재테크'를 하는 것)'를 부추겼다는 점에서다.

지난 몇 년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금융권은 손쉬운 가계 대출에 주력했다. 단기 이익을 쫓아 주택 담보 대출 등을 무분별하게 늘렸다. 사람들에게 그것은 빚을 내서 자산을 늘리라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정부도 거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건설 경기 부양 신호를 보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다시 집값이 지속적인 상향 곡선을 그리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암시로 다가갔다. 이와 달리 반값 등록금처럼 가계의 부담을 크게 덜어줄 수 있는 공약은 실현되지 않았다.

'괜찮은 일자리'는 줄이고, 빚을 내서라도 개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사회를 몰아가는 데 정부와 기업, 금융권이 암묵적으로 공조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빚의 수렁으로 내몰린 사람들

그 결과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하우스푸어'의 악몽으로 바뀐 이들, 가족이 큰 병에 걸리면서 빚의 수렁에 빠져든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다단계, 애인 대행 등 위험한 아르바이트까지 했지만 결국 수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 빚을 떠안고 대학을 졸업하는 자녀, 그리고 그런 자녀의 학비를 대기 위해 허리가 휘도록 일해야 하는 부모 역시 늘어났다.

그렇게 자녀를 키우고 교육시키느라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부모들은 빚의 수렁에 빠져들 위험성이 높다. '노인 백수'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여전히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처지이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4월에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부채에서 5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3년 33.2퍼센트에서 2011년 46.4퍼센트로 13.2퍼센트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50세 이상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퍼센트포인트 늘어난 것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고연령층 가계 부채가 은행보다 비은행권에서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이 보고서는 저소득층의 가계 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점도 내용도 담고 있다. 2011년에 새로 취급된 가계 대출에서 연 소득이 3000만 원이 안 되는 이들의 비중이 계속 높아진 반면, 고소득층의 비중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부채의 3대 취약 계층으로 자영업자, 다중채무자(3곳 이상의 금융 기관에서 돈을 빌린 사람), 고령자가 꼽히는 것도 한국 사회의 이러한 구조와 관련돼 있다. 인구의 14.6퍼센트(약 712만 명)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에 태어난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하는 시점임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창업했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자영업자, 다중채무자, 고령자의 3중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가계 부채 문제의 근원엔 소득이 충분치 않은 많은 이들이 주거, 의료, 보육·교육 등 삶의 기본을 영위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비용을 '개별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있다. 그리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복지가 취약하고, 일자리를 조기에 잃거나 은퇴했을 때 생활을 기본적으로 보장해주는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폭탄'은 해체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가계 부채 문제는 한국 사회의 축도(縮圖)와 같다. 가계 부채 해법의 핵심은 빚을 떠안기는 한국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에서 큰 부잣집 출신이 아닌 이상 생계를 위한 빚을 조금도 내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처럼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짓눌려 살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소득 수준을 높이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개인 혹은 가정이 홀로 떠안지 않게 하는 동시에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가계 부채 문제를 풀어가는 정공법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방식이 가계 빚 문제를 푸는 정공법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 불안을 줄여, 열심히 일하면 가족이 품위 있게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저렴하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리는 것 등을 통해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주고, '소유'에서 '거주'로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간다.

▲건강보험의 보장률과 공공의료 비율을 높여 병원비 걱정을 줄여준다.

▲반값 등록금 공약 실행 등을 통해 가계의 부담을 덜어준다.

실행할 만한 구체적인 정책은 이보다 훨씬 많다. 중요한 건 기술적인 처방을 하는 것만으로는 가계 부채라는 '폭탄'이 해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빚에 짓눌리게 만드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폭탄'을 계속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긴 하다. 수치만 놓고 따질 경우, 결혼하지 않으면 빚을 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면 생활비가 훨씬 덜 든다. 가족이 병들어도 모른 척하면 엄청난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빚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족의 고통을 나누는 삶을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강제하는 방식으로는 사회를 유지할 수도 없다.

빚을 권하는 것을 넘어 떠안기는 사회를 내버려두고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만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폭탄'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갈 것인가. 한국은 다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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