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주장 주덕해는 일찍 1961년에 ‘소방차가 불 끄러 가는’ 그런 속도와 마음가짐으로 민간문예자료를 수집할 것을 호소했다. 그의 선견지명이 불씨가 되여 그 후 조선족들이 과거 생산, 생활, 인생례의 등 과정에서 사용해오던 많은 물품들이 하나 둘 수집되면서 오늘 문물이 돼서 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유물들은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조선족의 민족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조상들의 희로애락을 품고 있는 소중한 문화재다. 문물에 담겨있는 사연을 통해 조선족 력사와 문화를 알리고 민족의 얼을 전승하기 위한 취지에서 본지는 연변박물관,룡정조선족민속박물관과 함께 본 특별기획을 펴낸다.
장농─놀부가 탐냈다는 화초장과 화초장타령
장농, 국가 3급 문물, 룡정조선족민속박물관 소장.
장농은 장과 농을 합친 이름으로서 과거 조선족들이 옷가지나 이불 등 생활용품을 넣어 보관하는 가구의 총칭이라고 볼 수 있다. 장은 나무각재로 뼈대를 구성하여 엷은 널판자를 붙여 만들어지는데 어떤 것은 농의 기능까지 가지고 있어 장농이라 부른다. 농은 폭이 넓고 두꺼운 널판자로 직접 무어서 만든 것을 가리킨다.
장은 층수에 따라 단층장, 2층장, 3층장, 4층장으로 나누기도 하고 넣어서 보관하는 물품에 따라서 옷장, 의걸이장, 이불장, 머리장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옛날 집안 살림이 유족한 조선족가정에서 녀인들이 거취하는 안방에는 자개를 정교하게 박아 화초문양을 만들고 옻칠을 곱게 낸 장(일명 화초장) 하나씩은 거의 다 갖춰져있었다. 그 시대 한개 가정의 일종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현재 룡정조선족민속박물관에 소장되여있는 이 화초문양을 낸 자개박이 3층장은 국가 3급 문물로서 지금으로부터 35년전인 1984년 5월 25일, 김영원, 정규광 두 사업일군이 룡정시 문화가 8련조에 사는 박순자의 집에서 수집해들인 것이다. 높이 182센치메터, 길이 103.4센치메터, 너비가 53.5센치메터로 자개를 박고 밤색의 옻칠을 올려서 정교하고 화려하게 제작하였는데 오늘까지 비교적 완정하게 보존되여있다.
장은 판소리 에도 오를 정도로 ‘지명도’가 높은 전통가구로 취급되고 있다. 흥부가 부자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쫓아간 놀부, 문짝에 꽃그림이 화사하게 그려진 화초장이 욕심 나서 흥부에게서 빼앗다 싶이 얻어낸다. 마음씨가 착한 아우 흥부가 욕심쟁이 놀부형님을 생각해 하인을 시켜 보내주겠다고 하는 것도 동생이 마음을 고쳐먹을가봐 일체 거절하고 그 무거운 장을 직접 짊어지고 “화초장 화초장” 읊조리면서 횡재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에서 물도랑을 건너다가 그만 ‘화초장’ 이름을 깜박하고 까먹고 만다. 눈을 껌벅이며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봐도 ‘화초장’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데 복창이 터지게 답답해난 놀부는 ‘장’자 돌림이 붙은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련상하며 소리를 한다. 의 주요 대목중 하나로 꼽히는 화초장타령은 3시간 남짓한 판소리 완창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데 대사가 기막히게 희극적이다. 아래 그 중 한대목을 들어보기로 한다.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오늘 걸음은 잘 걸었다/대장부 한걸음에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화초장 화초장 화초장···/초장화 초장하 초장화 하나를 얻었···/초장장 장장화 화화장/화화장 초초장 된된장/엇다 이것이 무엇인고···/고초장 된장 간장 떼장 아이고 아니로구나···/방장 천장 송장 접장··· 아이고 이것도 아니로구나···/내가 답답하여 못살겠구나/우리 집으로 건너가서/우리 마누라한테 물어보자···”
과거 조선족사회에서 안방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가구로서의 장은 이젠 자취를 감춘 지도 퍽 오래다. 다행히도 박물관 사업일군들이 노력하여 수집해들인 보람으로 연변박물관이나 룡정조선족민속박물관에 가면 그 아름답고 정교한 모습을 찾아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생활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