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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주부들,나도 반란하고 싶다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6.06.19일 22:48
장장 10년 이상 아내이자 엄마로만 살던 이들에게 어느 날 '꿈틀'하며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글을 쓰고 싶었고,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었고, 비누공예를 하고 싶었다.

도전했고, 이뤘다. 10년 차 주부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전업주부에서 등단 수필가로, 김순희 씨

팬 대신 펜 잡은 엄마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10년간 숫자만 보며 살았다. 그러다 외환위기로 명예퇴직.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선 그래도 좋은 아내인데, 사회에선 쓸모가 없나 보다 싶었다. 아이가 생겼다. 전업주부 생활이 시작됐다. 열두 해가 지났다. 이젠 복귀하고 싶어도 일을 다 까먹었다. 엎친 데 덮친 격. 계단에서 발을 삐끗해 양쪽 무릎을 다쳤다. 목발 생활을 하던 때. 아이가 들고 온 작은 전단지 하나가 계기가 됐다.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등단까지 했다. 문단 구조도 모른 채 글을 배운 지 3년 만의 일이다.



/신승희

12년간 전업주부 생활

순희 씨(49)의 고향은 영월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되고 싶단 생각은 추호도 안 했다. 다만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1987년께 결혼해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회계경리 업무를 보며 신혼생활을 보냈다. 이후 두 아이가 생겼고, 12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육아에 전념하던 지난 10여 년의 삶?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다. 언젠가 다시 회사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달력을 보며 말만 할 뿐이었다. 벌써 5년이 흘렀네, 10년이 흘렀네, 이제는 가물가물하구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양쪽 무릎 연골이 찢어져 집에만 있던 시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지 싶다.

“아이가 학교에서 전단지 하나를 들고 왔더라고요.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한번 가볼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좋은 책을 선별할 눈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집에만 있어 찌뿌드드하던 차였다. 바람도 쐴 겸, 하며 등록을 했다. 그런데 웬걸.

“진짜 문예창작을 해야 했어요. 숙제도 너무 많고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써본 적이 있어야죠. 그저 낙서 수준으로 끄적이기만 했었지, 문장구조 자체를 몰랐어요.”

선생님은 호됐다. 고군분투해서 숙제를 해 가면, 호통이 돌아왔다. “순희 씨! 문단이라는 개념 몰라요? 아무 데서나 들여 쓰고 끊어 쓰고, 이러면 안 됩니다!” 자꾸만 혼이 나니, 속으론 항상 내일 그만둬야지 했다. 그즈음 선생님의 한마디. “여러분들, 이런 데 교육 받으러 와서 두어 달 배워놓고 어디 가서 글쓰기 배웠단 소리 하면 안 됩니다~.”

속내를 들킨 것 같은 느낌. 그만두질 못하겠더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녔다. 그렇게 3학기를 열심히 혼나고, 열심히 숙제하다 보니 차츰 재미가 들렸다. 어느 날 짧은 수필을 더듬더듬 써 갔더니 선생님이 말했다. 글을 참 잘 썼다고.

책 많이 읽었던 게 도움, 등단까지 3년

그때부터 물꼬가 트였다. 하나둘 그의 글을 본 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같은 해인 지난 2011년 인천시민문예대전 수필부문에 응시를 해봤다.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상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성화였다. 문학회에 들어가라, 등단을 하라고.

“굴포문학회라고 있어요. 올해로 22주년이 됐고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계시는 곳이죠. 들어가 보니까 제가 막내예요. 알 수 없는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 세대가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요. 그래서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3년 후. 인천에서 발행하는 계간지인 <학산문학>에 원고를 냈다. ‘낯설게 보기’라는 글이었다. 그때만 해도 설마, 하는 생각이었다. 1년에 단 한 명만을 뽑는다는데. 설마가 사람 잡았다. 등단이 됐다. 문단구조부터 배워 3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순희 씨는 그간 써 내려간 글을 엮어 작년 10월, 산문집 <순희야, 순희야>를 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주부들에게 그는 “몰라서 시작을 못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고 싶다면 우선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육기관을 잘 선택해야겠지요. 요즘은 소소하게나마 글을 가르치는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원이 많으니 우선 한 걸음 내디뎌보시길 바랍니다.”

펜을 잡고 나선 삶이 달라졌다. 한 번도 삶이 무료하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말하기 힘든 욕망, 결핍, 갈증이 있었다. 순희 씨에게 그건 바로 글이었다.

“제 수필에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눈을 핥아줬다는 내용이 나와요. 그간 비밀이라서 이 얘기를 안 하고 살았던 건 아니거든요. 그저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모르니까 가슴 속에 담아둔 거죠. 이렇듯 웅크리고 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니 자연히 갈증이 해소되더라고요.”

