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한민족 > 한민족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소리예술의 한 길에서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9.05.06일 09:02



  (흑룡강신문=하얼빈) 중앙민족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박장천(61세), 중국 오보에(双簧管) 분야의 권위적인 리론가이자 연주가로 평생동안 소리예술의 한 길을 걸어온 분이시다.

  1958년 3월 흑룡강성 가목사에서 출생한 박장천은 어려서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해 가목사시 조선족 소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줄곧 문예콩클 1등을 차지하면서 전교에서 노래 잘 부르는 아이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졸업무렵인 1972년에 중앙민족대학에서 흑룡강성 가목사시에 학생모집하러 왔을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험을 봐 합격해 14세의 나이로 중앙민족대학 음악학부에 입학하게 되였다.

  대학입학시 전공이 성악이였는데 그때 변성기가 지나지 않아 오보에 전공으로 바꾸게 되였다. 오보에 전공으로 바꾸게 된 계기는 북경에서 오케스트라를 한번 보게 되였는데 미묘하고 아름다운 오보에 음색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였다.

  수천년 력사를 자랑하는 오보에는 높은 음역의 목관악기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오부아(Hautbois)에서 유래되였다. 오보에는 더블 리드를 사용하는데 이 더블 리드는 갈대나 보리, 나무줄기 등 어떤 식물로도 만들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보에와 같은 더블 리드를 사용하는 악기의 기원은 전세계 곳곳에 걸쳐 매우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오보에는 유럽에서 사용되기 이전에 이미 힌두스탄, 중국, 아라비아, 아프리카 일부 지역 및 고대 아메리카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역에 따라 구조와 형태가 조금씩 달랐는데, 이 악기들은 지방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클라리넷과 플루트가 음색적으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것에 비하면 오보에는 거의 모든 악기들과 어울릴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보에는 가격이 비싼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을 널리 받지 못한 악기가운데 하나였는데 개혁개방후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요즘은 많이 보급되고 있는 현황이다.

  17세가 되던 1975년 박장천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 배치받게 된다. 약관의 나이도 채 되지 않았지만 대학교수 직업을 인생목표로 삼은 박창천교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중앙민족대학교 음악대학에서 40여년간 교편을 잡고있다.

  17세부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처음엔 박장천보다 나이가 더 많은 제자들도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엄숙했지만 수업이 끝나면 그를 동생처럼 생각하고 함께 차도 마시고 롱담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박장천교수는 교연실 부주임, 주임, 관현악과 주임, 학장, 그리고 음악학원 원장을 지내면서 주로 오보에 리론연구와 실내악 연주 그리고 학생양성에 모든 심혈을 기울여 왔다.

  박장천교수는 15년간 대학에서 오보에를 가르치면서 총화해낸 실천경험으로 1994년에 “오보에 연주예술”이라는 책을 중문과 조선문으로 펴내 출판했고 1996년에는 “오보에 교수법”을 출판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는 오보에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없었다고 한다. 외국의 교과서를 사려면 어떤 방법으로 사와야 하는지 방도도 없고 해서 고심한 끝에 자신이 직접 “오보에 교수법”을 썼다고 한다.

