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운동을 할 순 없어도 한주 두세 번쯤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안양천 둘레 길을 따라 걷기운동을 하군 한다.
따뜻한 봄날이나 여름에는 만개한 예쁜 꽃향기에 마음 설레거나 가을에는 노란 단풍과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도
본다지만 추운 겨울이라 운동하는 사람도 뜸할 것이고 구경할만한 백설도 쌓인 것이 아니어서 걷기 운동도 망설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안양천 둘레길을 걷다가 보면 어느새 북쪽에서 날아온 청둥오리 무리가 더해져 개체수가 급증하여
200여마리 좌우되는 아름다운 오리들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온다.
도심속의 안양천은 수질이 개선되고 풍부한 물이 흐른다고 하지만 철새들의 이정표가 될 만한 좋은 조건은 아니다는 생각에서인지 많은
수의 청둥오리들을 보는 순간 넘 신기하면서 호기심을 끌었다.
적지않은 분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청둥오리 탐방에 나섰는데 핸드폰 셀카로 귀엽고 사랑스런 오리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고들 있었다.
청둥오리들은 겨울이라 추워선지 움츠리고 물위에 앉아있는 것이 많았고 또 한줄로 물 수위를 거슬러 동동 올라가는 오리들도 있었으며
가끔 곤두박질쳐 깊숙한 물밑까지 내려갔다 한참 후에 올라오기도 했다.또 하천둔덕 마른 풀숲에 나와서 휴식을 취하는 오리들도 있었다.
청둥오리는 암컷과 수컷의 차이도 뚜렷했다. 암컷은 전체적으로 갈색을 띠지만 수컷은 머리에서 목까지 금속광택의 녹색을 띠였고 부리도
수컷은 노란색을 띤 것 같았으며 암컷은 좀더 진한 주황색인 것 같았다.
오리들은 내가 바로 옆까지 다가가도 달아나지를 않았다. 나는 무의식중에 풀숲을 여기 저기 주시해 살피면서 오리 알이 없는지 눈여겨
밨다. 지금은 비록 겨울이라 산란시기가 아니지만 어릴 때 고향에서 오리 알을 주었던 일이 생각나서였던 것 같다.
어릴 때 저는 삼면에 강물이 흐르는 오붓한 산촌마을에서 살았었다. 추운겨울 빼고는 방과 후면 늘 들판과 강, 산에서 놀기가
일쑤였다. 봄이 찾아오면서 부터 학교에서 하학하고 돌아와서는 책가방을 집에다 벗어놓고 바로 친구들과 함께 나물 캐러 바구니를 들고 강변으로
향했다.
동북은 겨울 기후가 많이 추워선지 5월 달이 되여서야 확실한 봄을 느낄 수 있었다. 뾰족뾰족 땅에서 올라온 새파란 봄나물은 탐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나물케는 일이 정말 즐거웠었다. 거기에 또 저녁 밥상에 향긋한 나물 무침과 봄나물 장국이 오르면 아버지께서 막내딸 덕에 맛있게 밥
한 그릇 뚝딱 하셨다면서 만족해 하시는 아버지의 밝은 모습이 나는 넘 좋았다.
언제가 한번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나물을 캐다보니 어느새 바구니에 나물이 수북이한가득이였다. 나는 잠깐사이에 나물을 많이 했다는
성취감에 실 웃음을 흘리는 그 찰나에 푸더덕 쐐쐐쐐~하면서 뭔가 날아갔었다. 깜짝 놀라 주저앉았던 내가 도정신해서 소리 나는 쪽을 올려다 밨더니
물오리 즉 천둥오리였다.
나는 재빨리 오리가 앉았던 그곳을 막 찾아 나섰는데 몇 발자국 앞에서 새파란 오리 알 다섯 개를 발견했다. 아까 전에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서 날아간 천둥오리의 포근한 보금자리에서였다. 나는 퐁퐁 뛸 듯이 좋았다. 아버지께서 또 맛있게 드셨다는 칭찬을 받을 생각에서였던
것이다.
나는 새파란 오리 알을 친구들이 보면 달라고 할까 두려워서 재빨리 나물바구니 속에 감추었다. 그리고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친구들을
재촉했다.
나물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나는 무슨 뜻하지 않던 횡재냐는 생각에 업 된 기분으로 신나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다그쳤다.
그런데 내가 기다리던 아버지께서 들어야할 칭찬은 들려오지 않고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그 엄마오리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자기가 품었던 그 오리 알을 마음 아프게 찾아 헤맸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앞으로는 오리 알을 가져오면 안될 것이고 또 숲속에는
뱀 알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였다.
그 후 나는 아버지 말씀을 명심하고 나물만 캐고 오리 알을 찾아 풀숲을 누비며 다니지는 않았지만 오리들은 나를 무서워서 먼저 날아가
버리군 했다. 그리고 전신무장한 사냥 군들이 엽총을 메고 그들이 사냥한 장꿩, 천둥오리를 옆구리에 차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 와~ 저 집은
오늘저녁 맛있는 고기밥상이여서 잘 먹겠다는 부러움에 저만치 멀리 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그때 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맛있게 먹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양천하에서 내가보는 천둥오리는 예전과는 달리 어린 시절 자연보호에 대한 의식을 모르고 지냈던 지난 일을 반성하게
하고 속죄하면서 더 사랑스러운 마음에 바라보는 천둥오리에서 눈을 뗄 수도 발걸음을 옮길 수도 없었다.
나는 생각한다. 생태지역에서 서식하고 이곳에서 사는 모든 생명은 사람과 더불어 살 권리가 있으며 생태지역을 보호하고 새를 사랑하는
마음을 중요한 의미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박현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