화가 나는 일, 슬픈 일을 겪어도 예전과는 다르다.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글로 연결이 되니까요. 안 좋은 감정일지라도 결국 글의 ‘소재’가 되니까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달까요.”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글을 쓴다는 것. 아이들과 남편의 지원이 없었으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잖아요.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도 있었어요.(웃음) 고맙게도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제몫을 스스로 찾고요. 무엇보다 제가 쓴 글을 남편이 가장 먼저 읽어줄 때 제일 기쁩니다.”

전업주부에서 ‘커뮤디렉터’로, 박선경 씨

마흔 이후, 비로소 천직을 찾다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에너지가 충만한 데다 끼도 넘쳤다. 도회적인 외모의 꽃다운 20대,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던 한 여인은 그러나 ‘꿈’보다 ‘현실’을 좇아 결혼했다. 사업가인 남편은 아내가 내조에 집중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주기를 바랐다. 1980년대 기혼 여성 대부분이 그러했듯 여인도 박선경(52)이라는 이름보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불리며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를 15년. 주부로 살면서도 그의 가슴 속 한구석에는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일찍 결혼한 탓에 이렇다 할 직장경력은 없었지만 아이처럼 순수한 호기심과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조건 도전해야 직성이 풀리는 열정이 박 대표에게 있었다.



/신승희

“전업주부일 때도 그 ‘때’를 위해 늘 준비했어요. 주부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기웃거리면서 여러 정보를 모았죠. 두 아들을 중3, 중1 때 해외로 유학 보내면서 생각보다 일찍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내 인생에 열정을 가지고 투자를 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제 나이 마흔이었어요.”

그는 비용이 드는 창업 대신 뜨거운 가슴과 두 다리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카페나 할까’, ‘꽃집이나 해볼까’ 하는 식의 막연한 생각은 애초에 배제했다. 남편의 공부를 위해 온 가족이 미국에 갔을 때 동네 교육기관에서 배워놓았던 푸드스타일링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무척 생소했다. 요리 실력과 스타일링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 한국에서 정식으로 교육과정을 밟고 프리랜스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드라마 속 상차림, 잡지 화보 촬영용 요리, 케이터링 등 활동을 하다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모닝와이드>에 요리전문가로 출연했고, 이를 계기로 요리강사에서 이미지 메이킹,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등을 주제로 관공서와 기업체 및 학교, 병원과 호텔 등에서 강의를 하는 전문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다 CS강의를 갔던 한 병원에서 컨설턴트로 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만 3년간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에서 직원교육과 고객상담을 담당하는 업무총괄이사를 역임했다. 성과가 좋아 몸값도 껑충 뛰었다. 어느덧 그의 나이 쉰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흔에 시작… 컨설턴트, 강사, 쇼호스트 게스트로 종횡무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영역을 찾던 중 미국생활 시절 홈쇼핑에서 재봉틀을 팔던 호호할머니 쇼호스트를 떠올려 쇼호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병원에서 상담업무를 하고, 밤에는 쇼호스트 아카데미를 다니며 20대, 30대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다. 비록 홈쇼핑사 공채의 문을 뚫지는 못했지만, 전문 게스트 콘셉트로 GS홈쇼핑과 홈앤쇼핑 등에 200회 이상 출연했다. 주부 9단으로서의 장점을 살려 주방가전, 식품, 가구 등 수십 가지 상품을 판매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경력을 십분 활용해 홈쇼핑 상품 기획사인 다호커뮤니케이션의 대표를 맡았다.

“집 밖의 세상엔 상처도 많았죠. 특히 방송일은 텃세도 심하고 한 신을 촬영하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린 날도 부지기수였어요. 그런데 그게 어디예요. 저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거기까지 진출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힘겨웠지만 첫발을 떼었기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고 또 저만의 스토리가 생겼죠. 홈쇼핑 상품 기획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서 활동하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박선경 대표는 불혹의 나이에 일을 시작해 비교적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로 ‘사람’을 꼽았다. 실제로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고자 노력했다. 한편, 가족의 열렬한 지지와 응원도 힘이 된다. 과거 내조를 바랐던 남편은 이제 박 대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남편이 미국에 MBA를 따러 갔을 때 실은 저도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매일 새 반찬을 만드는 똑 소리 나는 살림꾼으로 살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 일을 하는 지금이 무척 당당해요. 내가 번 돈으로 아이들과 부모님께 용돈을 주는 요즘 정말 행복해요.”

경력단절 주부들의 길라잡이 되고파

박 대표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2년 전, 50대 초반에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던 언론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뿐인가, 원우회장, 연극부 활동까지 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캠퍼스 라이프를 만끽했다.

