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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에 찬란한 그 금빛별

[CCTV 한국어방송] | 발행시간: 2016.07.29일 09:19
[CCTV.com 한국어방송] "자신의 꿈을 가볍게 보지 마세요…" 그녀가 속삭이듯 말한다. 평범한 담소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에너지가 꽉 차있는 듯하다.

  그녀의 지나온 인생은 금빛광환으로 장식된 한편의 전기소설이다.

  중국현대무용의 개척자 창시자, 중국 당대 손꼽는 무용 대가의 한 사람, 현재는 자신의 독특한 토크쇼로 억만 관중의 인기를 한몸에 안고 있는 저명한 사회자, 그리고 28년을 남자로 살아왔고 22년을 여자로 살아온 그녀… 그녀의 이름은 바로 조선족동포인 김성(金星)이다.



  탁월한 천부의 무용가

  김성은 1967년 랴오닝성 선양시의 군인가정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김영철(金永哲)이고 어머니는 한영(韩颖)이라 부른다. 위로는 누이가 있다.

  학교 갈 나이가 되어 김성은 선양시 서탑조선족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다. 김성은 어려서부터 무용에 큰 흥취를 나타냈는데 그의 뛰어난 천부는 전문가들의 주목을 끌어 9살에 선양군구 전진가무단에 입단했으며 1984년에는 중국인민해방군예술학원을 졸업했다.

  그때부터 김성은 무용가로서 탁월한 천부적 소질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하나의 완미한 무용기계처럼 어떤 무용이미지를 전달하면 그것을 터득하고 소화하여 그 무용을 완미하게 연출해냈다.

  1985년, 17세의 나이에 그가 공연한 발끝춤(足尖舞)은 제자컵(桃李杯) 중국 제1회 무용경연에서 특별우수상을 수상했다. 남자로서 발끝춤은 그가 처음이었다. 1986년 제2회 전국무용경연에서는 특별배우상을 수상했고 그해에 중국예술대표단의 일원으로 조선을 방문하여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서 축하공연을 했다.

  1987년, 그는 중국대륙에서 처음으로 미국 아시아문화기금 및 미국 예술연구전액장학금을 받으며 미국에 유학하여 현대무용을 배웠다. 미국 유학기간 김성은 그의 스승인 미국 현대무 대가 마루이·루이스의 현대무용 '떨림(颤抖)'을 연출했는데 연속 3년 뉴욕타임스로부터 '현대무가 추종하여야 할 목표다'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떨림'은 고난이도로 오직 김성만이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기때문다.

  1989년에는 한국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이화대 육완순 교수에 의해 한국에 소개되고 서울의 세종문화관에서 개인작품야회를 열었다. 1991년에는 미국 무용제에서 자신이 창작한 '절반의꿈(半梦)'이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절반의 꿈'은 중국의 '양산백과 축영대'의 음악을 배경으로 현실과 꿈사이에서 방황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는 무자의 탈변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4년간 유학생활은 그로 하여금 현대무용에 대해 심각한 이해를 갖게 하였다.

  그후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유럽에 건너가 로마에서 무용을 가르친 가운데 이탈리아 텔레비전 제1방송국(RAI UNO)의 안무가를 겸임했다.

  1992년에는 벨기에 황가무용학원의 초대를 받아 황가무용학원 현대무용 겸임교수를 맡았고, 벨기에서 백풍현대무용단(White Wind Dance Company)의 창설에 참여했다.

  1994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의 초청을 받고 귀국하여 문화부 소속 공무원이 되었으며 전국무용연출 기초훈련반, 전국 현대무용배우훈련반을 조직했다. 같은해 11월에는 베이징에서 개인현대무용야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어려서 부터 김성은 자신을 여자아이라고 생각하였고 여자애들과 놀기 좋아하였으며 그래서 모두들 그를 '새색시'라 불렀다. 성년이 되어서도 그는 이성적 의미에서 여자 손 한번 잡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1995년, 김성은 자신의 성별요소 중 여성요소가 94%를 차지한다는 진단과 함께 베이징에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남자에서 여자로 되었다.

