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 김은별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원정출산도 불가능하게 된다는 뜻이다. 행정명령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는데, 수정헌법과 배치되는 내용이라 헌법보다 하위 권한인 행정명령으로 이를 변경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30일(현지시간)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나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서 낳은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헌법상 권리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어떤 사람이 입국해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이는 본질적으로 미국의 모든 혜택을 누리는 시민이 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다. 말도 안 된다. 이제 끝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철폐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위헌 논란이 일 것으로 점쳐진다. 미 수정헌법 제14조는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 행정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해 미국 영토에서 출생한 아기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번 발언은 기존 ‘반(反) 이민정책’의 연장선에 있으며,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으기 위한 포석으로도 받아들여진다. 특히 ‘앵커 베이비’(anchor baby·닻을 내려 정박하듯 원정출산으로 낳아 시민권을 얻은 아기)와 ‘연쇄 이민’(chain migration·미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부모·형제 등 가족을 초청하는 제도를 활용해 연쇄적으로 하는 이민)을 겨냥한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펼쳐온 강경 이민정책에서 가장 극적인 움직임이 될 것이라고 악시오스는 분석했다.
위헌 등 법적 쟁점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항상 들어왔다”고 운을 뗀 뒤 “그것 알아요? (헌법 개정을) 할 필요가 없다”면서 행정명령에 의해서도 출생시민권 폐지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출생시민권을 부여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주장한 부분은 잘못됐다고 보도했다. 이민 감소를 지지하는 단체인 ‘넘버스(Numbers) USA’가 만든 자료에 따르면 33개 국가가 자국 내 출생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공화당 1인자로 불리는 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행정명령으로 출생자 자동 시민권 제도를 중단시킬 수는 없다”며 “출생자 시민권 제도를 인정한 미국 헌법을 수정하는 것은 오랜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