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화씨 영어는 기본 로어 일어도
복장코디는 배워서 한다기보다 하면서 배운다고 하는 현미화사장(오른쪽).
번역관이 되고싶었던 어린시절의 꿈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지만 그 시절의 손때 묻은 색바랜 누런 영어사전은 오늘도 그녀의 옆에 있다. 성보2층 262호 《빨간고추》매장의 현미화씨는(39세) 오늘은 옷가게 사장으로 현실을 살아가고있지만 늘 배움으로 자신을 충실히 하려는 의지만은 꺾지 않고있다.
나래꺾인 꿈의 파랑새
고중을 졸업하면서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으로 갈수 없었던 그는 스무살을 잡던 해 연길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집안 살림을 보탰다. 하지만 나래꺾인 꿈의 파랑새는 늘 마음속에서 깃을 치군 하여 여가에 영어책들을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그러던 1993년부터 연변농학원 영어학부에 자비생으로 붙어 외국전문교사들의 강의를 직접 받으며 영어지식을 배웠고 이듬해에는 또 자비로 동북사범대학 영어학부에 입학하여 자습으로 실력을 키워나가면서 영어교사자격증을 땄다. 그뒤로 1997년부터 재능영어교사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결혼을 하면서 대경에서 생활하게 된 그는 역시 유치원영어교사로 사업하였다. 당시 걸음발을 타기 시작한 어린 딸애에게 우리 민족 언어문자 가르치기에 왼심을 썼다. 워낙 화룡태생인 그들부부는 타지방에 나가 생활하면서 민족적인 모든것이 그토록 소중하고 그리웠던것이다. 《조선족이 조선말을 모를가봐 은근히 걱정되였어요.그런데 하루는 딸애가 조선말 배우기 싫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