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던가 나는 잠을 뺏기기 시작했다. 아마 2001년께였을 거다. 나는 그때 즈음 신생사물로 태여난, 대학 부근에 속속 생겨나는
PC방에서 밤을 골딱 새며 게임을 놀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내 대학시절 ‘전반생’ 2년의 여가시간은 운동장에서 배구를 치는 것으로 바람직하게
장식했다면 ‘후반생’ 2년의 여가시간은 PC방에서 밤을 새는 것으로 점철됐다.
PC방이 생기면서부터 기숙사 운동장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매일 배구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났던 배구매니아들도 우르르 PC방으로 몰려가기
시작해다. 그리고 내 저녁잠도 뭉텅뭉텅 뜯겨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로 일할 때 낮시간을 쓰기 아까워 내 작업시간은 늘 저녁 9시 이후로 되였다. 9시에 컴퓨터 앞에 마주앉으면 12시가
돼서야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고 새벽이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내 잠을 통채로 반납하고 이튿날 보상을 받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밤을 패도 피곤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자 상황이 달라졌다. 저녁에 수유 때문에 2~3시간에 한번씩 깨나고 나면 잔 것 같지 않았다. ‘아기를 낳으면 3년간
흐리멍텅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런데 그것이 3년에서 끝나지 않았다. 잠을 갉아먹는 새로운 적,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이다.
직장일에, 육아에 치이다 보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은 저녁밖에 없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 눈을 집어뜯으며 스마트폰을 갖고 놀았다. 잠은
언제나 부족했고 스마트폰은 놀아도 놀아도 모자랐다. 아침에는 다섯시 반에 일어나야 했으니까 어디 가서 잠을 보상받을 데도 없었다.
학습과 사업 때문에 밤을 새는 것은 ‘핍박성 밤샘’이고 나처럼 이렇게 시간이 아까워 눈을 집어뜯으며 밤을 새는 것은 ‘보복성 밤샘’이라고
한다.
뺏긴 시간이 아까워, 뺏긴 자유가 아까워, 낮에 썼던 굴레가 벗겨지면 반항이라도 하듯이, 래일 아침 다시 굴레를 쓰기 전에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주위에 물어보면 온통 나와 비슷한 처경의 부엉이족들이다. ‘12시에 잠들기’ 위챗그룹도 있다고 한다. 12시가 되면 ‘나 잔다.’ 한마디
남기고 휴대폰을 끄는 것. 처음에 가입한 사람은 많았지만 3주도 못 가 유령그룹이 돼버렸다. 청춘들의 밤샘은 습관이고 중독인 것일가. 분명 독인
것을 알지만 끊지 못한다.
하물며 습근평 총서기마저 일찍 2015년에 중앙당교 현위 서기 연수반에서 자신의 밤샘경험을 얘기하며 ‘청춘들이여, 밤을 새지 말라.’고
호소했거늘.
총서기는 일찍 일욕심 때문에 밤을 패가면서 일을 했는데 자주 앓았다면서 “실타래가 엉켜있어도 바늘구멍을 지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오리이다. 채 하지 못한 일은 래일 다시 하면 된다.”고 무리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밤샘이 갉아먹는 것은 내 시력, 내 건강, 내 정신 상태이다. 재미를 누리는 대가치고는 너무 엄청나다. 빼앗긴 시간에 대한 ‘보복’이라고
하기엔 너무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인 것 같다.하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