젊은 시절 단편소설 신춘문예에 도전한 경험이 있는 그는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20년 뒤를 은퇴 시점으로 잡고 퍼스널 이미지 메이킹, 브랜드 PR 등을 접목해 책도 쓰고 강의도 하는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되는 게 꿈이다. 더불어 사회로 나오기 두려워하는 경력단절 주부들의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그는 경력단절여성들에게 멈칫거리지 말고 일단 저지른 뒤 스스로 테스트해보라고 말한다.

“주부로 20년 가까이 살다 보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에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80만원, 100만원 버는 것을 우습게 안다는 거예요. 그 돈 받고 일하느니 집에 있는 게 낫다는 거죠. 저는 그게 시작점이라는 생각을 안 합니다. 경력이 쌓이면 100만원이 150만원이 되고 거기서 역량을 발휘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값은 더 올라가는 거니까요. 저도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여성들의 길라잡이가 될 자격은 있겠죠.”(웃음)

쳇바퀴 돌던 일상에서 특수반 공예강사로, 홍은영 씨

17년 만에 가슴 뛰는 일

가끔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몰입하다 보면 내 안의 다양한 소모적인 감정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듯한 기분 좋은 경험을 맛볼 때가 있다. ‘몰입’이 주는 ‘힐링’이랄까?

토털공예 전문가이자 방과후 특수반 공예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홍은영 씨에게 ‘공예’는 힐링이다. 다양한 공예분야 중 특히 비누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녀는 비누공예지도사 사범이 된 지금도 여전히 천연비누가 만들어내는 마블링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새벽까지 비누를 만들어낸다. 매일같이 나가는 방과후학교의 특수반 공예강사 일은 그녀에게 장애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특별한 시간을 준다. 매너리즘에 빠져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그녀의 하루는 매일이 보람차다.



/신승희

특수반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직접 립스틱 한번 만들어보실래요?”

2층의 채광 좋은 원목작업실.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아로마 제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기자에게 그녀가 말을 건넨다. 흔쾌히 수락하고 바로 비커에 호호바오일과 비즈왁스 등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재료를 넣어본다. 디지털 저울기에 그램 수를 정확히 계산하며 재료들을 넣자니 없던 수전증이 생길 판이다. 재료들을 가열한 후 립스틱 모양의 몰드에 부어 굳히니 정말 시판되는 것과 똑같은 립스틱이 완성됐다. 입가에 저절로 번지는 미소. 이 맛에 공예를 하나 싶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녀와 같은 공예전문가를 양성하기도 하는 홍은영 씨는 자신을 ‘공예 전문가’라는 호칭보다 특수반 공예강사’라 불러달라 말한다.

“왜 특수반 아이들을 좋아하냐고요? 제가 비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특별히 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어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특수반 아이들은 손을 떨면서도 열의를 갖고 공예를 하려는 모습을 보였죠. 누구나 자신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고 싶은 법이잖아요.”

그래서일까? 그녀의 꿈은 장애인들이 마음껏 공예를 배울 수 있는 ‘장애인공예협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미 공예지도사 사범 자격증을 소지하여 자격증 발급이 가능한 상태라 협회 설립도 그리 막연한 꿈이 아닌 듯 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한 자원봉사 시간만 200시간이 넘는다는 은영 씨는 중1, 고1이 된 자신의 두 아들과도 자주 중증장애인을 위해 자원봉사를 나간다. 그녀가 중증장애인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장애가 깊을수록 그들을 가르쳐줄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는 길이면 자신의 재능이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고 왔다는 생각에 새삼 감사하게 된단다. 그런 엄마와 오랫동안 봉사를 해와서인지 그녀의 두 아이들 역시 거리낌 없이 장애인들을 대한다고. 베풀고자 하는 삶이 자신은 물론 두 아들까지 성장시키고 있는 듯했다.

일하는 엄마, 베푸는 엄마, 그래서 존중받는 엄마

지금은 특수반 공예강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그녀에게도 의미 없이 흐르던 시간이 있었다. 파트타임으로 피아노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은 그녀를 우울감에 빠뜨렸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어떻게든 보람을 되찾고 싶었던 은영 씨는 평소 관심 있던 토털공예를 배우기 위해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처음 문화센터에서 공예를 배우던 시간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뛴단다. 토털공예 중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누였다.

“가족들과 캠핑장에 갔는데 고기를 구워 먹을 때조차 비누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결국 텐트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비누재료를 30만원어치나 샀어요. 집으로 오자마자 바로 비누공예 자격증 2급 공부를 시작했죠. 자격증 취득 후에도 비누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새로운 기법을 배우러 다녔어요. 비누에 관해서라면 3시간에 40만원 정도 하는 고가의 수업도 마다하지 않았죠. 저를 위한 투자였어요. 대신 옷이나 신발 등 저를 꾸미는 다른 비용을 끊었어요.”

