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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독서후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9.04.26일 13:09



리분선 

김훈을 처음 알게 된 건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이다. 얼핏 이름자 정도만 기억한, 스쳐지나는 작가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보면서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내내 감탄만 지르다 말았던 기억이 있다.

내게 ‘읽는 즐거움’과 ‘쓰는 두려움’을 한꺼번에 알게 해준 작가였다. 김훈은.

김훈의 글은 단단히 훈련된 근육과 같이 미끈하고 군살이 없다.

촌철살인, 숨통을 겨눈 몸짓은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준확한데다 겨누는 이의 기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단 한번의 숨통을 겨눈 섬세함과 단호함, 어지러이 퍽퍽 찔러대는 사살과는 완연 다른 수준이다.

〈자전거여행〉으로 성차지 않아서 찾아든 김훈의 두번째 책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산문에서 봤던 김훈의 한치 어김없이 조준점을 쿡 찌르는 명료함, 마디마디 꼭꼭 채워넣은 언어의 밀집도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고대 서신(书信)에서 풍겨나는 고문스러운 언어의 수려함, 장엄함은 ‘김훈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

중국의 명청교체가 이루어지던 시점, 명의 쇠퇴와 더불어 강대해진 후금은 청나라를 세우고 조선과의 군신관계를 요구한다. 명(明)을 받들던 조선은 진퇴량난의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금의 침입, 조선의 왕(인조)은 숨는다.

이 비운의 력사는 김훈의 날카로운 필끝 아래 강력하게, 암울하게 펼쳐진다.

왕은 적들의 공격이 어려운 지세이긴 하나 장기전에 들어서면 수비도 그만큼 어려운 남한산성에 머리를 틀어박았고(청의 말을 빈다면 “몸뚱이는 다 밖으로 내놓고 머리만을 굴속으로 처박은” 격) 청은 남한산성을 겹겹이 포위한다. 살얼음이 끼는 겨울, 성안에는 말라가는 백성과, 싸우려는 의지조차 희미한 병사와, 어지러운 신하와, 살려는 왕이 있었다. 성은 서서히 굶어가고 말라갔다.

조선은 초조히 말라갔고, 청은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 청은 약하고 겁 많은 조선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성을 함락시키고도 남을 군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를 아꼈다. 성에 쳐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사다리는 마지막까지도 쓰지 않았다.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주마.

너는 지키기를 원하느냐. 너의 지킴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의 성을 가두어주겠다.

너는 내가 군사를 돌이켜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너는 그 돌구멍 속에 한 세상을 차려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너의 백성은 내가 기른다 해도, 거기서 너의 세상이 차례 지겠느냐.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의 도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칸이 조선 왕에게 보낸 편지 중.

왕은 살기를 원했고 대신은 이름이 더러워지기를 원치 않았다. 왕은 이미 완곡하게 명을 내리고 있었으나 대신은 모른 척 했다.

살아야 한다는 것, 살려면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그들은 함구했고 눈을 감았고 귀를 막았다.

 

김훈의 두번째 책 〈남한산성〉 표지

1. 간신과 충신

우리가 배웠던 간신과 충신에 대한 의미가 갑자기 낯설어온다.

김상헌은 충신인가?

그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는 적들과 죽기내기로 싸울 것을 주장한다. 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고민하고, 얼어가는 병사들을 살피고, 백성의 소리를 들으며 대장장이를 파견해 주변에 원군을 요청한다. 이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고 인조가 조정에서 항복을 선포하였을 때 그는 조용히 집에서 목을 매단다. 결국 일찍 발견되어 죽지 못하였고 청에 항복할 때 끝까지 싸움을 주장한 사람들을 결박하여 끌고 가야 함을 알고 목숨을 끊지 않고 그때를 위해 남긴다.

하면, 최명길은 간신인가?

그는 화친을 주장한다. 김상헌이 충신이면 최명길은 무조건 간신 아닌가? 그는 청에 굽신거리고 나라의 왕을 무릎 꿇게 했다.