  수술후 간호사의 부주의로 왼쪽다리가 마비되어 종신불구의 진단을 받았지만 김성은 완강한 의력으로 병마를 전승하고 3개월 후에는 기적같이 다시 무대에 올라 '적과 흑(红与黑)'현대무 전문공연을 하였다. 이는 중국대륙에서 처음으로 되는 현대무용 전문공연이었다.

  1996년 김성은 베이징시 문화국과 공동으로 베이징현대무용단을 창설하였다. 1997년 12월에는 뮤지컬'음악의소리(音乐之声)의 연출을 맡았으며, 1998년 5월 베이징에서 현대무극 '귀비취<구>(贵妃醉<久>'를 창작공연했다.

  1998년 8월 그의 작품 '적과 흑'은 중국문화부 문화상(文化奖)을 받았고, 그해 10월에는 아시아예술제에 참가하여 개인작품 '새벽 3시'를 공연했다. 또 그해에 김성은 베이징현대무용단총감독에서 사퇴하고 상하이에서 중국대륙에서 첫 개인무용단인 상하이김성무용단을 창단하여 학생들을 지도했다.

  2001년, 김성은 한국의 KBS1의 '인간극장'프로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02년, 김성은 유엔기술정보발전부로부터 동방문화예술상하이센터 예술고문으로 초빙받았고 같은해에 초청으로 한국 서울 월드컵개막식 문예공연에 참석하였다.

  2003년, 김성은 '해상탱고(海上探戈)'를 편성하고 상하이, 선전, 항저우 등지에서 순회공연했다. '해상탱고'는 1991년부터 2000년 사이가 그가 창작한 작품중 '절반의 꿈', '발걸음(脚步)', '해상탱고' 등 10부의 무용정품들을 상하부로 나누어 편성한 것이다.

  2004년에는 '해상탱고(海上探戈)'로 유럽순회공연을 하였는데 크게 돌풍을 일으켰다. 매번 연출 때마다 극장은 관중으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김성의 무용작품을 두고 유럽 무용평론가들은 "우리의 현대무용이 어데로 가야 할지 망설일 때 동방에서 온 무용예술가가 우리에게 방향을 잡아주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에 따라 김성의 현대무용은 전세계적으로 전에없는 각광을 받게 되었다.

  2004년, 그는 자신의 36년의 인생을 자상하게 보여준 자서전 '절반의 꿈'을 프랑스에서 우선 출판하였는데 그후 13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었다.

  2005년에는 또 무극 '카르미나 부라나'로 유럽순회공연을 했는데 역시 큰 환영을 받았다.

  2006년 김성은 영국 플리머스대학교 예술학원으로부터 영예박사칭호를 받았다. 이해에 그는 '상하이는 춤이 있다'로 명명한 국제현대무용축제를 개최했다.

  2007년, 김성은 영국 우산춤무용제에 참석하고 독무 '이렇게 멀고, 그렇게 가까워(這麼遠,那麼近)'를 창작, 공연했다.

  2011년 11월에는 한국 관련부문의 초청으로 한국에 가 20세기 조선무용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최승희(崔承喜)탄신 100주년 기념행사에 유일한 중국 대표로 참석했다.

  2012년에는 또 프랑스로부터 프랑스에서 문학과 예술 영역에서 주는 최고 영예인 '불란서공화국 문학과 예술 기사훈장'을 수여받았다. 김성의 무용에 대한 성취와 세계적인 공헌을 인정하는 증명인 것이다.



  웅변으로 억만 관중을 사로잡다

  "30살 전에는 다리로 벌어먹고 30살 후에는 입으로 벌어먹는다"고 김성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한다.

