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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의 효녀--정복수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6.09.20일 15:18
무순시조선족양로센터를 찾아서

  (흑룡강신문=하얼빈) 마헌걸특약기자=무순현 장당향 상장당촌에 위치한 무순시조선족양로센터는 설립되여 10여년간 따뜻한 보살핌과 정성으로 조선족로인들의 행복의 복지락원으로 거듭나고있다. 친딸처럼 로인들을 공경하고 효도한다고 린근에 소문이 자자한 양로센터의 "터주대감"은 정복수씨, 일전 양로센터를 찾아 정복수씨를 만났다.

  정복수의 사무실은 양로센터 주청사 2층의 동쪽에 있었는데 20여평 남짓한 실내에는 낡은 옷궤, 침대외 사무용책상과 몇개의 걸상으로 아주 간소했다. 벽에 아들며느리의 웨딩사진과 해맑게 웃고있는 손자사진이 걸려져있어 따뜻한 가정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정복수의 손자로부터 시작하였다. 지난 7월 4일, 손자가 그리워 정복수는 상해의 아들집에 가서 7살난 손자를 무순에 데려왔다. 한달 넘게 있다가 전날 남편 최학원에 상해로 데려다주러 떠났단다. 그동안 시내에 있는 집에 며칠 있지 못하고 손자와 함께 혈육의 정을 맘껏 나누지 못해 가슴아파했다. 한번은 한 로인이 사망하여 후사를 처리하느라고 며칠 집에 못갔더니 손주녀석이 “집을 사면 무얼하는가요, 매일 집에 안 있으면서…”(아들 며느리 놀러오면 있을곳이 없어 시내에 집을 샀다)라며 나무람했다는것이였다.

  정복수씨는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시어머니를 모시고있다. 시어머니에 대해서도 친아들보다 더 잘 보살펴주고 효성을 다했다. 남편 최학원원장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자기도 안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서 안해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로인이 90세인 해에 한번은 심장병과 여러 로년병이 도져 매우 중했다. 아들과 의사도 모두 이젠 치료못한다면서 포기했는데 며느리인 정복수는 절대 안된다면서 억지로 병원에 모셔가 치료를 거쳐 현재 97세 로인답지 않게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있다.

  양로원에는12무 좌우의 채소밭이 있는데 정복수부부는 직접 가꾸면서 로인들에게 신선한 반찬을 해드리는 등 로인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아오고있다. 여름철 뙤약빛아래 그녀는 초모자를 쓰고 땀을 흘리며 밭에서 일을 하군 했다. 주방에 일손이 딸리면 매번마다 가서 돕고 식사시간이면 그는 꼭 식당에 나타나군했다. 점심시간 필자가 식당에 가보니 삶은 옥수수를 매사람에게 두이삭씩 나누어 주고 식사도 다함께 시작하도록 했다. 정복수는 먼저 나온 로인들보고 뒤에 나온 사람 기다리라고 했고 다 모인다음에야 식사하라고 하였다. 로인들은 늙으면 어린애처럼 된다면서 먹을것으로 인해 싸우는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색다른 음식은 나누어 주고 수시로 돌봐줘야 한다고 했다.

  정복수씨는 “양로원을 경영하면서 돈벌 생각만 하면 안된다. 로인들을 자기 부모같이 대하고 로인들을 미워하고 귀찮아하면 안된다. 로인을 모시면서 일을 대충대충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항상 실천에 옮기고있다. 이날 한 로인이 자녀가 한국서 왔길래 집에 2,3일 다녀왔다. 양로센터에 들어서 2층 복도에서 정복수씨를 만나자 너무 반가워 포옹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다정하고 사랑이 넘쳤다.

  “로인들을 보살피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마음먹고 다가가니 더욱 정감이 생긴다. 그러다보니 내가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더 잘해드리고싶은 마음이 앞서더라.”

  어쩌다 한번씩 개별적인 가족들이 양로센터에서 로인을 데려가고서는 비용을 내지 않고 전화번호도 바꿔버리고 잠적해버릴적도 있었다. 이런일이 4번이나 있었는데 약 2만여원의 비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두 달갑게 받아드리고 계속 전과 다름없이 양로원이란 이 대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며 지켜나가고있다.

  무순시는 5만여명 조선족이 살고있다. 전에는 전 시에 조선족 양로기구가 하나도 없었다. 하여 조선족 로년인들은 할수없이 한족 양로원에 가는수밖에 없었다. 조선족로년인들은 음식과 언어, 생활습관 등 여러 방면에 한족양로원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이로 인해 많은 로년인들이 매우 골치아파하였다

  2002년, 원래 무순시통계국 기건처 처장으로 근무하다 부국급조연원으로 퇴직한 정복수씨는 이를 감안하고 로인들을 위해 봉사하고싶은 마음으로 안락한 도시생활을 버리고 간고한 양로원경영을 하기로 결심내렸다. 정복수는 그의 남편 최학원과 함께 자기의 시내에 있는 살림집을 팔고 다년간 모아둔 저금통장을 통털어 58.8만원 투자하여 강태옥, 박갑윤, 리화일, 리형창 기타 4명의 조선족과 손잡고 모두 150만원 투자하여 2003년도에 무순시에서 처음으로 되는 조선족양로원을 차렸다.


