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강 석하자는 황막고비에 건설된 도시이다. 지난 60여년전 황막개간에 나선 군인들과 건설자들이 간고분투정신을 발양해 현지에 오아시스를 만들고 도시건설을 추진했다.
신강 생산건설병퇀 개간박물관을 찾아 “황막건설사”를 청취하는 인원은 해마다 련인수로 50만명을 넘는다.
1950년 당시 신강군구 대리사령원 왕진은 병퇀부대를 이끌고 현지에서 주둔지 모색작업을 진행했다. 석하자에서 만무 농전을 개발할수 있는 지역우세를 포착한후 병퇀은 현지에 새 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개간사업에 나선 병퇀군인들은 한여름의 뙤약볕과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현지건설에 뛰여들었고 국가공업화 행정과 더불어 건설자들은 농기계를 동원해 광활한 토지개발에 나섰으며 국경개발 지원자, 제대군인, 대학교 졸업생 등 전국각지에서 모여온 황막개척자들은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건설사업을 힘있게 추진했다. 청년 지원자 포이화는 1965년 입대통지서를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천진으로부터 신강지원사업에 뛰여든 포이화는 한생을 현지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
오늘날 새일대 건설자들은 애국정신, 간고분투의 “병퇀정신”을 계승하고 발양해 국경건설에 진력하고 있다. 석하자대학의 내지 대학생중 50%이상이 현지의 건설사업에 참가했다. 내몽골 적봉에서 온 왕춘뢰는 2007년 석하자대학을 졸업한후 부인과 함께 병퇀 제133퇀에 뿌리내리고 농망기와 긴장한 훈련에 모든 시간을 이바지 했다. 국경지역 기층에 뿌리내린 새 일대 청년들은 신강건설의 중요한 력량으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