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정치 > 국제시사
  • 작게
  • 원본
  • 크게

통독 이룩한 헬무트 콜, 유럽 통합의 초석까지 닦아

[기타] | 발행시간: 2017.06.17일 05:32

【베를린=AP/뉴시스】1987년 6월 12일 독일 베를린에서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오른쪽)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옆에 서서 박수치고 있다.


【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그를 빼놓고는 오늘의 독일과 유럽을 이야기할 수 없다. 16일 87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헬무트 콜 초대 통독 총리가 바로 그다. '비르네'(birne, 위는 좁고 밑은 넓은 서양 배)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거구(키 190㎝ 몸무게 117㎏)였던 콜은 분단 45년 만에 독일 재통일을 이루었다. 그는 또 유럽연합(EU) 탄생의 초석을 닦았다는 점에서 유럽 현대사에 매우 큰 족적을 남겼다.

물론 독일 통일이나 EU의 탄생이 오롯이 그만의 공은 아니다. 동방정책으로 동독과의 화해를 일궈낸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노력으로 독일 통일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냉전 체제를 끝내는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콜이 독일 통일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EU의 출범 역시 콜에 앞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노력들이 쌓인 결과이지 결코 그만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통독의 경우 프랑스와 영국 등 주변국들은 2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이 또다시 통일돼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우려, 독일 통일에 반대했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당시)는 대놓고 독일 통일에 반대했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당시) 역시 지지를 유보했었다. 하지만 콜은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는 1989년 11월9일 누구도 예상치 못했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였다. 사실 베르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독일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실업이 늘면서 콜 총리의 인기도 낮았다. 국제적으로는 소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힘입어 동유럽에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었고 소련의 통제와 간섭은 느슨해졌다. 이런 속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것이다. 장벽 붕괴는 동시에 전후 냉전체제의 종식을 의미했다.

장벽 붕괴 하루 뒤인 11월10일 콜 당시 서독 총리는 연설에서 "(베를린 장벽의)붕괴는 통합과 자유, 정의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통합은 분단된 동서독의 재통일과 나아가 유럽을 하나로 묶는 원대한 꿈을 담은 것이었고 국제사회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었다. 콜은 연설에서 통일된 독일이 통합된 유럽의 일원으로 유럽에 과거와 같은 골치아픈 일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이러한 콜의 약속은 그러나 베르린 장벽 붕괴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1984년 9월 2차대전의 최대 격전지 중 한곳인 프랑스 베르됭을 찾아 미테랑 대통령과 손을 맞잡아 화해를 이끌고 이듬해인 1985년 5월에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독일 비트부르크 방문을 성사시키는 등 1982년 서독 총리로 취임한 후 2차대전 때의 적국들과 화해를 적극 추진했다. 그는 장벽 붕괴 11개월 만에 미국과 소련의 지원 속에 독일 통일에 성공, 통일 독일의 초대 총리로 취임하면서 장벽 붕괴 전 어려움에 처했던 정치적 상황을 반전시켰다.

【런던=AP/뉴시스】1984년 6월 10일 헬무트 콜(왼쪽) 당시 독일 총리가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왼쪽 두번째),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와 나란히 서있다.


1992년 2월에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유럽 단일통화(유로화) 도입과 EU 설립 합의를 담은 마스트리히트 조약 조인을 이끌어내 EU 출범의 기반을 마련했다. 19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되면서 EU가 닻을 올렸고 1999년 유로화가 도입돼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유럽이 공식 출범하는데 기초를 닦은 것이다.

1930년 4월3일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루트비히스하펜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콜 총리는 히틀러의 나치 군대에 징집됐었지만 15살 때 독일이 패전하면서 실제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그는 늦게 태어난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말하곤 했다. 실제 그의 형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독일이 일으킨 2차례의 세계대전에 참가하지 않은 전후세대로는 첫 독일 총리였다. 나치가 저지른 범죄로부터 자유로웠고 민주제도가 자리잡은 독일에서 성장했다. 16년 간 총리직을 수행한 독일 최장수 총리였다. 17살 때 라인란트팔츠주 기민당(CDU)의 청년동맹 창설을 주도하는 등 어려서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29살에 라인란트팔츠주 주의원, 39살에 주 총리에 오르는 등 권력에의 강한 집착욕을 보이기도 했다.

