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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직업소개소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06.03.11일 15:11
청도 한겨레 지역으로 가다(1)



편집자의 말: 본지는 이번기부터 제 2고향으로 건설되는 연해지역 청도에서의 한겨레사회를 집중조명하기로 한다. 날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격변기에 처해있기도 한 청도 한겨레사회의 이야기들이 이제 새 전설로 기억될것이다. 독자들의 많은 애독과 관심을 기대한다.

리촌 빈하로 상업거리에 한집 건너 세워져있는 조선족직업소개소 간판들.


한중수교후 가물에 콩나듯 하던 한국기업들의 청도진출로 직장을 구하게 되였던 두세명 조선족들의 입소문을 타고 또 청도에 가면 돈벌수 있다는 그것이 청신호가 되여 동북 조선족들이 띄염띄염 옷짐과 소지품을 넣은 가방을 들고 끌며 찾아오게 되였다. 그후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인건비도 엄청 싼 청도로 한국기업들의 움직임이 점차 거세짐에 따라 통역 및 관리자, 사무실 직원으로 조선족들이 취직하러 대거 진군하게 되였다. 따라서 직업소개소를 돈벌이 좋은 중개항목으로 여긴 조선족들이 청도 구석구석 직업소개소를 차리게 되였다. 그 편력에 의해 주위에는 조선족, 한국인 민박이 생겨나고 부동산, 음식업 등 다른 시설물들이 촘촘히 늘어나게 되여 점차 동네를 형성하게 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조선족들의 대 이동에 가장 큰 교량역할을 하여왔던 청도조선족직업소개소가 10여년이 지난 오늘날은 과연 어떤가?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소개소의 가교로 많은 로동력 구직


가장 최초의 직업소개소는 1992년 중한수교후 1년만에 청도 신가장 단층집에 꾸며진 《김홍소개소》, 얼마후 성이 리씨라는 남편을 둔 50여세의 아줌마가 인수하면서《치부소개소》라 바뀌였다. 그때 당시만 해도 구인측인 한국회사에서도 소개비를 내고 구직하는 조선족들도 소개비를 내게 퓻눼? 그때는 구직하러 청도에 나온 조선족들이 극히 드물어 거의 10명을 소개하면 9명이 합격되였다고 한다. 《치부소개소》 또한 영업과 관리를 잘해 말 그대로 치부의 길로 질주했다고 한다. 이것이 조선족들에게 직업소개소를 꾸리면 돈을 벌수 있다는 새 인식을 심어주는 선줄이 되였다. 허술한 방 하나, 간단히 사무용 책상우에 놓은 전화 한통이면 시작할수 있는 직업소개소가 좋은 돈벌이 항목으로 꼽히게 된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되였다. 하여 청도에 조선족들이 꾸리는 직업소개소가 새로운 써비스업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였다. 직업소개소가 하나둘 늘어나 일여덟개가 되였고 조선족들은 점차 신가장이라는 곳을 알게 되였으며 신가장 골목거리에 조선족들의 얼굴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97년 신가장 단층집들이 파가이주에 들면서 조선족들은 값이 싸고 외벽진 맥도촌과 리촌으로 소개소들을 옮기게 되였다. 특히 맥도촌은 신가장동네하고는 멀지 않아 전화번호를 그대로 옮길수 있어 그쪽으로 소개소를 옮기는 사례가 많았다.


맥도에 옮겨지고 새로 생긴 소개소들은 《한화소개소》, 《열심소개소》, 《천한소개소》, 《일월성소개소》 등 30여개가 오목조목 늘어서게 되였다. 따라서 구직하러 온 조선족들은 물론 민박집, 조선족 음식점들도 늘어나 맥도는 갑자기 조선족동네를 형성하게 되였다. 한때 맥도 골목마다에는 벽에다 직업소개소를 알리기 위한 홍보로 락서를 가득해놓아 가두위원회에서는 벌금을 안기는 등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리촌 향양 2지로를 중심으로 《리촌소개소》, 《두루미소개소》, 《영생소개소》, 《신세계소개소》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되였다. 그후 이촌 빈하로로 《영생소개소》가 옮겨오게 되고 맥도촌도 파가이주에 들게 되면서 번지가 없던 우리 조선족소개소들은 문을 닫거나 다시 빈하로로 옮겨와 소개소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새로 생겨난 소개소들까지 저마다의 민족특색이 짙은 간판을 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도라지소개소》, 《할빈소개소》, 《문명소개소》,《인연소개소》, 《송화강소개소》 등 가장 많은 때에는 3층에는 25개, 2층에는 26개가 설립될 때도 있었다.또 직업소개를 위주로 하면서 민박소개, 려행가이드소개, 부동산소개, 혼인소개도 취급했다.주위에 있던 서산, 동남신원, 백통화원 등 아빠트들에 널려있던 소개소들도 그래도 소개소는 구직자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에 그리고 잘 알려진 곳에 간판을 걸어야 한다는 판단하에 라이벌경쟁으로 빈하로에 가입하게 된것. 또 1층에는 거개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슈퍼와 옷가게, 특산품가게, 식당 등이 즐비하게 늘어나면서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상업거리로 생기발랄한 조화를 이루었다.

