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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인류 최대의 적은 박쥐?

[기타] | 발행시간: 2015.06.19일 10:20
[동아일보]

관박쥐 → 사스, 과일박쥐 → 에볼라, 이집트무덤박쥐 → 메르스 유발



2000년대 유행한 대부분의 인간 감염병은 박쥐에게서 전파된 바이러스가 원흉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전염시킨 이집트무덤박쥐(왼쪽 사진)와 2002∼2003년 중국에서 창궐한 사스 바이러스를 퍼뜨린 관박쥐. 조너선 엡스타인·장리뱌오 제공


관박쥐와 2003년 중국을 덮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과일박쥐와 지난해 1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에볼라, 그리고 이집트무덤박쥐와 현재 한국을 ‘패닉’ 상태에 빠뜨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까지. 21세기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 바이러스는 공교롭게도 모두 박쥐에게서 유래했다. 박쥐는 어쩌다 바이러스의 온상이 됐을까.

○ 인수공통 바이러스 평균 1.79종 보유… 바이러스 최다 보유 동물

콜린 웹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교수팀은 박쥐가 보유한 바이러스를 분석해 2013년 영국 ‘왕립학회보 B’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박쥐에게는 총 137종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61종으로 나타났다. 종별 평균으로 따지면 박쥐는 2.71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으며, 이 중 인간에게 옮길 수 있는 바이러스는 평균 1.79종이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체내에 바이러스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인간에게 쉽게 전염병을 퍼뜨린다고 알려진 쥐보다도 많다. 쥐를 포함한 설치류는 평균 2.48종의 바이러스를 갖고 있으며, 이 가운데 1.48종이 인수공통 바이러스다.

연구진은 박쥐가 ‘바이러스 최다 보유 동물’이 된 이유로 생활 방식을 지목했다. 박쥐는 동굴이나 폐광 등을 보금자리로 삼아 한 장소에 여러 종이 떼로 모여 산다. 이 때문에 한 마리만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무리 속으로 급속히 전파된다.



○ 체온 38∼41도 유지…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보균자’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병을 앓거나 죽는 경우가 잘 없다. 박쥐가 바이러스를 가진 채 생존할 수 있는 ‘좋은 보균자’라는 뜻이다. 박쥐 전문가인 박영철 강원대 산림환경보호학과 교수는 “박쥐는 다른 포유류와는 면역체계가 조금 다르다”면서 “박쥐는 바이러스의 활동으로 DNA가 손상될 것에 대비해 이를 막거나, 망가진 DNA를 복구하는 유전자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박쥐에게서는 사스 바이러스와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가 발견됐고, 세포 안에서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 특별한 시스템도 확인됐다. 박쥐가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기르는 형태로 진화하면서 바이러스가 침투하더라도 인간처럼 감염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숙주가 된 것이다.

박쥐의 비행 능력도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돕는 비결로 꼽힌다. 포유류 중에서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박쥐는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체내 대사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 이 때문에 비행 시 체온은 38∼41도로 높게 유지된다. 높은 체온은 박쥐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 국내 박쥐 24종 서식… 개체 수 적어 직접 감염 가능성 낮아

박쥐에게서 바이러스를 모두 제거해 인간 감염을 원천 봉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박쥐와의 접촉을 막아 감염 경로를 차단하는 게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산업화와 개발 열풍에 박쥐의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박쥐가 인간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니파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유도 박쥐의 서식지 파괴가 이유였다. 원래 숲에서 과일을 먹고 살던 박쥐가 기후변화로 서식지를 잃게 되자 양돈 농장 주변 과일나무로 몰려들었고, 이때 박쥐가 갖고 있던 니파 바이러스가 돼지를 거쳐 사람에게 번졌다. 당시 니파 바이러스에 감염돼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국내에도 동굴 안이나 나무 구멍, 오래된 다리 아래 등 천적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은밀한 곳에 박쥐가 24종 정도 살고 있다. 국내에 서식하는 박쥐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은 없을까. 박 교수는 “국내 서식 박쥐도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공식 조사 결과는 없다”면서 “박쥐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되려면 박쥐에 쉽게 노출돼야 하는데, 국내에는 박쥐 개체 수가 충분하지 않아 직접 감염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vam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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