  그후 1997년에 또 “오보에 교정”, “오보에 곡집” 등 2권의 책을 냈다. 그때만 해도 오보에 연주곡을 담은 CD나 록음 테이프가 거의 없었을 때였다. 박장천교수는 자신이 직접 연주한 곡을 CD로도 만들어 냈다. 그로부터 2,30년이 지나면서 박장천의 오보에 교수 관련 책자들은 국내 오보에 전공 교원과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오보에 교수법”은 현재까지도 전국 여러 음악대학이나 음악예술학원들에서 사용하고 있고 동인들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긍정과 찬상을 받고있다. 중앙음악학원 교수이며 지휘 대가인 정소영은 “박장천의 ‘오보에 교수법’은 높은 학술가치를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 오보에 연주 및 교수실천에 적극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대학강의외에 박장천 교수는 20여개 국가와 지역을 오가면서 중국의 민족풍격이 있는 곡목들도 연주하여 외국인들의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박장천교수는 교환교수로 한국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음악석사공부를 하여 석사학위증을 취득게 된다. 박장천교수는 중국 여러민족 풍격을 반영한 편곡을 많이 하면서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멜로디인 아리랑에 대한 론문도 썼고 2011년에는 일본 교도에서 열린 학술회에서 아리랑에 대한 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민족적인 음악이 바로 세계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의 ‘환락송’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듯이 우리 민족의 ‘아리랑’도 아주 유명합니다. 조선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멜로디가 바로 아리랑인데 베토벤의 ‘환락송’의 ‘미미파쏘 쏘파미래 도도래미 미래래’라는 이 구조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고 하는 구조와 똑 같이 되여 있습니다. 하나는 서양에서 나온 곡이고 하나는 동양에서 나온 곡인데 곡의 곡식과 편곡 시스템이 똑 같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수한 곡들은 모두 같다고 봅니다.”

  박장천교수는 학생시절에도 그랬지만 교수가 된 후에도 매일 12시간씩 오보에 연습을 했다. 특히 1984년까지 중앙악단 국가교향악단의 장경하 선생으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오보에 리론뿐만아니라 실제 연주에도 피타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2008년부터는 5년간 방학때마다 스위스에 가 저명한 오보에 연주가인 시몽폭스(SimonFox)의 부친 피터 시몽을 스승으로 레슨을 받았다.

  “피터 시몽은 4,50년전에 이미 세계적으로도 오보에 연주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분입니다. 그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저에게 오보에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5년간 방학때마다 가서 레슨을 받았더니 마지막에 마스터 클래스 졸업장을 싸인해서 주더군요. 저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겸손함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오보에 연주분야에서 저보다 우수한 분들을 만났을때 그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기회를 잘 잡았기 때문에 자신을 한층더 업그레이드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서 류학을 했지만 제가 종사하는 전공에 대해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였기 때문에 오보에 호흡법을 비롯해 자신만의 독특한 오보에 교수법과 연주법을 만들어 낼수가 있었습니다.”

  박장천교수는 학교에서 교수를 하는 한편 연주도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특강도 하고 학술교류도 하고 리론저서도 많이 쓰고 있다. 박장천 교수는 우리말 뿐만아니라 영어와 일본어에도 능숙하기때문에 세계학술교류회에 참가하게 되면 자신의 우월성을 확실하게 발휘할수 있었다.

  박장천 교수는 2001년부터 스위스 음악제에 5차례 참석했다. 2008년에 있었던 스위스 음악제에서 쮸리히 국립음대의 교수인 시몬 폭스(SimonFox)와 레나도를 비롯한 유명한 음악가들과 한 무대에서 공연을 했고 2009년에는 한국국제광주예술제에서 독일 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수석, 프랑스 피아니스트, 이딸리아 음악가들과 함께 한 무대에서 연주를 하게 되였다. 한국 광주교향악단과 협연을 할때에는 정률성 음악제의 고문으로 초빙돼 예술의 전당에서 알렉산드르 마첼로 협주곡을 연주해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일본, 미국, 대만 등지에서도 독주연주회 또는 협연을 했다.

  이렇게 박장천교수는 40여년간 20여개 나라를 오가면서 연주며 독주며 특강이며 론문발표며(이미 80여편 론문을 발표) 하면서 최선을 다해 앞만보고 달려왔다.

  인민일보, 북경석간지, 중앙TV 음악프로그램, 북경TV, “악기잡지”, 향항 봉황TV, 한국 “춘추잡지” 등 여러 매체들이 박장천교수에 대한 취재보도를 여러차례 했다.

