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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21]스케트에 숨겨진 이야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7.06.09일 14:03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1)

◇정룡만(청도)

해마다 동삼이 되여 아이들이 스케트 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스케트에 담긴 여러가지 사연으로 하여 때론 웃음이 절로 나고 때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1965년, 그 해 동북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성 중학교에 배치받았다. 지도부에서는 조문학부를 졸업한 나를 왕청같은 체육교원으로 배치했다. 나는 너무 어이없어 말도 나가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혁명’의 수요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막을 모르는 교연조의 선생님들은 뒤에서 “조문학부를 졸업한 정선생님은 아마 ‘팔방미인’인가 봐. 체육도 잘하는 걸 보니…” 하며 자기들 끼리 주고받고 웃으며 떠들어댔다. 교원들은 진심을 담아 나를 ‘팔방미인’이라고 칭찬을 했겠지만 나에게는 한낱 재앙으로만 느껴졌다.

세월이 약이라고 몇달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생활하니 체육교원 사업도 재미나는 구석이 있었다. 그 해 겨울에 전 현 중소학교 동기체육 운동대회가 우리 학교 스케트장에서 성황리에 열리게 되였다. 학교 지도부와 100여명의 교직원들은 나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나는 우수한 성적을 따내여 학교 명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선수 선발이 시작되였다. 고중 1학년 3반의 최영학학생은 체육에 소질이 있고 키도 크고 스케트 타기에 특수한 재능을 갖고 있기에 체육교원인 나는 그 학생을 첫번째로 꼽았으며 그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

선수 선발이 끝나자 본격적인 련습이 시작되였다. 항상 학교 체육과 선수들을 관심하고 매사에서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김주임선생님은 얼마동안 지켜보다가 전 현 동기 체육운동대회에서 영학이가 일등은 문제없다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나도 그런 짐작은 갔으나 추호도 장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련습을 하면서 닫는 말에 채찍질을 가했다. 영학이의 스케트 기능은 날따라 제고되였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기에 나와 학교 지도부에서는 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대회를 며칠 앞두고 이외의 일이 생겼다. 영학이의 한쪽 스케트 날이 얼음강판의 금 난 곳에 끼우면서 두동강이 났다. 하느님 맙시사, 이 일을 어쩌노? 공 든 탑이 와그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속이 바질바질 타서 재가 될 지경이였다.

나는 부랴부랴 시내의 스케트 판매점을 참빗질했으나 마땅한 스케트를 구입 못했다. 초조한 마음을 가까스로 달래며 여러 곳에 탐문하여서야 끝내 할빈스케트공장을 알아냈다. 나는 학교 지도부와 상론하고 공장을 찾아가서 새 스케트를 사오기로 아퀴를 지었다. 근데 꼭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빨리 돌아온다고 해도 운동대회가 시작된 날 오후에야 도착할 것 같았다.

나는 점심밥도 먹을 새 없어 길가에서 오이 한개를 사서 씹으며 할빈 행 렬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는 젊은 시기라 한 둬시간 지나니 목젖이 방아 찧고 갈비대가 후치질하면서 배가 고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경제가 어려웠던 그 시기 렬차에는 아무 것도 파는 것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찬물을 마시면서 주린 창자를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빈속에 찬물을 많이 마신 탓인지 아니면 오이를 급하게 먹은 탓인지 이따금 배가 아파났다. 나는 억지로 참으며 어서 빨리 할빈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덜커덩거리며 달리는 달구지 같은 렬차는 연착되여 밤 10시가 되여 할빈역에 도착했다. 빵 두개를 사서 게 눈 감추듯 먹어버리고 돈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헐망한 려인숙에 류숙을 잡았다. 소화불량으로 갑자기 배가 아프며 설사가 나갔다. 약도 없지 큰일 났다. 배가 아프다 못해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날 저녁 나는 대여섯번이나 화장실 출입을 한데다가 머리에는 온통 그 스케트 뿐이여서 온밤을 뜬눈으로 날을 새하얗게 지새웠다. 손바닥에 땀이 바질바질 돋아났다. 하지만 영학이와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이를 악물고 일어나야만 했다. 아픈 배를 가까스로 추스리며 꼭두새벽에 일어나 려관 일군에게 물어물어 겨우 스케트공장을 찾아갔다. 한참 지나니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며 아프던 배도 애간장을 태우는 내 사정을 알아주기라도 하듯이 차츰 나아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렸다.

이른아침이라 공장의 대문은 잠겨져 있었다. 나는 문지기 아저씨에게 소개신을 보이고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좀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인품 좋은 량반은 나를 도와주겠다며 선선히 대답했다. 나는 아저씨가 너무도 고마워 호주머니에 비상용으로 넣고 갔던 ‘인삼표’ 담배 두갑을 옆구리에 찔러넣으니 일은 더욱 순순히 풀렸다. 이윽고 문지기 아저씨는 어디 가서 키꼴이 꽤나 큰 어른을 모시고 와서 이 분이 업무주임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꾸벅 경례를 올렸다. 세상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 많았다.