 

 정복수부부의 끈질긴 노력하에 2003년 약 2천평방메터의 건축면적으로 시작한 양로센터는 제한된 공간때문에 찾아오는 로인들을 다 접수하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웠다. 료녕성정부와 시정부, 그리고 무순시조선족사회 각계의 지지하에 2008년에는 양로원 2호 청사를 준공, 그리고 양로원 주위의 촌민집들과 토지를 부단히 사들여 확장시켰다. 양로원은 작은데로부터 점차 발전하여 현재는 부지면적이 2.5만평방미터이고 건축면적이 3000평방미터이며 150명 로년인을 입주할수 있는 현대화 양로원으로 거듭났다.

  지난해는 양로센터 앞의 채마밭을 파제끼고 지원열펌프공정을 준공하여 집안이 더 따뜻하고 취난비를 절반이나 절약시켰다. 그리고 양로센터는 원래의 전원화로부터 원림화로 전환되고있었다

  정복수씨는 무순시조선족양로센터는 조선족사회의 박절한 요구에 따라 설립되였고 그 기간 사회 각계의 물심량면의 지원과 관심으로 오늘날까지 운영, 발전될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양로센터는 무순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회장이 리사장을, 정복수씨부부가 경영을 맡았으며 또 양로센터내 당지부를 건립하고 정복수씨가 당지부서기를 맡고있었다.

  조선족양로센터의 로인들은 특수한 약세군체이다. 그들은 년세가 많고 신체가 약하며 성격이 괴벽하고 상호간 교류가 곤난하며 특별히 한어가 서툴었다. 양로센터의 임직원들은 당지의 한족촌민들로서 서로간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자주 사소한 일로 오해가 발생하군하여 조선족로인들이 복무원들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말다툼이 벌어지군 한다. 이때마다 정복수는 나서서 소통의 교량역할을 발휘하여 한편으로는 로년인들에게 인내성있게 해석하고 타일러주고 설득하군 했다. 그리고 무고하게 억울한 일을 당한 복무원들에 대해서는 따로 위로해주군 했다.

  정복수씨는 로인들이 샤워하거나 옷을 바꿔입을 때 한시라도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피군 한다. 한번은 대소변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한 로인이 식사하러 식당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저도 모르게 대변물을 배설하였다. 복무원이 발견한후 집안에 돌아가 처리하자고 하였다. 로인은 저도모르게 격노하여 노발대발하며 복무원과 다투었다. 정복수은 인차 달려가 내심적으로 타이르고 화해시켰다.그는 복무원을 배치하여 로인을 부축해 집안에 데려가 옷을 씻어주고 몸을 닦아주게 하였다. 그리고 친히 복도에 흘린 분변을 닦고나서야 총망히 가서 밥을 먹었다.

  양로원에 대한 관리는 엄격한 관리제도가 있다. 하지만 로인들은 규정을 어기고 제멋대로 할때가 종종 있군 한다. 어떤때는 자주 남몰래 양로센터를 떠나 도망가군 한다. 한번은 80세 넘은 로인이 담장을 뛰쳐넘고 가출할적도 있었다. 정복수은 로인이 없어진것을 발견하면 인차 찾아나서군 했다. 양로원에 입주한 최모모(76세) 소뇌위축환자이다. 2015년도 어느 하루, 점심시간이 되였는데 점심을 먹으로 오지 않아 찾아보니 사람이 없어졌다. 그녀는 먼저 파출소에 신고하고 사람들을 조직하여 사처에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안타까워 속을 태우는데 밤중에 무순현 후안진파출소에서 전화가 와서야 로인이 자기도 모르게 수십리길을 걸어 무순현 후안진 남장당촌에까지 가서 마음좋은 촌민들에게 발견되여 당지 파출소에 데려다 줬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정복수은 소식을 접한후 제 지갑을 털어 120원내고 밤중에 혼자서 차를 불러 달려가 로인을 모셔왔다.

  정복수의 눈에는 신변에 친인이 없는 로인들이 항상 불쌍한것밖에 안보인다. 그래서 더욱 로인들에게 잘해주군 한다. 개별적 로인들은 집에 며칠 갔다올때면 한 보따리의 어지러워진 옷들을 가져오군 했지만 그녀는 한번도 나무람하지 않고 두말없이 잘 씻어주군 했다.

