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거덕삐거덕거리며

어디론가 싱겁게 도망치는 마을

날에 날마다 작별을 연습하며

눈 먼 외로움에 지쳐가는 마을


남쪽바람 스치운 삼돌이의 얼굴에는

돈기름이 두텁게 발리워

눈부신 자존심을 번뜩이는데


마을에 남아 고독과 이웃하던 순돌이는

덜컥 한방을 맞아 찢어진 자존심을 절뚝거린다


백년의 세월, 백년의 피땀

허허로운 꿈으로 펼쳐진 땅이

주인 잃고 깊은 신음소리

토해내기에 나그네의 고향길은

실향의 설음이, 미친 그리움이 휘몰아친다


낭끝에 대롱 걸린 소나무처럼

한오리, 굳센 운명을 거머쥔채

행여 돌아올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행복하게 무너지는 마을


고향은 눈물을 먹고 산다




사향


꿈마다 가는 곳

그곳이 어딘가?

열두 강 굽이 돌아

섶다리 건너 외진 마을


그 작은 마을이

이리도 잔인하게

내 꿈을 물고 늘어지다니!


그 질긴 오솔길이

내 마음 꽁꽁 묶어

가난한 보리밭에 심어놓다니!


오늘밤도 오동나무 둥근달이

내 꿈에 뜨려나보다




폭설


하늘의 이발

농부 가슴 물어뜯다

자꾸만 씹는 소리 들리다


펑펑…

누군가의 꿈이 무너지다


죽은 언어의 비늘들이

해묵은 슬픔우에

하얗게 하얗게

내리여 쌓이다




봄


봄이 절뚝거리며 내앞에 나타났습니다

머리칼은 쑥대밭이고

얼굴에는 흑운 가득 덮였습니다

세수도 아니한채

눈곱 맺힌 눈으로


봄이 기침을 쿨룩거리며 내앞에 나타났습니다

눈 먼 황사와 입 큰 스모그가

그의 청춘을 삼켰나봅니다


격정과 시정(詩情)에 넘쳐

아름답던 홍안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실어증에 걸린 늙수그레한 몸이

맥 풀린 눈빛으로

허둥지둥 오고가는

하얀 구름들을 바라봅니다

……


무너진 초가

찢어진 언덕

아, 꽃이 없는 마을에도 봄은 오는가!


/김학송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