  보도는 중앙민족대학에서 양성해낸 소수민족 교수가 서양음악 령역에서 교육리론에서부터 교수법에 이르기까지 국내의 공백을 메웠다고 쓰고 연주음색이 아름답고 음악표연력이 강하며 교수리론과 교수경험이 풍부하여 연주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오보에 교육가이고 연주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중국문화예술출판사에서 출판한 “스타탐방”(走进明星)이란 책에서 “중국오보에 연주자의 첫사람 박장천”이란 제목으로 전문 보도했으며 또 1995년에 “중국 당대명인 대 사전에 오르는 등 음악교육 령역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박장천 교수는 최근에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연구과제와 북경시 교육개혁분야의 연구과제를 맡아 “전국 소수민족학교의 관악교육법에 관한 리론교육”, “서양과 중국 관현악음악교수법의 연구”란 책자의 집필을 비롯해 이미 10여권의 책을 출판했다.

  박장천교수는 지금도 매주 2,3일은 학교에 나가 연구생과 본과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가르친 학생들중 전국 각지의 유명 악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제자들로는 중국 중앙오페라단의 석흠, 해방군 오케스트라의 수석 왕완동, 심수교향악단 오보에 수석 최효쟁(조선족)을 들수 있다.

  1959년에 설립된 중앙민족대학교 음악대학은 소수민족 고급음악인재를 양성하는 학부이다. 부속 소학이나 부속 예고를 가지고 있는 중앙음악학원, 중국음악학원, 상해음악학원과는 달리 중앙민족대학교 음악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2,3년에서 심지어 1년밖에 예술전공지식을 배우지 않은 아마츄어들이다. 이 학생들을 4년간 가르치려면 대학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곡들이 있기때문에 특별한 교수법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졸업시킬수가 없다.

  박장천 교수는 장기간의 연구와 실천을 통해 발굴한 특별한 교수법과 리론으로 심혈을 기울여왔기에 우수한 학생들을 양성시키는데 성공할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는 프로의 음악학원보다 열배 더 노력해야 만이 학생들을 성공시키는데 성공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0여년간 걸어온 이 길을 돌이켜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웠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가르치는 과정이 즐거웠고 또 오로지 한 분야에만 튼튼히 뿌리내리고 노력을 경주한 결과 오늘의 성과를 이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더없이 흐뭇합니다.”

  오보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악기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오보에를 배우려면 악기를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오보에 한개의 가격으로 피아노 몇대를 살수 있을 정도) 일반 가정에서는 구매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처럼 오보에가 어려운 악기이지만 박장천 교수는 40여년간 오보에 분야에 종사하면서 총화하고 연구해낸 경험으로, 과학적인 호흡법을 정확히 터득할수 있도록 가르치기만 하면 너무 힘든 악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고정적인 관념으로는 15, 16세가 되기전에 오보에를 배우면 페에 안좋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8세되는 애들도 가르치고 있는데 정확한 호흡법만 장악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보에를 연주하면 호흡능력이 더 강하게 되여 고산지대에 가 축구공도 차고 뛰여 놀기도 하지만 현악기를 하거나 피아노를 하는 애들은 숨이 차서 가만히 누워만 있습니다. 그리고 기초적인 악기는 대부분 중국에서 제조하고 있기때문에 오보에 악기도 적절한 가격에 살수 있어 오보에를 선호하는 애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박장천교수는 오보에 교수와 연주자로 40여년을 지내오면서 중국음악가협회 리사, 국제 및 아시아 오보에협회 리사, 중국오보에협회 부회장, 중국관현악협회 상무리사, 중화전국청년련합회 제8기 위원, 중국 조선족음악학회 상무리사, 한국아시아예술학회 상무리사, 중앙민족대학 학술위원, 국가 문화부 전국콩클전문가 심사위원, 국제 관악콩클 심사위원, 실내악콩클 심사위원을 비롯해 여러가지 직책에 선임돼 여전히 분망하다.

