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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탓 내 탓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19.03.22일 09:13



부부가 오래 사노라면 희로애락을 맛보게 된다. 지난해 늦가을 어느날 내가 한참 글을 쓰고 있는데 삐삐 하고 초인종이 울리였다. 수화기를

들고보니 마누라가 빨리 아래층으로 내려오라는 것이였다. 급한 김에 열쇠를 지니지 않고 맨손으로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문을

조금 열어놓고 내려왔는데 봉변을 당할 줄이야.

내가 빠른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일층에서 마누라가 꾸럭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산 여러가지 부식물들이였다. 마누라는

나한테 꾸럭을 넘겨주고는 더 살 것이 있다고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도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천천히 꾸럭을 들고 5층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차! 열쇠를? 나는 김빠진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일층으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사이 바람에 의하여 문이 잠겼던 것이다. 나는 급히 현관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평시에는 걸음이가 그렇게도 굼뜨던 마누라가 이 시각 어디로 그리 잽싸게 걸어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급해난 나는 마누라를 쫓아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 내려간다해도 마누라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거니와 따라잡을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맥을 버리고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어떻게 한담?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누라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와 몸이 오싹해났다. 나는 찬기를 느끼면서 내의만 입고 나온걸 후회했다. 바람을 막기 위해 현관 창문을 닫고

허리돌리기 운동을 하면서 마누라가 언제 돌아올가 이제나 저제나 타산해보았다. 속으로 수자를 헤면서 시간을 계산해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30분이면

오겠지 하고 기다리며 열, 백, 천개를 세였는데도 마누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누라에게 전화를 하려고 해도 핸드폰을 집안에 두고 나왔으니 련계할

수가 있어야지. 정말로 코 막고 답답한 노릇이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촉을 절실히 느끼였다. 어려서는 시간 흐름이 느리다고 하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 어른이 되고 싶어

했고 중년에 잡아들면서부터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안타까워 하였으며 늘그막에는 시간이 흐름이 너무 빨라 걷잡을 수 없다고 한탄하여왔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은 환경 조건에 따라 느끼는 감수가 달랐다. 친인을 떠나보내며 배웅할 때에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흐르던 것이 친인을 기다릴 때에는

어쩜 시간의 흐름은 그리도 느리던지?… 그날 마누라를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도 느리게 흐르는지 나는 기다림에 지쳐 입술이 초들초들

말라들었다.

그날 일을 생각하면 허거픈 웃음이 절로 나온다. 평시에 몸관리에 신경을 쓰던 내가 그날 따라 급한 김에 내의만 입고 나왔고 더군다나 열쇠를

지니지 않고 나왔으니 사달이 났던 것이다. 따스한 보금자리를 지척에 두고도 열쇠가 없어 들어갈 수 없었고 어디로 가자고 해도 내의만 입고

있었으니 함부로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진퇴량난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날 나는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하였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내의만

입고 서서 추위에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나를 이상한 눈길로 힐금힐금 보는 것이 제일 참기 어려웠다. 마치 그 눈길이 날카로운 비수인냥 내 자존심을

푹푹 찌르는 감이 들었다. 나는 그런 눈길을 피하려고 멍청하게 창밖만 주시해보았지만 결국 눈 가리고 아웅하는 노릇과 다름이 없었으니깐

말이다.

그날 내가 마누라가 오기만 애타게 기다린 시간은 내 짐작으로는 두시간은 될 것 같았다. 그 두시간이 2년 맞잡이로 지루하기만

했다.

튼튼한 다리를 가졌다고 자부하여 왔던 나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다리가 뻣뻣해나기 시작하였고 허리도 시큼시큼해났다. 다리 맥이

풀려 층계에 앉고 싶었지만 층계가 차가워 앉을 수도 없었다. 정말로 이러지도 저럴 수도 없는 궁지에 빠져있었다. 외롭고 고독하게 한자리에

서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났다. 이전에 나는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참기 어려웠던 것이 고독과 외로움이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말을 무심코 들었는데 그날 고독을 겪고나서 그 말의 참뜻을 리해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는 자기 잘못을 찾지 않고 남을 탓하는 근성이 있다. 그날 내가 그랬다. 처음에는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후회를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히 마누라를 탓하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겪는 고생이 모두 마누라 때문이라는 고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였다. 마누라가 나를 빨리 내려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가?… 생각할수록 마누라에 대한 노기가

서리였다.

“에익, 굼벵이 같은 녀편네. 빨랑빨랑 올 것이지 지금까지 뭘해? 오기만 해라… ”

나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였다.

그렇게 어림짐작으로도 두시간이 지나자 얄미운 마누라는 느릿느릿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마누라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도 못 본체

외면하고 있었다. 헐떡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온 마누라는 볼멘 소리를 던졌다.

“당신, 여기 있으면서도 왜 내려오지 않았어요. 내가 내려오라고 몇번 초인종을 눌렀는데도 받지 않더니… 빨리 이걸 받지 않고

뭘해요?”

적반하장이라더니 누가 할소리를 하는거야 싶었지만 나는 어쩌지 못해 물건을 받으며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하다가 이제야 돌아와?”

“뭘 하다니, 보면 몰라요. 과일을 사려고 시장으로 갔어요.”

“요까짓걸 사는게 그렇게나 오래 걸려?”

“시장에서 이걸 사고 인츰 돌아오려고 했는데 중학교 때 동창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니 늦었어요.”

“당신 때문에 나 여기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어?”

“나 때문에?”

“보면 몰라 내 손에 열쇠가 없잔아. 내의 바람에 복도에 서서 두시간을 너턴 것이 안 보여?”

“호호호”

“웃음이 나와?”

“그럴줄도 모르고 미안해요. 빨리 집으로 들어가세요.”

추워서 마누라와 싱갱이질 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잽싸게 마누라가 주는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서니 온기에 온몸이

후끈해났다. 나는 언 몸을 녹이려고 이불을 덮고 드러누웠다. 더운 온기가 얼었던 몸을 녹여주었다. 잠간 눈을 감고 있었더니 그새 저도 몰래 깊은

잠에 골아떨어지기도 했다. 잠결에 딸깍딸깍 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뜨고 보니 마누라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있었다.

오늘 따라 마누라는 음식상을 푸짐히 차려놓았다. 내가 밥상에 마주 앉자 마누라는 술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여보, 나때문에 당신 오늘 많이 고생했지요. 따끈한 술로 화를 푸세요”

“아까 같아서는 한매 안기고 싶었어.”

“아유, 큰일 날번했네.”

“잔말 말고 당신도 한잔 해.”

“내가 언제 술을 마시는 걸 봤어요?”

“이 좋은 안주에 한잔 하면 좋지 않아?”

나는 넌지시 마누라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마누라는 술이 독하다 하면서도 입술을 잔에 대고 홀짝거렸다. 수십년 같이 살아오면서 이렇게 술잔을

마주치며 술을 마시기는 처음이였다. 술을 마신 탓인지 우리의 부부관계도 전화위복이 되였다. 안해를 탓했던 일도, 봄눈이 녹듯이 스르륵 풀리는

것이였다. 이래서 부부사이는 칼로 물 베기라 했으리라…최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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