성양구에 조선족소개소들이 설립된 시간은 길지 않다. 한국기업들이 급증하게 되면서 성양구에도 조선족들이 상주하기 시작했고 가장 최초로 설립된 소개소는 1999년도의 《양천정보쎈터》, 그 이듬해인 2000년도에 설립된 《민족소개소》, 그 뒤를 따라 태양성을 원점으로 하여 화성로 2소구, 4소구,잉복상소구, 신성시화원에서는 거의 20여개의 소개소가 사무를 보게 되였다. 성양구 소개소들은 민박과 부동산업무를 겸해보는 특점도 있었다.


지금까지 청도의 크고작은 소개소가 90여집으로 집계되는데 잘 되는 소개소들은 한달에 평균 50명이상씩 구직시켜주었다고하니 매 소개소를 통해 한달에 20~30여명씩의 구직률이 나온다고 해도 엄청난 계산이다. 헤아릴수 없이 수많은 우리 조선족들이 직업소개소들을 통해 청도란 낯선 땅에 뿌리를 박고 잘살수 있게 된것이다. 성이 조씨인 어느 한국기업의 조선족 관리자는 7년전에 무직업이였고 사회에서 말썽만 일으키던 청년이였는데 소개소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되였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엄격하면서도 착한 한국인 사장의 가르침과 배려속에 관리자로 승급했을뿐만 아니라 한 회사의 처녀와 결혼까지 하게 되였다고 감개무량하게 말하고있다.

가장 오랜 직업 소개소들이 성공한다


《열심소개소》는 간판그대로 직업을 찾으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는 소개소이다. 또 소개소운영 9년째여서 청도 조선족 소개소들 가운데서 가장 오랜 직업소개소라고 할수 있다. 리봉사장은 《구인, 구직 쌍방의 요구가 얼마나 매끄럽고 까다롭다구요. 전 90%이상의 확실한 보장이 없이는 절대 면접에 응해주거나 보내지 않았습니다.》하고 운영 노하우를 이야기 한다. 그 신용과 믿음이 입소문을 타고 신가장에서 1년, 맥도에서 5년, 리촌에서 3년까지 소개소를 이끌고 오게 한것이다. 맥도에서 사무를 볼 때도 《열심소개소》 문전은 설 련휴가 끝나고 구직하러 오는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또 소개소 위치는 바뀌우군 했지만 《열심》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아 지금도 매일 수십명의 방문으로 그치질 않고있다.


영생인재정보쎈터도 올해까지 설립 8년에 나는 소개소이다. 올해 34살에 나는 김일룡사장은 가장 젊은 나이로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그는 《천한소개소》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자체의 사업을 시작했고 구직자들을 위해 각 회사마다 방문해서 진실여부를 가늠하는 등 확실한 정보망을 통해 점차 거래처들의 환영을 받았다. 2000년도에는 컴퓨터학원을 꾸리기도 했으며 직원 3명을 모집해 전문 남자, 녀자 구직자를 따로 나누어 상담하기도 했고 봉고차를 사서 구직자들을 회사에 직접 보내주기도 했다.

2004년도에는 조선족직업소개소협회 회장직도 담당한적 있다.지금도 그는 사무가 넘쳐나 《일월성 소개소》 유학범사장과 합작하고있다.

《양천정보쎈터》는 올해까지 7년철을 잡은 소개소이다. 안인옥녀성은 시누이인 리춘월녀성과 함께 성양구에서 《천리향》이라는 작은 음식점을 경영해오다가 조선족 녀복무원을 구하기는 어렵고 일은 바쁘고 하니까 내놓고 다른 항목을 구해보기로 작심했다. 마침 그때 어떤 조선족소개소들은 직원을 요구하는가 물어보며 직접 음식점에 찾아오기도 했다. 두 녀성은 맥도에 있는 소개소들을 돌아보고나서 소개소를 시작하던 해가 1998년 늦가을이였다. 성양구가 점차 한국인과 조선족 중심지가 되겠다는 판단이 적중해 《양천정보쎈터》는 서자마자 호황을 맞이했다. 한국회사가 하나둘 성양구 시교에 자리잡게 되자 따라서 조선족들도 성양구에 정착해갔고 그것이 소개소의 래원이 되여갔던것이다.