전후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렸던 서독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달리 콜 총리 집권(1982∼1998년) 기간 독일의 경제성적은 좋은 편은 아니다. 동서독 마르크화의 1대 1 교환이라는 무리수가 독일 경제에 큰 부담이 됐다. 특히 통일 이후에는 낙후된 옛 동독 지역 개발을 위한 막대한 재정 투입 등으로 독일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며 실업률이 급등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일자리를 찾아 서독 지역을 찾는 동독인들에 대한 서독인들의 반발은 지난 2015년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한 유럽의 반발 예고편을 보여주는 듯하기도 했다.

콜 총리는 그러나 이러한 국내 경제의 어려움과 나치 독일에 큰 피해를 입은 폴란드 등의 강력한 반발 속에서도 국제사회의 흐름을 잘 파악, 통일이라는 위업을 성사시켰다. 그의 외교 정책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높은 인기를 누렸었다.

【 오거샤임=AP/뉴시스】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오른쪽)가 2014년 5월 16일 오거샤임에 있는 자택에서 장 클로드 융커 당시 유럽연합 집행위원장후보와 만나고 있다.


그는 1998년 총선에서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게 패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 그의 말년은 그리 좋지 못했다. 집권 기간 중 비자금 조성 및 운영이 문제가 된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72년 이후 27년 간 유지해온 CDU 의장직에서도 2000년 물러나야만 했다. 2001년에는 41년 간 함께 해온 첫 부인 하넬로레가 자살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광피부염에 시달렸던 하넬로레는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8년 마이케 리히터와 재혼했다. 하넬로레와의 사이에 페터와 발터 등 두 아들을 두었다.

dbtpwls@newsis.com

출처: 뉴시스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100%
10대 0%
20대 0%
30대 33%
40대 67%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브브걸 멤버였던 유정이 '브브걸'을 탈퇴하는 심경을 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2일, 유정은 탈퇴 심경을 전하며 "워너뮤직코리아와의 계약이 종료됨과 동시에 브브걸이 아닌 남유정으로 활동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녀는 "같이 약속한 게 많은데 이야기를 모두 드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1억 있어도 생활비 안 줘" 고딩엄빠4, 만삭 아내 눈물에 서장훈 '대노'

"1억 있어도 생활비 안 줘" 고딩엄빠4, 만삭 아내 눈물에 서장훈 '대노'

사진=나남뉴스 와이프에게는 필요한 신발 한 켤레 사주지 않고 친구들에게는 술자리 비용을 턱턱 내는 고딩엄빠 남편의 모습에 서장훈이 분노했다. 오는 24일 방송하는 MBN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4' 38회에서는 김지은, 김정모 청소년 부부가 출연한다. 극과 극 통

"몰라보게 달라졌네" 장영란, 6번째 눈 성형수술에 아들 '외면' 상처

"몰라보게 달라졌네" 장영란, 6번째 눈 성형수술에 아들 '외면' 상처

사진=나남뉴스 방송인 장영란이 6번째 눈 성형수술을 받은 뒤 자녀들의 솔직한 반응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2일 장영란의 유튜브 채널 'A급 장영란'에서는 한의사 남편 한창과 두 자녀와 외식에 나선 장영란의 모습이 담겼다. 공개된 영상 속 장영란은 아이들이

하이브 CEO, 어도어 사태에 "회사 탈취 기도가 명확하게 드러나"

하이브 CEO, 어도어 사태에 "회사 탈취 기도가 명확하게 드러나"

하이브 CEO, 어도어 사태에 "회사 탈취 기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연합뉴스] 박지원 하이브 CEO(최고경영자)가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두고 불거진 사태와 관련해 "회사는 이번 감사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진상을) 확인한 후 조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가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