  김성은 어렸을 때부터 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아련한 모습과는 달리 대중들 앞에 나서면 자태가 당당하고 언어표달이 유창하여 매스컴 앞에 나서는 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의 이런 언변적 천부는 몇십년의 인생풍랑을 거치면서 연마되고 축적되어 일단 자신의 이런 언어적천부를 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자 마치 분출구를 찾은 용암마냥 거침없이 표현되면서 하나 하나의 정채로운 언어예술작품을 관중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김성은 2004년에 홍콩 성공위성방송의 '성공무장원(星空舞状元)'프로에 심사위원으로 등장하면서 TV 화면에 얼굴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그의 말재주도 함께 선보이기 시작했다.

  2011년에 김성은 상하이동방위성방송 '무림대회(舞林大会)프로에 심사위원의 신분으로 다시 등장, 이 프로에서 김성은 조리정연한 사변과 예리한 평판,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기지와 유머로 일약 TV 연예오락프로 심사위원들 중 가장 인기를 얻은 심사위원의 한사람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2012년에는 사회자의 신분으로 즉설쇼(脱口秀)프로인 '김성이 화성에 부딪치다(金星撞火星)'에 나타나 새로운 형식인 즉설쇼로 수많은 관중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의 언어풍격은 '설칼(毒舌)'로 유명하다. 사회의 부조리나 불공평을 두고 그는 가차없이 꼬집고 비판의 세례를 퍼붓는다. 김성은 '유리고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별명처럼 그는 투명하고 진솔한 개성의 소유자이다. 그의 이런 개성은 항거할 수 없는 마력처럼 그의 웅변에 금상첨화를 해준다.

  2013년 1월에는 동방위성방송의 '마마미아(妈妈咪呀)'심사위원으로, 2014년 2월에는 동방위성방송의 '무림쟁패(舞林争霸)'지도교사로 출마, 2015년 3월부터는 슈퍼연설가(超级演说家)프로에 지도교사로 등장하는 등 텔레비전연예프로에 맹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 3월부터는 후베이위성프로에 자신이 사회를 맡은 즉설쇼 '김성쇼(金星秀)'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즉설쇼프로는 투자와 홍보가 아주 적지만 시청률은 연예오락프로 중 몇 손가락에 꼽는 인기프로의 하나이고 일단 그의 새로운 절목이 뜨면 순식간에 팬속에 퍼지면서 그의 정채로운 말들은 '김성어록'으로 만들어져 팬들의 인생지침서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 김성의 팬은 약 천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2015년 5월 8일부터 김성은 커다란 성취를 거둔 자신의 무용과 한창 뜨고 있는 자신의 즉설쇼를 결합한 참신한 예술표현형식인 '무극+즉설쇼'전국순회공연을 시작했는데 시안(西安), 타이위안(太原), 충칭(重庆), 선양 등 13개 도시에서 공연, 12월 5일 베이징에서 막을 내렸다.

  지금까지 그는 38부의 무용작품과 6부의 화극을 창작하였고 4부의 영화를 찍었다.

  기자와의 대담

  기자: 김 선생의 본 고향은 어딘가요?

  김성: 조상의 고향은 조선 평양이고 중국의 고향은 지린성 반석현이예요.

  기자: 김 선생의 무용천부는 가족적인 유전을 받은 건가요?

  김성: 천만에요. 우리 가문 8대를 아래위로 훑어봐도 무용을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 김씨 가문에서 제가 태어났어요.

  기자: 하얼빈에는 오신 적이 있나요?

  김성: 어렸을 때는 공연 때문에 여러번 갔었는데 그후 오랫동안 못갔어요. 듣자니 하얼빈대극장이 새로 생겼다는데 기회가 되면 가서 순회공연을 하려고 해요.

  기자: 지금 주로 하고 있는 일은요?

  김성: 무용, 화극, 사회, 영화텔레비전 연예인 등이지요.

  기자: 김 선생은 자선사업에도 적지 않게 참여한 것 같은데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김성: 조금 했는데 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

  /류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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