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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PD에서 모텔 청소부까지...박연희씨의 파란만장한 한국생활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7.02.21일 09:15
 한국에서 생활한 지 6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나에게 한국은 여전히 외국 같아요. 점점 더 어렵네요.

▲ 박연희, 조선족 연길시 태생

  한국행을 결심하다

  (흑룡강신문=하얼빈) 박연희 PD가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중국에서도 한창 잘 나가는 그녀가 굳이 한국을? 왜? 하는 반응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 그녀는 연길시 방송국에서 8년동안 책임편집으로 일했고 연길시TV에서 PD직으로 일했다. 그녀가 맡은 프로는 한국의 “인간극장”과 비슷했는데 작가였던 그녀는 취재를 손쉽게 해냈고 PD일은 그녀의 적성에 맞았다.

  그녀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서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지방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그녀의 수중에는 등록금을 낼만한 거액의 돈이 없었다. 오랜 고민끝에 그녀는 한국에 와서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외국도 아닌 고국이라 말도 잘 통하지, 그녀가 가진 경력과 재능으로 충분히 돈을 잘 벌 자신이 있었다. 50세, 반백의 나이에 그녀는 한국으로 왔다. 그녀의 한국행 스타트는 꽤 화려했다. 오자마자 곧바로 동포신문사에 기자로 취직을 했던 것이다. 허나 월급은 짰다. 아무리 아껴써도 생활비를 내고 나면 한 달에 20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3D업에 종사하다

  결국 그녀는 기자일을 한 달만에 그만뒀다. 그때로부터 4년 동안 박연희씨는 식당의 주방 설거지, 홀 서빙, 모텔 청소부, 가정부, 현장 청소, 파출부 등 힘든 일을 닥치는대로 했다.

  “처음 모텔에서 일을 할 때는 콘돔을 보고 기겁을 했죠.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어요.”

  그녀는 이젠 옛일이 되어버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하 웃었다. 모텔 청소부의 일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손님이 방을 비우기 바쁘게 양쪽 옆구리에 물통을 하나씩 끼고 달음박질치다시피 하면서 청소를 잽싸게 해야 했다. 하루종일 뛰어다녀서 나중엔 발뒤축이 아파서 걷지를 못할 지경이었다.

  가정부는 모텔 청소부에 비해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었으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였다. 다른 사람의 집에서 보내는, 시시각각 감시받는 8시간은 그녀에겐 견딜 수 없이 고단한 나날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너무 일하러 가기 싫어 울고 싶었고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마음이 홀가분해져 저도 몰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한 번은 주인집에서 계란이 없어진 것 같다면서 그녀가 훔친걸로 의심을 했다. 그녀는 너무 억울했다. 그런 비도덕적인 행위로 의심받는다는 자체가 그녀의 인격에 대한 모욕이었고 담낭이 안 좋아서 평소에도 계란을 별로 먹지도 않는 그녀는 이런 일을 당하자 한심했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걸 참아냈다.

  그렇게 4년동안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그녀는 아들을 졸업시키고 한국 나올때 지고 있던 빚도 갚았다.

  국회의원 비서로 일하다

  4년 후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없게 되자 그녀는 조금 여유있는 일을 찾아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이 반항을 했다. 4년동안의 허드렛일과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로 온 몸은 성한 곳 하나 없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심신의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역시 그녀는 일할 팔자만 주어졌나보다. 그녀는 우연히 인연이 닿아 중국 통역 겸 인턴사원을 필요로 한다는 한 국회의원의 비서로 들어가게 되었다.

  국회에서 일하게 된 두 번째 조선족이었다. 처음에는 국회의원 비서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다문화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녀는 국회의원의 인터넷기사와 방송내용을 편집하여 블로그와 사이트에 올리는 일을 맡았다. 다문화 특별보좌관이 하는 일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들을 동원하여 투표를 하게 하는 일이다. 물론 고생이 막심했다. 영어도 모르고 전화내용도 알아듣기엔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 쉽게 물러서고 싶진 않았다. 사정에 의해 국회에서 10개월 정도 일을 하고 나오게 되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은 그녀에겐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한국인들과 소통을 하는데 더없이 큰 도움이 되었다.

  여러 단체에서 일을 하다

그 후 그녀는 서울 서남권 글로벌센터의 중국 통역겸 상담원 일을 3개월 정도 하면서 엑셀, 파워포인트 작성법, 동영상 제작 등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부단히 쌓았다. 그 후 그녀는 OO주식회사의 중국마케팅 팀장으로도 일했고 2017년 1월부터는 이주여성단체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6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나에게 한국은 여전히 외국 같아요. 점점 더 어렵네요.”

  3D 직종에 종사하면 돈은 많이 벌지만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회사에 근무하려면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고, 그녀는 이것이 많은 조선족들의 공동의 우려라고 했다. 그녀는 늘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어쩌면 필수이기도 하다. 한국어능력시험 6급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그녀는 듣기에서 점수를 많이 깎여서 너무 아쉽다고 탄식했다. 중국에서 50년을 살아온 그녀,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일을 했지만 여전히 한국말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것이 우리 조선족들의 약한 고리라고 한다.

