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당시 18세인 량사성은 청화학당에서 이름난 명인이였다. 부친 량계초의 영향으로 량사성은 5.4운동과정에 청화학생 리더중의 한사람으로 활약했다. 미국류학을 마치고 귀국한 량사성은 동북대학에서 중국 현대교육사상 첫 건축학부를 건립했다. 당시 량사성의 나이는 27세였다.
올해 32세인 서등은 청화대학 건축학부의 박사연구생이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서등은 전국각지를 돌면서 건축연구에 몰두했다. 대학입시를 3차 경유해서 중경의 한 대학에 진학하고 또 연구생시험을 3차 보면서 마침내 청화대학의 꿈을 이루었다. 서등에 있어서 세계는 하나의 복합체이며 세계에 대한 사람마다의 인식은 모두 제한됐다. 대학교 3학년때 대학교원이 동제대학이나 청화대학을 권장할때 그는 량사성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청화대학을 지망했다.
청화대학 진학을 두고 3년동안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 서등은 몇몇 학생들과 팀을 무어 중경의 민국건축을 측량하면서 진귀한 수치를 보존했다. 조사과정에서 서등은 또 량사성의 고건축 연구과정을 상상하면서 조사에 진력했다. 서등이 볼때 변혁은 바로 노력진취중에 이루어지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