성양구에서 가장 오래며 잉복상소구에 사무실을 둔 《민족소개소》의 김태소사장은 2000년도에 작은 음식점을 차릴 예산으로 청도에 나왔다. 그는 직업소개소들을 돌며 시장조사도 할겸 음식점을 차릴 장소를 찾던 와중 녀성들도 직업소개소들을 차려서 돈을 버는것을 보았다. 내라고 왜 안될가? 이런 생각으로 김태소사장도 《민족소개소》를 꾸리게 되였다. 그는 각 회사마다 소개업정보를 전화로 알리는 한편 잡지와 신문에도 련속적으로 광고를 냈다. 워낙 품성이 정직한데다 적극적으로 소개소를 알리고 구직자들을 책임지고 보내주게 되자 점차 흥성하게 되였다.

최근 직업소개소 비수기의 원인


몇해전까지만 해도 구직자와 구인측사이에 크나큰 가교역할을 해왔던 조선족직업소개소들이 점차 유명무실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소개소들이 경험없이 새로 문을 열었다가는 돈벌이가 안된다며 얼마 안되여 문을 닫군 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나타났다가 새벽이슬처럼 사라져간 소개소들. 소규모, 소자본으로 시작할수 있기 때문에 실패해도 밑질건 없다는 생각에서 기인된것인지도 모른다.

올해 들어와서 오랜 직업소개소들까지 예전보다 회사측 구인정보량도 줄었거니와 특히는 구직자들이 많이 줄었다고 말하고있다. 2,3년전까지만 해도 구정련후면 하루에만도 구직비를 몇천원씩 벌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성수기라는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4년여동안 소개소를 운영해왔고 지금은 혼인전문정보쎈터를 운영하고있는 백설화씨는 현재 60%의 직업소개소가 경영이 잘 안된다고 소개했다. 또 모 소개소의 사장도 이대로 지속된다면 더욱 소개소들사이에 악성경쟁이 일어나지 않겠냐 하는 우려도 표했다.례를 들면 가격경쟁을 하고있는데 잘 안된다고 점점 소개비도 낮추면 결국 파멸의 길로 가지 않겠냐는 뜻이였다.


그 원인을 구직자와 구인측을 통해서 몇가지로 찾아보았다. 우선 무료구직사이트가 청도에만 서너개 정도 늘어났다. 컴퓨터보급률이 높아지고 무료 구직사이트로 고객들에게 편리를 도모하면서 점차 홍보효과를 시도한 인터넷 포탈 사이트가 급증하면서 소개소들의 값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터넷포탈사이트가 바로 《호산동》이라는 한국인경영사이트다. 《호산동》사이트는 설립초기 2001년까지만 해도 하루 취직을 희망하는 구직자가 최고 몇십개밖에 안되였다. 그후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무료 구인,구직접속자가 최고로 매일 600여명선에서 올해 설련휴가 지나고나서부터는 최고로 천명을 벗어나기도 했다.특히 한국회사측에서는 사무실, 부서관리 직원으로 젊은 녀자를 채용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마침 컴퓨터를 다루는 층은 대부분 젊은 녀자들의 리용률이 가장 높은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두번째는 청도 진출 한국회사들 거의 반수가 불경기상태다. 물가는 계속 올라가고 인력비는 올라가지 않으니 구직자들이 만족해하지 않는 경우다. 하여 될수록 한족인력을 쓰는 회사가 많다.

세번째는 구인측인 한국회사들의 선호도가 낮아지고 소개소에 대한 사회에서의 이미지가 실추되고있다.구직자들의 면접비라도 받아먹을 타산으로 졸업, 경력 등을 현실과는 달리 잔뜩 부풀려서 소개해보내오는것이기때문이다. 소개소운영자들이 무료구직포탈사이트 정보를 그대로 베껴서 써먹기도 하다보니 때지난 정보가 되여 시비가 붙기도 한다. 그외에도 어떤 한국인들이 소개비를 많이 주게 되면서 서슴없이 애인 거간군이 되다가 말썽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 하나의 소개소때문에 전반 이미지가 실추되고있는것이다. 또 소개소들이 많아지면서 각 곳에서 찾아오는 구직자들이 민박을 잡고 취직을 기다리는 동안 술 마시고 행패까지 부리는 등 사회상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점도 들수 있다.