  요즘 사회는 인터넷이 발달했지만 돌아보면 개개인은 이전보다 더 고립되어있다.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외국인은 더욱 고립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그녀는 고민상담사 자격증도 땄는데 그것을 사용할 자리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여전히 조선족들은 이래저래 많은 제한을 받는다.

  우리는 여전히 달라요

  처음에 그녀는 조선족과 한국인은 똑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 나와보니 조선족은 이방인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동사무소에 가서 인감증명을 떼는데 동사무소에 외국인에 대한 체크 시스템이 안 되어있어서 그녀는 한시간 동안이나 기다려야 했다.

  “한민족이지만 우리는 많이 달라요. 다년간 서로 다른 문화속에서 생활해오다보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구요. 여전히 외국인 같아요. ”

  글쟁이로서의 고충도 많았다. 철자, 띄어쓰기, 맞춤법이 우리가 전에 배웠던 것과 전부 다르기에 또 한 번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녀가 활동하고 있는 조각보에서는 현충원에서 “사람책 이야기” 를 해마다 주최한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각 나라별로 하는 건데 자기 나라에서 배운 전쟁이야기를 한다. 이 활동을 통해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왜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화합 단결이 잘 안되는 지를 알게 되었다.

  조선족 알리는 일에 앞장서

  2014년에 그녀는 “한민족 그리고 조선족”이란 대담프로에 주연으로 출연해 한국사회에 정확하게 조선족을 알렸으며 2015년 4월 MBC 다큐스페셜 “거리의 피아노”에도 출연했다.

  2015년 11월에 그녀는 “동포모니터링단”단장 직을 맡아 동포이미지 개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주 신났던 한 해였다고 그녀는 회억했다.

  동북아평화연대와 함께 모니터링단 일을 하면서 한국언론의 취재도 많이 받았다. KBS “한민족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한민족 네트워크”….한국사회에 그래도 동포들이 자그마한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키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보람찼던 것 같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힘든 생활이 꽃피운 창작열

  개인적으로, 작가로서의 성취는 많은 작품을 탄생 시킨 점이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어려운 생활, 고달픈 몸을 늘 글로 풀었다. 중국에 있을 때 쓴 작품은 다 해봐야 60여편밖에 안되는데 한국에서의6년동안에 100편을 썼다. 수필, 수기 80편, 고민상담 20편. 한국에서 작가로서의 큰 성취를 이루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후회도 많이 했다. 중국에 있을 때 2007년에 방송 사업에서는 kbs세계한국인 방송대회 서울프라이즈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연길시TV에서는 상을 못 타고 한국으로 온 것도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은 언론이 더 자유롭고 글, 시각, 사회가 모두 열려있어서 작가로서의 그녀에게는 눈을 뜨게 한 세상이었다.

  한국에서의 빡센 스케쥴, 놀면 안된다는 강박관념도 중국에 있을 때의 마인드와는 천양지차였다. 한국에 있는 재한동포문인협회의 대부분 회원들도 노가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글을 쓴다. 그만큼 문인들은 글쓰기가 절실하다.

  여행 마니아로 변신

글쓰기 외에 그녀가 스트레스를 푸는 또 하나의 방법은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토, 일 빨간 날짜만 되면 그녀는 무조건 여행을 떠난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남이섬, 김유정문학관, 목포, 진도, 제주도 등...... 그녀는 때론 혼자서도 기꺼이 여행을 떠난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데 그것을 분출하는 출구가 있어야지 그것을 풀지 못하면 좌절하기 쉽다는 것이 그녀의 관점이다. 요즘 그녀는 완전 여행마니아가 되었다. 기차여행, 전철여행, 당일치기, 2박3일로 배낭 여행도 떠난다. 만원의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지혜와 센스를 키웠다. 추석, 구정, 크리스마스에는 무조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그녀 생활의 활력소이고 충전소이다. 그녀의 작품 중에 18편은 여행수기이다. 이제는 주변의 지인들이 한국의 명소를 추천해달라고 찾을 정도로 그녀는 유명해졌다.

  앞으로의 희망

  “책을 한 권 내고 싶어요”

  그녀는 어려운 한국생활에서 쓴 생생한 체험담을 책으로 묶고 싶다고 했다. 이외에도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각보”에서의 “삶이야기”를 더욱 많은 조선족들에게 접목시키고 싶다고 한다. 1박2일로 여행을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프로그램이다. 지친 이국생활에서 다문 하루만이라도 울고 웃으며 모든 아픔을 훅 털어버리게 하고 싶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건 나중 일이라며 그녀는 말한다.

  “장기간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해와서 그런지 그것을 동포사회에 접목시키고 싶어요. 오지랖이라고 할까…... 늘 우리 동포들이 안쓰러워요.”

  재한 조선족들에게 한마디

  한국에 나와서 살면서 가끔 겪게 되는 일은 한국에 와서 10년을 산 사람들이 모임에서 한국인을 많이 욕하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라고 본다. 한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자신이 살아가는데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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