  양로센터에 입주한 대부분 로인들의 가족들이 외지 혹은 국외에 나가있어 로인들이 병환에 걸려도 제시간에 오지 못할때가 많다. 특히 로인들의 림종전에 가족이 도착하지 못하면 정복수씨는 직접 몸을 깨끗이 닦아주고 옷을 바꿔 입히고 장례까지 치러주군 했다. 지금까지 양로센터에서 직접 장례를 치른 로인만 해도 130명이 넘는다. 올해 이미 11명 로인의 후사를 처리하였다

  무순조선족양로센터는 13년간 이미 555인차 입주했다. 현재 입주인원이 118명이다. 정복순은 깨끗하고 착한 효심으로 십여년을 하루와 같이 애심을 쏟아부어왔다. 로년인들은 정복수를 자기들의 친딸처럼 여기고 양로센터를 자기의 집처럼 여겼다. 로인들이 어떤 속심말이 있으면 다들 그녀와 즐겨 말했고 어떤 곤난이 있으면 다들 그녀를 찾군했다.

  그녀의 사무실은 로년인들의 대화방과 상담실로 되였다. 그녀는 로년인들과 두터운 모녀정을 맺었다. 그녀는 “어데 가나 내가 돈 좀 쓰고 일 좀 더 하면 다 편한거야.”라고 말하면서 넓은 흉금과 사랑의 마음으로 로인들을 대하군 했다. 로인들은 각자 환경이 다른 곳에서 왔길래 제가끔 다 틀렸다. 부분 로인들은 “내가 너희들 어떻게 길렀게,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고 자녀들에게 불만이 있었는데 이때마다 내심하게 설득하군 하였다.

  양로센터의 “가장”인 정복수씨는 밤낮 양로원에 있으면서 관리하고 있다. 로인들은 정복수씨가 고마워 침실에서 만나면 똥오줌질하면서도 고맙다고 사탕을 꺼내주군하는데 자존심 꺽어놓으면 안된다며 받군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도 결혼집이나 환갑집에 가면 사탕과 과일들을 가득 얻어와서는 로인들에게 나누어 주군하여 그녀가 대사집에 갔다하면 로인들이 항상 “친인”을 기다리군 한다고 했다.

  양로원에는 퇴직금있는 할머니들이 적다. 여기서는 할머니들 마작팀 한팀 조직하기 어렵다. 오락을 조직하기가 힙들다. 오락이란 화투놀이와 장기놀이 등이다. 여기는 인원구성이 지식있는분이 적어 어떤 활동도 조직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여기는 다행히 위문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교와 조경협에서, 로년협회에서 여러 단체들에서 자주 위문오고 공연도 하군한다.

  한 로인은 양로쎈터에 입주해서부터 9년간 집에 가지 않았다. 금년에 집에 간후 자녀들이 다소 효도하려고 며칠 만류했지만 집에 가자마자 돌아오겠다고 하여 자녀들은 할수없이 이튿날로 로인을 다시 모셔왔다. 춘절때면 대부분이 집에 가는데 초사흩날이면 다 돌아오군 한다. 설기간에 아침이면 자녀들이 제시간에 일어나지 않아 배고파죽겠다는것이다. 양로원에서는 제시간에 꼭 식사를 하니까 그래도 양로원이 편하고 좋다는것이다.

  로인들은 정복수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전창옥(84세)로인은 “정복수씨가 말할것없이 잘해요, 먹는것도 그렇고 이만한 양로원 없어요”했고 “친척이 여기에 있지만 다 같게 공정하게 공평하게 대해준다면서 특별대우가 없다”고 했다. 무슨일이 있으면 선뜻 나서고 성격도 좋다며 종래로 화를 안낸다고 했다.

  리애신 (86세)로인은 2004년에 입주, 12년째라며 "1년에 돼지 여러마리 잡아 순대도 해준다. 장날 로인들이 먹고싶은것 사달라면 잊지않고 사다준다. 명절에는 특별히 닭고기, 돼지고기, 동지죽도 쑤준다"고 했다.

  식당 직원들은 때론 정복수에게 주려고 색다른 음식을 남겨두곤 한다. 한번은 닭고기를 남겨두었는데 정복수는 닭고기를 모두 로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리복녀는(90세) 자기가 화기병으로 약도 안되고 돼지고기로 고쳐야 한다는것을 알고 정복수씨가 돼지고기를 사와서 서너번 데워서 부치니까 낫았다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2016년1월 31일, 무순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무순시조선족기업가협회, 무순시조선족로년협회에서는 3명의 “무순의 훌륭한 조선족”에 대해 표창, 무순시 첫 조선족양로센터를 설립한 무순시조선족양로센터 당지부서기 정복수가 그중의 한사람으로 표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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