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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식 사이도 선을 그어야/이규섭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4.06일 13:57

이규섭 한국시인

"이제는 그동안 소홀했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생각이다." 지난해 연말 언론기관의 장(長)을 지내다 퇴임한 선배의 다짐이다. 이 말을 들은 백수고참들은 "가장의 위상을 확보하기가 만만찮을 텐데 꿈도 야무지다" "백수가장의 비애를 겪어보지 않고는 가장을 논하지 말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일본 은퇴남편들은 인터넷동호회 등 모임을 만들어 '마누라 모시기 비결'을 배우는 세상에 가장의 권위를 찾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냐고 입을 모았다.

  퇴직 이후 식사모임 때 달라진 것은 더치페이로 부담이 줄어든 점이다. 식사를 끝내고 구두끈을 매며 미적거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하지만 백수기간이 길어지면서 더치페이 식사 때도 슬슬 꽁무니를 빼거나 빠지는 사람이 생긴다. 용돈 수준의 국민연금에 경제권마저 아내에게 빼앗긴 백수가 식사비조차 내기 어려운 처지로 전락한 탓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였고,아버지의 말씀엔 권위가 따랐다. 젊은 시절 힘든 일 참아내며 어렵게 살아온 퇴직 아버지들은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자식들에게는 짐이 되는 '찬밥' 신세가 돼버렸다.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가정의 달이 더 서글픈 것이 황혼인생의 비애다.

  그나마 어버이날 가슴에 카네이션을 단 노인은 가정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증표와 마찬가지다. 증가추세인 황혼이혼을 당하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처지다. 황혼이혼의 사연도 가지가지다. 상대방의 성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성격차이'가 가장 많다. 눈만 뜨면 마주보게 되니 상대방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노출되기 마련이다. 오순도순 대화하기보다 티격태격하기 일쑤다. '은퇴남편증후군'에 시달리다 못한 나이든 여성들이 잊고 살았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황혼이혼 이후는 과연 행복할까? 처음엔 후련하다고 생각했으나 갈수록 허전하고 외로워 후회하게 된다고 한다. '효자 손'에 의존하여 등을 긁는 삶은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던 일본이 최근 주춤해진 것은 이혼 후 분할연금을 받기보다 은퇴남편을 길들여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사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여성 수필가 오가와 유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정년 남편 길들이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니 황혼남편의 삶은 이래저래 고달프다는 반증이다.

  황혼세대들은 부모 봉양을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기에 자식들도 그러리라고 믿었던 게 오산이다. '보험'을 들 듯 자식을 위해 올인한 삶이 부메랑이 되어 버렸다. 자식에게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가르치기 보다 남보다 잘되는 것을 요구하다 보니 버릇이 없어지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게 자랐다. 제 살을 깎듯 자식들을 애지중지 키웠으나 자식들은 늘 혼자 자란 듯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망각하기 일쑤다. 결혼하면 제 가족 돌보기에 바빠 부모는 뒷전이다. 부모를 모시려는 자식도 드물지만, 오히려 부모에게 얹혀 사는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세태다. 그나마 재산이 있으면 분배에 더 눈독을 들인다.

  자식들을 왕자나 공주 떠받들듯 과잉보호하며 키우다 보니 자립심은 실종되고 '마마보이'로 만들었다. 아들이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학교에 찾아가 여교사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하는 빗나간 자식사랑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맞아도 참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4050 낀세대'들도 직장에서는 밀려날까 두렵고,아내 앞에서는 기죽고,자녀교육엔 소외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으니 그들의 황혼인생은 더 걱정스럽다. 노후에 '황혼의 엘레지'나 부르고 '아 옛날이여'를 곱씹으며 쓸쓸하고 힘겹게 살지 않으려면 '죽도 선을 그어 먹으라'는 속담처럼 부모 자식 간에도 분명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너는 너의 삶을 살아라"하고 자립심을 키워주고,자식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규섭 한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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