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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수기]파수꾼들의 이야기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9.02.20일 10:53



김봉금 (림구현조선족교육중심소학교)

  (흑룡강신문=하얼빈)"조선족학교에 아직 학생이 있나요?" 택시기사가 이렇게 물었다.

  "학생이 없다면 저가 왜 출근하겠어요?" 나의 대꾸는 퉁명스러웠다.

  기분이 안좋은 대화였지만 사실 그럴만도 했다. 학생수가 두자리수를 차지하고 또 대부분 기숙생이다보니 택시기사들은 애들을 몇번 태워본적이 없어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수에 대한 말만 나오면 민감해지는 나다. 나의 안색이 흐려진 것을 알아차린 기사는 바로 말을 바꾸어 기실 학생수가 적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고 덧붙였다. 뭐라 더 말하려다 택시가 학교에 도착해서 그만두었다.

  단층짜리 학교지만 반짝반짝 빛나도록 닦아놓은 바닥은 미끄러넘어질듯이 알른거린다. 하지만 넓은 운동장에는 잡초가 잘도 자란다. 전교사생들이 땡볕에서 풀뽑기를 한지가 열흘도 안됐는데 또 이렇게 빨리 자라나다니. 아침자습시간에 교실마다에서 아이들의 글읽는 소리가 랑랑하게 울려나온다. 방금전 기사가 한말이 자꾸 떠오른다. 어쩌면 친구들이나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조선족학교는 학생수가 적어서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고, 월급도 한족학교교원들과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아픔을 모를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조선족학교에서의 출근은 하루하루가 불안감의 련속이라는 것을.

  참새는 작아도 오장륙부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학교는 작아도 할것은 다 해야한다. 반급에 학생이 수십명이든 칠팔명이든 교수안은 똑같이 짜야하고 활동도 똑같이 조직해야하며 교수연구도 똑같이 해야한다. 다만 숙제검사가 좀 쉬울뿐이다. 하지만 학생들 대부분 기숙생들이다보니 그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녀선생님들이 륜번으로 학교기숙사에서 밤당직을 선다. 그럴때면 어린 학생들의 발도 씻어주고 머리도 빗어주고 지어 목욕이며 빨래까지 해주기도 한다. 식모를 구하지 못할 때에는 밥까지 해야 했다.

  한선생님께서 당직을 설 때의 일이다. 새벽에 한 녀학생이 갑자기 열이 39도까지 올라가서 너무 놀란 한선생님은 학생을 둘쳐업고 근처 개인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흠뻑 땀에 젖어있었다. 아직 캄캄한 새벽이라 문을 한참 두드려서야 일어난 의사는 검사해보더니 감기라면서 해열제와 감기약, 소염제를 떼주었다. 한선생님은 또다시 아이를 업고 숙사에 와서는 물을 끓여 약을 먹이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었다. 약기운으로 열이 내리자면 한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는데 엄마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몸이 불가마같이 펄펄 끓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한선생님은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 이마에 번갈아 올려놓고 몸도 계속 닦아주었다.

  "뜨겁겠지만 좀 참아라. 이렇게 뜨거운 수건으로 몸을 닦다보면 열이 바로 내려갈거다. 예전에 우리 애들도 이렇게 했단다."

  엄마였더라면 아마 뜨겁다고 란리였을텐데 아이는 꾹 참고 있었다. 그러는 아이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샘솟듯 했다. 한참후 열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한선생님은 뜬눈으로 훤히 밝아오는 아침을 맞았다.

  기숙생들인 아이들은 두주일에 한번씩 집에 다녀오기로 돼있는데 많은 아이들은 다녀올 집이 없었다. 부모들이 학교에 맡겨놓고 떠났거나 아니면 원래 할머니나 친척집에 맡겼는데 그 할머니나 친척도 어디론가 떠나버렸거나... 하여간 학교 말고는 오갈데 없는 애들이였다. 그래서 주말이면 학교 녀선생님들이 륜번으로 이런 처지의 아이들을 자기네 집에 데려다 주말을 함께 보냈다. 그렇게 해온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누구 하나 불평 한번 없었다. 무보수로 10년 넘게 해오며 그것이 어떤 의무로 돼였다기보다 선생님들은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애들과 정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것이다.

  그날은 내가 한 학생을 우리 집에 데려온 날이였다. 우리 집은 작은데다가 소학생 아들에 두살된 딸 그리고 시어머님까지 네식구가 살고있었는데 이틀동안 다섯이서 그 비좁은 방에서 먹고 자야했다. 그래도 애들은 좋다고 날뛰며 잘도 놀았다. 하도 법석거려 머리 아파하시는 시어머님께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애들을 데리고 밖에 나갔다. 광장에서 실컷 놀고 돌아오다가 세일한다고 목청 높혀 웨치는 판매원의 싸구려소리에 이끌려 발길을 옷가게로 돌렸다. 옷가지들을 살피던 내 눈길이 분홍색 녀자애옷에 멈추었다. 어깨에는 망사로 된 날개가 달려 있어 우리 학생이 입으면 천사같을것같아 입어보라고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정말 하늘의 선녀가 따로 없었다.

  "음, 너무 이뻐. 선생님이 사줄게."

  나는 호주머니에서 얼마남지 않은 돈을 다 털어 옷을 샀다.

  "엄마, 우리 서윤이한테도 사줘요." 옆에 있던 아들애가 한마디 했다.

  "서윤이는 집에 옷이 많잖아. 건데 학생 동생은 옷이 얼마 없단다..." 나의 말에 아들은 알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학생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꾸벅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다. 행복에 겨워 빨갛게 물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그 며칠 우리의 가슴을 옥죄이던 시름을 잊은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전 교육국에서 문뜩 통지가 내려왔다. 우리 학교 자리에 구름다리를 놓을 계획이니 다른 학교와 합병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날벼락인가!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은 교육국장을 찾아가고 현정부를 찾아갔으며 성장우편함에 메일을 띄우는 등 노력을 통해 끝내 합병의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학생수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생각하면 앞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 한 학생이 남을 때까지 굳건히 지켜갈 것이다. 우리 파수꾼들의 이야기도 그렇게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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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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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학교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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