인품 좋은 왕주임은 나를 데리고 공장으로 들어가서 마음대로 고르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의 도움으로 그때 돈 45원이던가 50원을 치르고 질 좋고 보기 좋아 마음에 드는 스케트 한컬레를 구입했다.

헌데 시간이 지체되여 그만 렬차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죽은 돼지 끓는 물 무서워하랴. 나는 겁도 없이 체면도 잊고 다짜고짜 할빈역에 들어가 역장을 찾아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좀 도와달라고 울상이 되여 사정사정했다. 역장은 괴이쩍게 나를 쳐다보며 “조선족 선생이구만!” “이런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서 짐차바구니에 실어보낼 터이니 다음, 그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차를 갈아타라고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나는 역장에 대한 고마움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역장어른은 젊은 선생이 고생이 많다면서 돌아가 꼭 일등을 쟁취하라고 조언의 말씀도 덧붙였다. 이젠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나는 숨을 호- 내쉬였다.

나는 지금도 생면부지 그 역장님의 고마움에 눈물이 나며 그 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공은 입은 사람만이 안다고 하는데, 고마운 분들의 그 많은 도움을 받고, 이젠 나도 먹고 살 만하고 또한 아들들이 출세하여 가난때도 벗고 은공을 갚을 만도 한데…

할빈에 가서 스케트 한컬레를 사오는 초행길은 첩첩중산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급한 김에 헤덤비다가 돈지갑을 도적맞혔다. 떠나기 전 안해가 아까와하며 농짝에서 꺼내주던 돈 20원을 몽땅 잃었다. 돈을 잃고나니 심장이 다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왜 내가 사는 이 며칠은 요 모양인지 눈앞이 다 캄캄했다. 반달 월급이 눈 감짝할 새 날아나서 나는 그 해 배를 쫄쫄 굶으면서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듯했다. 나는 너무 분한 김에 그 도적놈에게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렁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줄욕을 퍼부었다.

나는 일전이라도 쪼개쓰며 안해에게 이 일만은 숨기며 살아왔다. 집 한간도 없이 세방살이하는 신세에다 아들 셋을 키우며 근근득식하는 착한 안해의 마음을 더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학교에는 호조금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호조금이란 매달 교원들의 월급에서 3, 4원씩 떼내여 저축했다가 어느 교원의 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때 꾸어주는 돈이다. 나는 안해 모르게 학교 호조금에서 5원, 저 선생에게서 2원, 5원씩 꾸어가며 겨우 생활의 어려운 고비를 이겨냈다.

안해는 그 일을 썩 후에 알았으나 한마디도 나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혼자서 얼마나 속태웠겠는가 하며 위로의 말도 보탰다. 나는 그런 안해가 눈물나게 고마왔다.

할빈 행 에피소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짐차바곤에서 내려 렬차를 바꿔타려고 급히 철길을 넘다가 그만 발목을 몹시 다쳐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발차 시간이 이제 17분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아픈 발목보다 애타게 기다릴 학교 지도부와 영학이의 생각에 체면도 잊고 철길 옆에 퍼더버리고 앉아 아이들처럼 엉엉 울었다. 나는 고마운 철도 수리공의 도움으로 무사히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왕청역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였다. 나는 인력거를 잡아타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학교 지도부와 영학이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이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을 보니 저도몰래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나는 며칠 간의 곡절 많은 출장길에 제대로 먹지 못한 데다 발목의 모진 상처와 스트레스로 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고말았다. 영학학생의 경기도 보지 못하고 시립병원에 입원했다.

징검다리 놓듯이 영학학생에게 아낌없이 몰부은 그 사랑과 정성은 경기 시합에서 은을 냈다. 100메터 단거리와 200메터 중거리 경기에서 각각 1등을 쟁취하고 릴레이에서 3등을 따내여 학교의 위상을 떨치였다. 나는 병원에서 체육경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영학이가 학교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고마움과 내가 며칠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때 그 시절에 있던 토막토막 일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머리가 다 어질어질해 나고 혈압이 올라가는 듯하다.

지난날을 회고하면 비록 거창한 그 무엇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교육사업에서 자신이 맡은 사업에 충성했다는 그 자체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잊지 못할 추억이 있겠지만 내 맘속에 깊이 간직했던 소중한 추억을 오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인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주어모은다면 평생 교원사업을 해온 나의 력사에 길이길이 아로새겨질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훌륭한 사람은 못 되더라도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슴은 한없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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