  “중앙민족대학교 음악대학 창설 60년래 유일하게, 맨 처음으로 제가 중국음악가협회 리사로 당선되였습니다. 음악가협회 리사회 회의 때 마다 저는 중앙민족대학에서 전문 소수민족 음악양성반을 모집하자는 제안을 내놓아 그것을 현실로 되게 하는데 조력했습니다. 사실 개혁개방후에도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소수민족지역 가정들에서는 악기를 사려고 해도 돈이 없어 음악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소수민족들은 음악성이 뛰여나고 예술분야에서 우수한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수민족 집거지역의 학생들을 북경에 모집해와 리론이나 학술적으로 양성시켜야만이 우리 민족대학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는것입니다. 최근년간 중앙민족대학 음악학원에서는 서장, 신강, 내몽골 등 소수민족지역에 가서 음악성이 뛰여난 학생들을 모집해 와 양성하고 있습니다. 음악가협회 리사로서 또 중앙민족대학의 소수민족 교수로서 이것이 저의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61세인 박장천 교수는 지금도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주도 계속하고 있다. 근년에 와서는 연주 회수가 더 많아져 체력관리에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 보통 관악기는 50세가 지나면 무대에 올라 독주를 하는것이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박장천 교수는 환갑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주회에 나가고 매일 집에서 연습도 게으름없이 하고 있다. 오보에 교수로서 리론뿐만아니라 연주를 우선으로 해야만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일때 명명백백하게 연주자세나 연주법을 가르쳐줄수 있기 때문이다.

  박장천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칠때 오보에 독주만 가르치는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파트부분도 가르치고 있다. 오보에 독주회를 하면서도 심심히 느꼈던것은 오보에 독주만 해서는 청중들을 즐겁게 할수 없다는것이다. 그래서 그후의 오보에 독주회를 할때마다 2중주나 3중주 같은 실내악을 포함해서 청중들의 감각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박장천 교수는 오보에를 선택하고 음악을 선택하여 평생 한 우물을 파 왔기때문에 앞으로도 오보에 분야 제자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박장천교수는 후학들에게 훌륭한 오보에 연주자로 되려면 우선 인간성이 앞서야만 훌륭한 예술가가 될수 있고 음악을 즐기고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여야만 훌륭한 음악가가 될수 있다고 당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 중앙인민방송국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내가 때리지 않았다" 김히어라, 학폭 당사자와 만나 '기억 정리' 완료

"내가 때리지 않았다" 김히어라, 학폭 당사자와 만나 '기억 정리' 완료

사진=나남뉴스 배우 김히어라가 학교폭력 당사자들과 만나 가해 의혹 기억 정리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김히어라 소속사 그램엔터테인먼트는 "김히어라가 지난해 불거진 일련의 사안에 대해 당사자들과 만났다. 오랜 기억을 정리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BTS 이어 걸그룹 최초" 피프티피프티, 또 '음원 신기록' 2기 근황은?

"BTS 이어 걸그룹 최초" 피프티피프티, 또 '음원 신기록' 2기 근황은?

사진=나남뉴스 피프티 피프티의 대표곡 '큐피드' 트윈 버전이 글로벌 음원 플랫폼 '샤잠'에서 K팝 걸그룹 최초로 500만을 달성했다. 이는 K팝 여성 아티스트 가운데 최고이자 최초로 달성한 기록으로, 전체 K팝 그룹 중 500만을 달성한 아티스트는 유일하게 '방탄소년

안도현병원, 인성화 봉사로 시각장애인 진료의 길 밝혀

안도현병원, 인성화 봉사로 시각장애인 진료의 길 밝혀

최근, 안도현인민병원 의료진은 래원한 한 시각장애인 환자의 “눈”이 되여 전 과정을 동행하면서 인성화 봉사를 제공하여 환자의 진료과정을 가볍고도 즐겁게 따뜻이 해주어 특수환자와 사회의 찬양을 받고 있다. 현인민병원 중의과 양옥위의사는 이 환자가 본인과 같은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