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명절 춘제(春節·설)가 1주일도 안 남았지만 쉬쥔(32)은 아직 고향에 내려갈지 정하지 못했다. 베이징에서 사무직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쉬쥔은 “아직 결혼도 못했고 내 직업이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니다”면서 “고향에 가면 ‘결혼 왜 안 하느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줄 선물도 사야 하는데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중국에서는 춘윈(春運·춘제기간 특별운송 업무)이 시작돼 지난 10일까지 이미 4억명 이상이 고향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쉬쥔처럼 고향 가기가 두려워 고향행 티켓 사기를 머뭇거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쿵구이족’(恐歸族·귀성을 두려워하는 족속)으로 부르고 있다.
13일 중국경제망에 따르면 최근 한 포털사이트의 여론조사 결과, 77.2%가 주변에 쿵구이족이 있다고 답했고 41.1%는 스스로를 쿵구이족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고향 가기가 무서운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주변에서 결혼을 빨리 하라는 성화가 제일 괴롭다. 2011년 대학 졸업 후 매번 춘제에 맞춰 고향을 찾았다는 류둥은 올해만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고향 갈 때마다 부모님은 물론 고모와 이모, 삼촌들까지 나서서 ‘나이도 적지 않은데 색시 감은 있느냐’고 재촉을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원치 않는 맞선까지 춘제 기간 소화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돈도 문제다. 부모는 물론 일가친척들에게 선물을 돌려야 하고 조카들의 세뱃돈도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춘제를 즈음해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축의금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국영기업에서 월급 4000위안(약 70만원)가량을 받는다는 류웨이젠은 “며칠 안 되는 춘제 기간이지만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2개월치 월급으로도 부족하다”면서 “그래도 체면 때문에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족과 친척이 모이는 것은 물론 춘제에 맞춰 각종 동문회가 열리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상하이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후샤오칭은 “두 형들이 큰 집을 사고 좋은 차를 굴린다고 하는데 나는 겨우 월급 2500위안(약 43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 처지를 알까봐 걱정돼 올해는 고향에 안 간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고향을 가기 위해 교통편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고향행을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쿵구이족의 확산을 전통적 가치관과 신세대 가치관의 충돌로 해석하고 있다. 화둥사범대 류치 교수는 “부모 세대들은 가족 간의 유대 등 전통적 가치관을 중시하고 자식 세대들이 따라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신세대들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베이징대 추쩌치 교수는 “쿵구이족들은 무엇을 성공으로 정의할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면서 “자신의 성취와 가족의 유대감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