그녀는 처음부터 수입을 고려하고 비누공예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방과후 교사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자유학기제 장려정책으로 공예지도사의 수요가 계속 늘어 전망도 있죠. 하지만 경력을 중시하는 현장 분위기상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바로 취업이 되지 않아요. 최소 1년 이상은 재능기부나 보조강사 등으로 경력을 쌓아야 해요. 자기계발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실제로도 홍은영 씨는 20대 때부터 자기계발을 해온 덕에 한식, 양식 조리사 등 무려 16개의 자격증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녀가 12 : 1의 경쟁을 뚫고 농아학교 공예강사에 합격한 것도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증이 도움이 됐다.

힘든 부분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느 날 제 아이들이 ‘엄마가 일을 하고 있는 게 참 좋아’ 라고 말하더군요.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매너리즘이었어요. 저는 현재 제 일이 재미있고 남에게 베푸는 삶이 보람돼요. 혹시 지금 자신을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작해보세요. 길은 어디에서든 열리기 마련입니다.”

나도 반란하고 싶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원한다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전업주부의 수가 점차 줄고 있다. 지난 3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사’ 및 ‘육아’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는 7백8만5천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4년에 비해 5만8천 명이 줄어든 수치다. 전업주부 수는 관련 통계가 만들어진 2000년, 6백38만4천 명을 기록한 이후 2010년 7백만 명대(7백6만5천명)를 넘어섰다. 2013년에는 최고치인 7백29만8천 명을 찍었으나 다음 해인 2014년 7백14만3천 명으로 떨어졌다. 역대 최초로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인 것인데 그 후 2년 연속 하향세를 띠고 있다.

왜일까. 전업주부들이 점차 돈을 벌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아쉽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다. 단지 20~30대 여성들이 전업주부로 전향하는 경우가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녀를 둔 여성들의 고용률은 여전히 낮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자녀 연령이 만 2세 미만일 경우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은 32.4%로 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자녀 연령이 만 3~5세인 구간에서는 35.8%로 꼴찌다. 주부들의 사회참여가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전업주부 경력이 늘어갈수록 더 그렇다.

작은 것부터 한 걸음씩 시도해보라

비단 재취업의 경우뿐만이 아니다. 주부들은 항상 생각한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하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에 이르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 이래저래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앞서 만나본 주부 3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인근 교육기관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는 것.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아주 작은 시도였다. 작은 시도가 도전이 됐고, 돌이켜 보면 그 도전이 반란을 일으켰다. 우선은 뭐라도 배우는 게 좋겠다. 가장 먼저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뭔지,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막연히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하는 건 지속력이 없다. 되도록 간절히 바랐던 것, 혹은 본인이 흥미와 재능을 가진 분야를 배우자. 굳이 수강료를 지불하지 않고, 밖에 나가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오픈코스웨어(www.kocw.net)’에 가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포함한 전국 20개 대학에서 실제로 진행되는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다. 교수진과 강의내용, 커리큘럼까지 모두 재학생과 동일하다. 물론 학점과 학위, 졸업장 취득은 불가능하지만 강의료는 무료다. 로그인을 할 필요도 없다. 사이트에 접속한 후, 대학별 혹은 전공별로 강의를 선택해 재생 버튼만 누르면 곧장 시청이 가능하다. 각 대학별로 들을 수 있는 강의의 종류는 약 100가지. 맘먹고 다 듣는다고 하면 정말 4년이 걸릴지도 모를 양이다. 해외의 오픈코스웨어 사이트에 접속하면 아이비리그 대학교의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세계적인 석학을 스승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프라인 무료교육도 있다. 여성에 특화된 교육기관에서는 정기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틈틈이 스케줄만 확인하면 양질의 강좌를 무료로 수강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오프라인 수강을 하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주부들과 정보와 애로사항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이점도 누릴 수 있다. ‘서울시 여성능력개발원(02-460-2300)’에서는 다양한 경력개발프로그램과 중장기 전문 아카데미 등을 마련해놓고 있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1544-1199)’는 가사 및 육아 부담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에게 직업상담, 구인·구직 관리, 직업교육훈련, 인턴십, 취업지원, 취업 후 사후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그리고 ‘여성인력개발센터(02-318-5880)’는 주부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초적인 직업훈련 및 전문 직업훈련을 제공한다. 전국 51개 지역센터로 운영되고 있으니 거주지와 가까운 곳을 찾아 필요한 교육훈련을 골라 수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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