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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대표하는 도로, 베이징 창안제의 600년 역사

[기타] | 발행시간: 2017.05.08일 09:52

2002년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천안문)과 시창안제(西長安街).

[인민망 한국어판 5월 8일] 명(明)나라 초기 베이징 남쪽 성벽을 남쪽으로 이전시키면서 오늘의 창안제(長安街, 장안가)가 건설되게 되었다. ‘중국 제일의 도로’인 창안제는 6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창안제는 중국 정치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창안제의 변화는 항상 한 시대의 변화 특징을 반영했다. 원(元)나라 때, 창안제는 위안다두(元大都, 원대도) 남쪽 성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둥단(東單)과 시단(西單)을 잇는 3.7km 길이의 도로였다. 명나라 초기 베이징청(北京城, 북경성) 증축 공사 당시 남쪽 성벽을 지금의 충원(崇文), 쉬안우(宣武) 일대로 옮기면서 원래 성벽이 있던 자리에 동쪽과 서쪽을 가르는 긴 도로가 생겼다. 그곳에 창안쭤먼(長安左門, 장안좌문), 창안유먼(長安右門, 장안우문), 둥단파이러우(東單牌樓, 동단패루), 시단파이러우(西單牌樓, 서단패루) 등을 세웠다. 창안제라는 이름은 창안쭤먼과 창안유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으로 ‘장치구안(長治久安, 사회 질서가 장기간 안정되고 평화로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청(淸)나라 말기 베이징 둥창안제(東長安街)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들과 도로 전경.

창안제는 나라의 운명을 목격해왔다. 1912년 청(淸)나라 황제가 물러나면서 톈안먼(天安門, 천안문)광장이 대외 개방됐고 1924년 베이양(北洋, 북양)정부 때 창안제에 최초로 노면 전차를 설치했다. 1937년 베이핑(北平, 현 베이징)을 함락한 일본군은 성벽을 뚫어 입구를 만들었다[현재의 젠궈먼(建國門, 건국문)과 푸싱먼(復興門, 복흥문)]… 1949년 신중국 건립 후 창안제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1952년 창안쭤먼과 창안유먼을 철거하고 몇 년 후 둥단파이러우, 시단파이러우, 솽타쓰(雙塔寺, 쌍탑사)와 중화먼(中華門, 중화문) 등을 차례로 철거했다.

1945년 9월 4일 찍은 사진, 창안제(長安街, 장안가)와 중난하이(中南海).

창안제는 건국 후 열병식을 위해 여러 번의 공사를 거쳤다. 1959년 건국 1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개조 작업이 이루어졌다. 톈안먼광장은 한 번에 100만 명이 모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 되었고 톈안먼 앞쪽 길은 120명이 한 번에 지나갈 수 있는 120m 넓이의 도로가 되었다. 넓은 도로를 낸 이유는 열병식뿐 아니라 전쟁 시 활주로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건국 10주년 10대 건축물’에 포함되어 있는 인민대회당, 중국국가박물관 등 7개의 건축물이 창안제 일대에 모여 있다. 이로써 창안제는 중국 정치의 중심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50년 국경절, 창안제(長安街, 장안가)를 걷고 있는 소년소녀 단원 행렬. 사진 속 우측에 있는 건물이 창안유먼(長安右門, 장안우문)이다.

개혁개방 후 시장경제 체제가 중국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중국의 상업 역시 창안제에서 시작되었다. 창안제 부근의 왕푸징(王府井), 홍콩 최고의 부자 리자청(李嘉誠)의 투자로 설립된 둥팡광창(東方廣場, 동방광장) 등이 당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건국 기념,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아시안 게임, 홍콩 반환, 올림픽 등 창안제는 끝없이 개조 공사를 치러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는 수백 년 동안 역사에 길이 남을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이 건설됐다. 국가대극원은 중국 민족문화궁(民族文化宮), 베이징도서빌딩(北京圖書大廈) 등과 함께 창안제의 문화적 랜드마크로 대두되었다. ‘창안제’는 단순히 둥단과 시단을 잇고 있는 3.7km의 도로가 아니라 퉁저우(通州)구와 스징산(石景山)구를 잇는 백 리(裏•거리 단위: 1리는 약 393m) 도로라고 볼 수 있다. (번역: 은진호) 원문 출처: 텐센트 뉴스

‘연경십경(燕京十景)’ 중 하나였던 ‘창안펀타(長安分塔, 장안분탑)’는 1954년 시창안제(西長安街) 확장 공사를 위해 철거되었다.

1959년 3월 베이징 둥창안제(東長安街) 확장 공사 현장

1976년 4월 4일 사람들이 톈안먼(天安門, 천안문)광장에 모여 저우언라이(周恩來, 주은래) 총리를 추모하고 있다.

1988년 창안제(長安街, 장안가)의 아침

1999년 지은 둥팡광창(東方廣場, 동방광장)의 모습

2002년 베이징 시단(西單) 부근에서 결혼 사진을 활영하는 모습

2010년 12월 21일, 창안제(長安街, 장안가) 교통체증

2009년 8월 5일 새벽, 베이징 시단(西單)에서 톈안먼(天安門, 천안문)까지 가는 인도와 보조 도로의 공사 현장. 인부들이 비를 맞으며 도로를 깔고 있다.

2009년 9월 27일, 국경절을 앞두고 장갑차와 특수 경찰들이 시단(西單) 부근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건국 50주년, 창안제(長安街, 장안가)에서 퍼레이드 행사가 진행되는 모습

2010년, 궈마오(國貿) 3기(三期) 빌딩에서 바라본 베이징

2014년 4월 16일, 인부들이 창안제(長安街, 장안가)에 설치된 중앙 분리대를 교체하고 있다.

2015년 8월 12일, 베이징 창안제(長安街, 장안가) 인도의 난간을 금색으로 바꿨다. 9월 3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이하여 수리 및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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