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궈잉(吳果英)이 판바이쑨(範百孫)의 밥그릇에 반찬을 놓아주고 있다.
[인민망 한국어판 5월 19일] 40년 전의 한 선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그녀의 모든 사랑을 쏟아붓고 연약한 어깨로 버려진 한 지적 장애아의 인생을 일으켜 세웠다. 우궈잉(吳果英)라는 이름의 그녀는 올해 72세로, 장시(江西, 강서)성 펑청(豐城, 풍성)시 뤄스(洛市)진 둥안(東安)촌에 사는 마을 주민이다.
우궈잉(吳果英, 좌측)과 판바이쑨(範百孫)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4월 18일 촬영)
1977년 어느 날, 갓 태어난 아기는 난산으로 생모를 잃고, 생부에게 버림받은 채 현지 병원에 남겨지게 되었다. 마침 그 병원에서 일하던 우궈잉은 불쌍한 처지의 이 아기를 보자마자 안고 집으로 돌아와 판바이쑨(範百孫)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가 5, 6세쯤 됐을 무렵 우궈잉은 아이가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조차 가르쳐주어도 잘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결과, 판바이쑨이 선천성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0년 동안 살아온 흙 벽돌 집에서 우궈잉(吳果英)은 판바이쑨(範百孫)에게 옷을 입혀주고 있다.
“너희 가족도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데, 나중에 이 많은 사람들 먹이고, 어떻게 살아 갈려고 그래?”라며 친척과 이웃들은 모두 우궈잉에게 이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을 권했었다. 하지만, 우궈잉은 많이 생각하지 않고,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뜻을 고집했다. 우궈잉은 판바이쑨을 돌봐야 할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맡아 해야 하고, 돈을 벌어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밖에 나가 일을 할 때면, 그녀는 항상 판바이쑨을 데리고 함께 나갔다.
우궈잉(吳果英)이 집 앞에서 판바이쑨(範百孫)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궈잉은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아들’과 함께 산으로 둘러싸인 이 작은 산골 마을에서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다. 생활이 매우 가난하고 고생스럽지만, 우궈잉은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현지 정부도 그들을 도와 도시 주민 최저생활을 보장해주고 있으며, 설이나 명절을 지낼 때면 다들 찾아와 위로하고 안무를 묻는다. 우궈잉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가장 아름다운 양어머니’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번역: 김미연)
우궈잉(吳果英)이 집 앞에서 판바이쑨(範百孫)의 등을 닦아주고 있다.
우궈잉(吳果英, 우측)이 양치질을 하고 있는 판바이쑨(範百孫)을 바라보고 있다.
우궈잉(吳果英)이 마을 뒤에 있는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다.
집 마당 옆의 공터에서 우궈잉(吳果英)이 판바이쑨(範百孫)에게 일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우궈잉(吳果英, 좌측)이 판바이쑨(範百孫)의 팔짱을 낀 채 집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판바이쑨(範百孫, 좌측)이 주방에서 점심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우궈잉(吳果英)이 판바이쑨(範百孫)을 데리고 산에 찻잎을 따러 가고 있다.
원문 출처: 신화망(新華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