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사진)을 암살한 동남아 출신 여성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2일 김정남 살해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29)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두 사람은 올해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지 검찰은 인도네시아어와 베트남어로 각각 두 사람에 대한 기소장을 낭독하며 이들이 김정남을 살해할 의도를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반면 두 피고인은 유죄를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흔들며 무죄를 주장했다. 특히 시티 아이샤의 변호를 맡은 구이 순 셍 변호사는 "아이샤는 김정남의 얼굴에 바른 물질이 독이란 걸 몰랐다. 그녀 역시 이번 사건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이번 재판의 첫 증인으로는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김정남을 공항 내 진료소로 안내한 현지 경찰관이 출석했다.
모흐드 줄카르나인사누딘(31) 일경은 "통통한 얼굴의 살찐 남성이 안내센터 직원과 함께 와서 여성 두 명이 얼굴에 뭔가를 발랐다며 신고를 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그의 얼굴에는 액체가 조금 묻어 있었고 눈이 조금 충혈돼 있었다"며 김정남이 일단 치료부터 받고 싶어 해 공항 내 진료소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이 과정에서 "천천히 걸어달라. 눈이 흐려져서 앞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모흐드 일경은 전했다.
그는 "진료소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진이 응급처치를 실시했다"며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들어갔더니 그 남성은 진료소내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정남은 피습 후 약 20분 만에 사망했다.
검찰은 이날 기소장에서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이 다른 용의자 4명과 함께 김정남을 살해할 공동의 의사를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으나, '용의자'의 신원은 적시하지 않았다. 변호인들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검찰이 공범들의 신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북한 국적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이미 해외로 도주해 사법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이들의 신원을 적시해 북한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검찰과 변호인단은 향후 두 달 이상의 기간에 걸쳐 진행될 이번 재판에 국내외 전문가 등 150여 명을 증인으로 세울 예정이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