최명길은 세상에는 반드시 굽혀야 사는 길이 있다고 한다. 또한 그 길만이 사는 길임을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주저치 않는다. 누구도 입밖에 내려 하지 않는 화친을 감히 얘기했고 친히 누구도 쓰려 하지 않는 화친의 글을 썼고 청과 대화를 했고 왕의 서신을 전했다. 어쩌면 최명길이 아니였더라면 왕의 살려고 하는 애절한 목소리는 성밖에 전해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의미 없는 싸움에 너덜너덜해진 병사들, 굶주림에 초들초들 말라가는 백성들은 어느날 홀연 기여든 조선의 왕때문에 또 어느날 다함께 남한산성에 순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싸워서는 도모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왕을 위하고 백성을 위한 길은 화친임을 믿고, 조정대신들에게 역적이라 불리면서도 꿋꿋이 가고저 하던 길을 갔던 최명길은, 어지러운 손가락질에도 왕과 백성을 위한 길을 고민했던 최명길은, 내가 봤을 땐 어김없는 충신이다.

싸우려 하는 자도, 알아서 기려는 자도 충신이면 인조는 충신만 두었던 걸가?

아니, 생각하려 하지 않는 자, 모른척 하는 자, 이 모든 자들이 간신이었다. 왕과 나라와 백성이 위험에 처했는데 피해가려는 자, 중립을 세우는 자, 이름을 지키려는 자... 그들의 대답은 모호했고 희미했다. 그들은 많은 말들을 하였지만 그 말에 의미를 싣지 않았다.

2. 무엇이 승리인가?

백절불굴의 의지로, 꺾이는 한이 있더라도 구불지는 않는 나라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지막 총알까지 불태우는 의지가 승리인가?

아니면 나의 백성들에게 살아갈 길을 마련해주는게 이른바 승리인가?

아니 꼭 승리라기보다는, 나라는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거창하게 나라라고 하지도 말자. 인간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인간의 존엄에 앞선 게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인간에게 존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의 립장이 되어보자(단연코 나는 조선의 땅과 백성을 그대로 내팽개치고 산성에 들어와 머리를 틀어박은 찌질한 이 왕을 변호하려는 생각은 없다).

온 성이 그대로 말라터져 생령 하나 남기지 않고 백절불굴의 의지로 버텨낸들 어찌 그걸 승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잘 살고 있는 성에 왕이 들이닥쳐서 그대로 쫄쫄 말라죽으면서 왕에게 나라의 존엄을 지켜준 성은에 망극해할 백성이 몇이나 있을가? 아니, 존재하기나 할가?

남한산성의 마지막은 우울하다. 왕은 끝내 청에 무릎을 꿇고 신하를 맹세한다. 왕이 떠난 성은 고요해졌다. 이튿날 곳곳에서 불을 지피는 소리가 나고 사람이 살아나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임금은 허리를 굽혀 엎드렸고 백성은 불을 지피고 살아났다.

성을 사수하여 끝까지 지켜내는 반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은 극악무도한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고 조선은 영예를 위한 전투다운 전투를 치를 기회가 없었다.

약한 자의 해피앤딩은 철저한 굴복이다. 그 굴복에 존엄 따위는 없다.

그러나 삶은 지속된다.

삶과 존엄이 상충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 선택에 정답이 있을까?

Tip:

영화로도 상영되였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쯤 추천 드리고 싶다. 극중 최명길 역을 맡은 배우 이(리)병헌이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가 엄청났다. 이렇게 충실하게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한 적 없다. 보는 순간 ‘내가 할게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 하였다니 대사만으로도 마음을 울리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잘린 대사가 아까운 일인으로서 나는 소설을 강추한다.

리분선(李粉善)

1983년 룡정시 출생

현재 상해 거주

길림대학 광고학부 졸업

글밤/드림북 공식계정 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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