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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자력학 도약 이끈 슈뢰딩거 방정식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19.02.27일 09:00




1900년대초까지 빛은 파동, 전자는 립자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러나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광량자리론을 제안하면서 그때까지 파동으로

생각돼왔던 빛이 립자로서의 일면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빛의 이중성으로 인해 물리학자들은 숱한 역리(逆理)에 부닥쳐야 했다. ‘빛의

두 얼굴’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파동방정식을 만들어 해법을 찾은 이가 있으니 바로 슈뢰딩거이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1887년 8월 12일 오스트리아의 윈에서 사업가 아버지와 영국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던 에르빈 슈뢰딩거는 수학과 과학에 뛰여난 재능을 보였다.

슈뢰딩거는 1921년 쮸리히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고체비열, 열력학, 원자스펙트럼, 량자론 등에 관심을 갖고 깊게 파고들다가 1926년에는

본격적으로 파동력학 연구를 시작했다.

슈뢰딩거는 고전 력학의 토대 우에 드 브로이의 물질파개념을 도입해 원자핵을 도는 전자들의 움직임을 연구하여 파동리론, 즉 전자가 원자의 핵

둘레에 산재한 점이 아니라 파동형태로 존재한다는 파동방정식을 만들어냄으로써 20세기 물리학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미세한 립자의 운동을 지배하는 확률파동, 즉 이 파동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어떻게 변하는가를 파동함수의 형태로 기술한다.

례를 들어 얇은 두개의 틈으로 광자를 통과시키는 실험을 한다고 하자. 이때 단일 광자가 어디를 때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장소를

때릴가 하는 확률은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가령 어느 광자가 A 지점에 떨어질 확률을 60%로 계산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광자는 다른

곳에서도 부딪칠 수 있는 확률이 40%이다. 이 확률을 구하는 방정식이 바로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오늘날 슈뢰딩거 방정식은 원자, 핵, 고체물리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례를 들어 원자현미경의 원리인 ‘터널링현상’을 풀기 위해

슈뢰딩거 방정식이 사용되며 원자력 발전이나 원자폭탄과 같이 원자핵 붕괴로 에너지를 얻는 모든 분야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마치 뉴톤 력학처럼

현대물리학을 다루는 분야에는 반드시 슈뢰딩거 방정식이 활용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리론은 1925년에 선보인 하이젠베르크의 행렬력학과

함께 이른바 량자력학을 태동시켜 자연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시야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파동방정식을 만들어낸 공로로 1933년 슈뢰딩거는 디랙과

더불어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슈뢰딩거가 떠올린 파동방정식은 1925년의 크리스마스 휴가 때 부인이 아닌 애인과의 밀월려행에서 이루어졌다. 슈뢰딩거는 왕성한 학문적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녀인과 사귄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련애와 과학적 탐구는 따로 떼여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학자로서의 일생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였던 25세 때 슈뢰딩거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녀인과 첫사랑을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생애에는 수많은 녀인들이

등장한다.

슈뢰딩거의 업적은 물리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생명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던 그는 생명현상을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아 ‘생명현상의

기본인 유전자가 비주기성 고체’라고 생각하고 《생명이란 무엇인가(1944)》라는 저서로 남겼다. 그는 당시 생물학자들의 ‘생명현상이 비결정적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해 유전물질 발견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927년에 슈뢰딩거는 량자물리학의 창시자 막스 플랑크가 보유했던 베를린대학 리론물리학 교수직을 계승하기 위해서 베를린으로 옮겼다. 당시

베를린은 유럽 과학의 중심이였고 그는 이곳에서 매주 열리는 콜로키엄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지만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베를린에 더이상

거주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영국과 미국을 경유해서 모국인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만 1938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뒤에 그가 1933년에 독일을 떠난 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1938년에 이딸리아로 몰래 도망갔으며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결국 더블린의

고등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물리학의 위대한 창시자들 가운데 가장 복잡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였다. 불의에 대해서는 열정적으로 싸웠지만 모든 정치적 행동은

경멸적으로 바라보았다. 허세와 형식을 혐오했지만 영예를 얻고 상훈을 받는 것을 어린애처럼 즐겨했다. 그의 지성은 명확한 추론에 바쳐졌지만 그의

기질은 폭발적이였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오스트리아 사람다운 열정적 기질이 있었기에 그는 진리를 향해 초연하게 연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대리론을 완성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슈뢰딩거는 1956년에 그의 고향인 윈대학의 교수로 돌아왔다. 그리고 1961년 1월 4일에 윈에서 사망했다. 1993년에 그가 만년을

보냈던 윈대학의 건물은 ‘수리물리학 국제 에르빈 슈뢰딩거 연구소’로 이름 붙여졌다. 그는 “우리의 과제는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그가 과학에 림했던 자세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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