네번째는 조선족인력에 대한 한족젊은이들의 도전이다. 그들은 한국인 회사에 가면 돈번다는것을 알고 열심히 한국어공부를 하고있다. 청도에는 전문대학인 해양대학, 청도대학외에도 그들을 위한 한국어학원이 몇백개가 된다. 또 한족들의 문화정도가 조선족보다 높아져가고있어 한국회사에서 많이 기술관리인재로 뽑아가고있다.

직업소개소 불경기가 남기는 사색


우리 조선족들이 이미 농촌에서 벌방에로, 도시에서 연해지구로 이동하는것은 기성사실로 되여있다. 근 10여만명을 헤아리는 조선족들이 청도를 중심으로 각 위성도시들에서 열심히 근무하고있고 또 많은 조선족들이 꿈을 안고 청도로 향하고있다.

하지만 현재 청도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였다. 특히 남자들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더욱 어렵게 되였다. 기술이 전무하거나 학력이 없거나 경험이 없으면 완전히 불합격품으로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녀자들은 어디든지 쓰인다. 젊은 녀자들은사무직으로 가능하며 컴퓨터를 알거나 공부 더 한 애들은 월급도 더 많이 받을수 있으며 아줌마들은 회사 식모로, 나이 좀 더 많은 아줌마들은 가정부나 보모로도 가능하다.

한때 리창구 로동국의 간섭으로 2004년 리촌 빈하로 소개소들이 문을 닫을번 한적도 있다. 하여 한집 건너 사무를 보고있던 리촌소개소들은 련합하여 소개소협회를 창설하였으며 한국상회의 인증서까지 따내여 끝내 로동국의 관을 넘었다. 소개비를 받는것은 어데까지나 정당하며 누구를 기편하는것이 아니였던것이다. 그들도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어느 업종과 같은 영업역할을 하고있는것이다. 그렇게 단결의 힘은 큰데도 소개소협회는 계속하여 모범적행사를 펼치지 못하였으며 뭉치지 못한채 그것도 반년만에 해산된것이 참 유감스럽다. 소개소가 불황을 이기려면 우선 그들 자체의 하나하나가 모여서 큰 힘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가. 조선족직업소개소들은 인터넷보다 직접 만나서 미팅할수 있는 등 나름대로의 우세를 잘 살릴수가 있으며 한국회사마다 방문하여 인맥관계도 쌓고 실제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등 좋은 방법이 강구되여야 할듯 하다.


청도가 낯설듯 청도의 한국회사들도 낯설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소개소가 구인측과 구직측을 서로 맞춰내기가 힘들듯 발전하는 이 사회의 발걸음에 가락을 맞춰나가야 할것이다. 구인측과 구직측의 조화로운 접목에 오늘까지도 꾸준히 일해오고있는 직업소개소들이 오지랖을 더 넓혀야 할 때가 온것 같다. 더 색다른 써비스에 주력하고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기에 땀 흘리며 이미지 확보에도 박차를 가한다면 도전에서 승전고를 올리리라 생각된다.

한국경제시장의 불경기를 뚫고 중국쪽으로 속속 진출하고있는 한국회사들을 위해 마련해야 하는것은 아직도 중국의 싼 인건비이며 더우기는 우리 조선족들의 직업해결이 조선족직업소개소들의 급선무다. 즉 그래야만 조선족직업소개소들의 활로도 열리는것이다.

조선족소개소들의 교량역할은 아직도 생명력을 무진장 연장할수가 있다. 지난해부터 리촌에서 소개소를 임대처리하는 반면 성양구에서는 새로 몇개 생겨나고있다. 향후 성양구에 점점 더 많이 집중되는 한국회사들을 따라 조선족들도 끊임없이 늘어나 장차 거대한 코리아타운으로 재빨리 성장할 모습이며 따라서 리촌직업소개소들도 차츰 성양으로 옮겨질 전망이기도 하다. 지금도 조선족직업소개소들을 수요하고 등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을 믿고 동북에서 많은 조선족들이 가출하고있다.

현재 어떤 계절병을 앓고있는 사람들처럼 직업소개소들은 새로운 전환기에 처해있다. 지혜롭게 환경변화에 대처하고 새롭게 변신하는 자가 살아남는다고 한다. 이제 끝은 보이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의 대응책이 어떤것인지 이제 흐르는 세월에 맡길 탓이기도 하지만...

편집/기자: [ 류일복 특파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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