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마스터스 대회 100m 70세 이상 부문서 1등한 카우르]
창·포환 던지기도 金, 3관왕
지금까지 딴 메달 스무개 넘어 "건강 비결은 규칙적인 운동"
'땅.'
총성이 울렸고 노인(老人)은 달리기 시작했다. 팔은 앞뒤로 힘차게 흔들었고 입은 꼭 다물었다. 전속력으로 100m 트랙을 통과한 기록은 1분21초. '번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였다면 같은 거리를 8번은 갈 시간이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그녀는 물을 벌컥 들이켰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말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이내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하게 웃었다.
1916년생, 올해 100세를 맞은 인도의 만 카우르씨는 30일(한국 시각) 아메리카 마스터스 게임(캐나다 밴쿠버)에서 육상 여자부(70세 이상 부문) 100m 우승을 차지했다. 70세 이상 여성 출전자는 그녀뿐이었기에 완주만으로도 금메달을 걸 수 있었다. 앞서 창던지기와 포환던지기에서도 정상에 오른 카우르씨는 이 대회 '3관왕'이 됐다. 이번 대회 홍보 대사를 맡은 1984 LA올림픽 은메달리스트(여자 1600m 계주) 샤메인 크룩스(캐나다)는 "그녀는 젊은이와 나이 든 이들에게 모두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이보다 잘 맞을 순 없다. 인도의 만 카우르 할머니가 30일(한국 시각) 아메리카 마스터스 육상 경기 100m에 출전해 ‘역주’하는 모습. 100세 노인을 향해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AP 연합뉴스
우승 직후 카우르씨의 곁엔 통역을 맡은 아들 구르데브 싱(78)씨가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는 항상 승리에 목말라 있다. 고향에 돌아가서 이웃들에게 '내가 금메달을 따고 왔다'고 자랑할 것"이라고 했다.
카우르씨가 육상 대회에 출전한 건 처음이 아니다. '상수(上壽·100세를 뜻함)' 나이에 중국과 미국 등 세계 각지를 돌며 목에 건 메달만 스무 개가 넘는다. 100m 최고 기록은 59초다.
슬하에 네 자녀를 둔 평범한 주부였던 카우르씨에게 장남인 싱씨가 8년 전 운동을 처음 권유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열린 한 마스터스 대회에서 90세 노인이 열성적으로 뛰는 모습을 봤는데 참 인상적이었다"며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무릎도, 심장도 건강하니 달리실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카우르씨의 느리지만 꾸준한 훈련이 시작됐다. 주로 저녁 시간에 집 근처 공원에서 혼자 달리기 연습을 했다. 다섯 번 이상 전력 질주를 하고는 집에 돌아와 우유와 제철 과일 주스로 체력을 보충했다. 노모(老母)의 열정에 자녀들도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형제들은 매번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돈을 모아 체류 비용을 댄다. 맏아들 싱씨가 언제나 어머니와 동행하며 응원한다.
규칙적인 생활도 고령인 카우르씨가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과 샤워를 마치고 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직도 일흔이 넘은 아들의 밥을 차려줄 정도로 정정하다. 매 대회가 도전의 연속인 카우르씨는 이날 우승 후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도 뛸 수 있어요. 건강 비결요? 당연히 운동이지요."
4년마다 열리는 세계 마스터스 게임에 앞서 아메리카 지역에서 열린 이번 대회엔 30세 이상만 참가할 수 있다. 대회는 오는 4일까지 이어진다.
[이순흥 기자 shlee@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